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수비대 교회를 가다
1930년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실업자는 31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1932년 이 수치는 620만 명으로 늘어났다. 노동력의 1/3이 실직 상태인 셈이었다. 실업자는 주로 블루칼라와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당시 내각은 불황의 사회적, 경제적 결과들에 대해 특히 무지했다…… 주목할 만하게도, 심지어 정치적으로는 신보수주의에 반대하는 정치가와 노조 지도자들도 실업자들에게 직업을 찾아주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지 않았다……. 실업자의 수가 이미 500만 이상이었던 1931년 말과 1932년에 이르러서야, 독일의 노동조합은 경기를 조정하기 위한 조치로서 공공사업 프로그램을 지지했다.
– 디트릭 올로 [독일 현대사] 중에서
아무튼 난 남들보다 지내는 형편이 괜찮았어요. 약간 선택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모든 것이 편했고 마음에 들었죠. 쫙 빼입은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 그래요, 난 그 시절 껍데기로만 살았어요. 어리석게도요.
- 토레 D. 한젠 [어느 독일인의 삶] 중
한 번은 제가 유대인 친구와, 그리고 당시 열세 살이었던 그 친구 딸과 함께 극장에 들어가 앉아 있었어요. 화면에 나치의 행진 광경이 나오자, 그 여자애가 제 엄마 한쪽 팔을 붙잡더니 이렇게 속삭이는 거예요. ‘아, 엄마, 엄마. 내가 유대인만 아니었어도 나는 나치가 되었을 거야!” -
– 밀턴 마이어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중에서
그들은 직장이 있었고, 고용이 보장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여름 캠프에 가고, ‘히틀러 소년단’때문에 거리를 함부로 쏘다니지 않았다. 어머니라면 과연 무엇을 알고 싶어 하겠는가? 당연히 자기 아이가 어디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시절에 모든 어머니는 그걸 알았거나, 또는 최소한 자기가 안다고 생각했다. …… 이때야 말로 그들의 삶에서는 최고의 시기였다.
– 밀턴 마이어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중에서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