1.아테네와 베를린, 2주간의 여행
군국주의, 정복, 오만과 반자유, 폐지된 국가의 상징적 속성이 움직일 때마다 프로이센을 둘러싼 논쟁이 재차 피어오르곤 한다. 1991년 8월 상수시 궁에 있던 프리드리히 대왕의 유해를 이장하는 문제는 무척 까다로운 토론 주제였고, 베를린 한복판 슐로스 플라츠 호엔촐레른 궁을 복원하려는 계획은 공개적인 논쟁에 불을 지폈다.
2002년 2월, 그렇지 않았더라면 눈에 띄지 않았을 브란덴부르크 주정부의 사민당 소속 장관인 알빈 칠은 급작스럽게 악명을 얻었다 브란덴부르크 연방주와 베를린 시를 합병하자는 제안을 둘러싼 토론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는 길고 거추장스럽다면서, 새로 통합된 지역을 ‘프로이센’이라고 하면 왜 안 되냐고 물었다. 이는 토론의 새 물꼬를 텄다. 회의론자들은 프로이센의 부활을 경고했다. 독일 전역에서 텔레비전 토크쇼의 주제가 되었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프로이센은 허용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연재 기사를 실었다. 기고자 가운데 독일 특수 노선에 관한 대표적인 학자 한스 울리히 벨러 교수는 칠의 제안에 맹렬히 반대하며, ‘프로이센은 독이다’라는 제목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