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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11. 2022

마지막 여행기

35. 인생은 새옹지마

박물관 섬 지하철 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면 보이는 것이 베를린 돔이다. 15세기 중반 가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현재는 개신교 교회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물을 뿜고 있는 분수가 자리 잡은  잔디밭과 근처 벤치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평화로운 모습이다.


박물관섬 지하철 역 위로 올라오면  베를린 돔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의 섬 일부에 여러 개의 박물관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와 비슷한 곳이니, 막상 도착하고 보면 ‘섬’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근처를 흐르는 강 때문에 평화롭고 넉넉한 분위기가 더 느껴질 뿐이다.


페르가몬 박물관, 신 박물관, 구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보태 박물관 등 5개의 박물관이 박물관 섬 안의 대표격인데, 이들 박물관을 개별 혹은 함께 이용하는 패스를 구입해 사용할 수도 있다.  


패스를 구입해도 박물관에 갈 때는 ‘입장 시각’을 따로 예약해야 한다. 이 부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그냥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늘어선 줄에 상당히 놀랄 것이다. 박물관마다 단체 손님도 가득하다. 즉 5개 박물관을 하루에 보겠다는 생각은 접길 권한다. 이틀이나 삼일에 걸쳐 천천히 둘러본다고 생각하면 좋다. 나도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베를린 일정이 너무 짧았다. 내셔널 갤러리와 페르가몬 박물관만 허겁지겁 둘러보기로 했다.




내셔널 갤러리는 건물부터 아름답다. 양쪽으로 펼쳐진 계단 위로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앞에는 그 모든 것을 지키는 듯한 말 탄 청동상이 서 있다. 예약시간까지 대기 후 입장하면 그림과 조각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독일 대표 작가들과 인상주의까지 작품들도 다양하다. 취향이 맞고 여유가 있다면 하루 종일 머물러도 충분할 만큼의 예술품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부족한 쪽은 관광객이다. 시계를 흘끔거리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갤러리를 나왔다.

내셔널 갤러리. 입구부터 아름답다.


지도를 보고 페르가몬 박물관까지 뛰어갔는데 입구를 막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페르가몬 박물관 둘레를 몇 바퀴 돈 후에야 간신히 임시 출입구를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길이의 입장 줄에 당황했지만, 괜찮다. 나는 인터넷 예약을 한 사람이다. 비록 예약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지만……. 공사 때문에 입구를 찾지 못했다는 말을 우물우물 준비하며 직원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아무 말없이 내 인터넷 티켓을 스캔한 후 바로 입장시켜 주었다. 당케!


이슈타르 문으로 향하는 길. 벌써 떨린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소장품 중 ‘독일산’은 없다. 입구에 전시된 소품들(물론 그 유물들 역시 바빌로니아나 그 외 지역에서 왔다)을 지나 본관에 도착하면 웅장한 모습의 이슈타르 문이 관광객을 압도한다. 문을 지나면 터키 인근에 위치했던 페르가몬 왕국의 제우스 제단과 역시 터키의 고대 도시 밀레투스에 있던 시장 입구가 기다리고 있다.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타국의 오래된 도시에서 발굴한 것들을 자국으로 가져와 페르가몬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만들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독일로 오기 직전 방문했던 그리스는 해외에 흩어져 있는 자국의 유물되돌려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아름다운 유물들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2001년 초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고 있던 탈레반은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암석에 새겨진 불상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거슬린다는 이유였다. 가만히 계시는 부처께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셨길래 저들의 심기가 불편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탈레반은 예고한 날 폭탄과 다이너마이트 등을 이용해 정말로 불상을 폭파시켜 버렸다.

바미안 석불의 폭파 전, 폭파, 후. 연합뉴스 펌


그렇게 해서 그들의 종교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사적으로 봤을 때는 소중한 문화유산 하나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결과가 되었다. 그것도 세계인들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전쟁의 폭격으로 무너진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가 발생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해치워 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파괴가 또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아직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고, 그들이 아니라고 해도 반달리즘을 가진 또 다른 사람들이 출현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고대 밀레투스의 시장 입구

그런 생각을 하고 페르가몬 박물관의 소장품을 바라보면, 저 소장품들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그야말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슈타르의 문은 이라크 지역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라크의 고고학적 발굴은 이미 19세기에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이어지던 발굴 작업은 걸프전 발생으로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슈타르의 문이 그때까지 이라크에 있었다면, 걸프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최근에 다시 이라크 지역의 발굴 작업이 시작된 것 같기는 하지만 중동의 정세는 아직도 불안하고 위험하다. 훌륭한 내 조상들의 유물들을 외국 전시관에서 보는 일이 비교적 흔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모든 문화재는 자국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이런 현실을 바라볼 때면 말을 아끼게 된다. 이래서 세상 일이 어려운 건가…….

이슈타르의 문은 사진 한 장에 담기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페르가몬 박물관에 들어서서 이슈타르의 문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20세기 초 발굴이 진행되었고, 당시 발굴된 파편 하나하나를 옮겨와 맞췄다고 한다. 조각품을 담아 온 상자도 한쪽에 진열되어 있다.


이슈타르의 문은 박물관의 크기에 맞춰 원래 크기보다 작게 복원되어 전시된 것이라고 하지만 축소된 복원품의 모습으로도 보는 사람을 충분히 압도한다. 대부분 관광객은 말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화면에 담길 크기가 아니다. 게다가 문을 감싼 푸른색 도자기들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슈타르의 문은 신 바빌로니아의 왕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626년에서 539년 사이(그리스에서 솔론이 활동했던 시기와 비슷하다) 약 90년 동안 짧게 존재했던 나라이지만, 건축물만큼은 눈에 띄는 것을 남겨놓았다.


신 바빌로니아의 수도였던 바빌론은 정사각형 형태의 도시였다. 도시는 이중의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는데, 외곽의 벽 위로는 전차 세 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도심을 두르고 있는 성벽에는 여덟 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각 문에 남신이나 여신의 이름을 붙였다.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이슈타르 역시 바빌로니아 판 비너스, 미의 여신 이름이다.

모형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슈타르의 문이 먼 독일 땅까지 온 이유는 보존 상태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약 25미터 높이의 문은 청금 색 벽돌과 녹, 황, 청색을 섞어 만든 용과 황소, 사자의 그림 같은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부 발굴된다면 이 바빌론 유적지 안에는 바벨탑의 흔적도, 공중정원의 유물도 들어있을지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바빌론이 약탈당한 역사는 유구하다. 도시 외곽으로 이중의 벽을 두르고 밖으로 해자까지 팠지만, 이 도시는 “물이 적을 때 유격대를 앞세운 페르시아인이 유프라테스 강의 하상을 거쳐 들어가 기습적으로 점령당했다"고 헤로도토스는 전하고 있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게다가 이집트 피라미드의 석재들이 인근 주민들의 건물 건축자재로 이용되는 것처럼 잘 구워진 메소포타미아 유적의 벽돌들도 그런 이유로 훼손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과연 문화재는, 유물은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정답일까. 이런 종류의 유적들은 특정 민족의 것이거나, 그것이 서 있는 지역만의 보물은 아니다. 인류 모두의 자산이다. 눈은 즐겁지만 마음 한편은 무거워져 박물관을 나왔다.




이것으로 내 짧은 베를린 여행은 끝이 났다. 전체적으로 묵직하고 여운이 있는 여행이었다. 베를린에는 프로이센의 그림자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강국들이 모여 법안으로 결정한다고 지워지기에는 프로이센의 역사는 현재와 너무 가깝다. 다행히 지금의 독일인들은 프로이센의 역사를 밝은 곳으로 꺼내 먼지를 털고, 필요하다면 반성의 표시를 붙여 기억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이들의 노력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다음날 일찍 베를린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COVID-19 신속 항원검사서가 필요했고, 검사지를 들고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이동한 후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검사소를 찾아 25유로를 지불했다. 15분 후 도착한 결과 화면을 카운터에 보여주고 인쇄된 종이를 받으면 끝.


여행이 정말 끝났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길을 잃은 적도 있고, 목적지를 못 찾아 헤맨 적도 있지만 아주 심각했던 적은 없었어, 그렇지? 이런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마음 한쪽에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항공사 직원의 숙명 같은 것이다. 이제 무사히 인천까지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데......글쎄.




프랑크푸르트 카운터의 직원은 만석이어서 비행기를 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어제도, 내일도, 저번 주도, 다음 주도 예약이 만석이라고 설명했다. 왜 갑자기?


“코로나 때문에 한국 방역이 다시 강화된다는 소문이 있어서 독일에 거주하는 분들의 방문이 늘었어요. 예약 없이 그냥 카운터로 나오시는 손님도 많아요.”


그렇군요. 항공사 직원의 할인 티켓이란 승객이 탑승하지 않을 때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석이면 탈 수 없다. 카운터의 친절한 직원은 단호한 말투로 ‘오늘은 어렵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이라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탑승 시각을 40분 남겨 놓은 시점까지도 수속은 끝나지 않았다. 카운터의 직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불가능합니다.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가 안 됐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몇 자리가 비어 있긴 했었는데 방금 파리에서 연결되는 승객을 받기로 결정했거든요. 요즘 유럽 공항 사정이 좋지 않아 연결편 승객이 도착하지 않을 확률도 있습니다. 어제 그렇게 해서 못 타신 승객도 있었고요. 혹시 모르니 탑승구 앞에서 대기해 보시겠습니까? 사실 COVID 19 검사 유효기간이 끝나서 탑승하시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임시로 탑승권을 발급받고 짐을 부쳤다. 탑승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돌려받으면 된다. 항공기 밖에서 지상조업을 하는 직원이 내 짐을 붙들고 있어 줄 것이다.




CIQ앞에 가득 늘어선 줄을 뚫고 탑승구까지 달렸다. 누군가의 ‘불운’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항공기 출발을 3분쯤 남겨두고 상당기간 배낭여행 중인 듯한 세 명의 이십 대가 미끄러지듯 탑승구 앞으로 달려왔다. 수속을 하던 직원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실망이지만 할 수 없다. 이것이 직원 항공권 소유자의 비애인 것이다.


항공기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 탑승구를 떠나는 직원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짐을 찾고 다음 일정을 고민하면 된다. 이틀 후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도 이미 만석이라고 직원이 귀뜸해 주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짐이 나올 겁니다.”


모든 짐은 도착장 벨트를 통과해 나온다. 나를 두고 자리를 비웠던 직원은 20여분 후 볼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내가 짐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표정이 변했다. 아니죠? 아니라고 말해줘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 설마 비행기도 못 탄 마당에 짐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운이 나쁠 리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럴 수 있고, 그런 일이 정말 벌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요즘 유럽 공항 사정이 매우 열악합니다. 우리 사무실만 해도 코로나 확진으로 출근 못 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나머지 직원들이 죽을 맛입니다. 게다가 수하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공항 소속 직원들 자리가 많이 비었어요. 유난히 가방 분실 사고가 많긴 한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오늘은 어디서 주무실 겁니까?”


갑자기 비행기를 타지 못한 불운은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잃어버린 수하물 안에는 옷과 세면도구 등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 다 들어 있다. 내 수중에 있는 것이라고는 여권과 현금, 카드뿐이다. 이런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고? 갈아입을 옷도 없이?


황망해하는 내가 안 됐던지 직원은 호텔을 알아봐 주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무심한 독일어가 몇 마디 오간 후 밝은 표정이 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내에는 숙박 가능한 호텔 체인이 둘 있다. 그중 하나에 빈 방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요즘이 독일 연휴여서 호텔 예약도 다 만석인데 운이 좋으셨어요. 같이 가보시죠. 좀 비싸기는 하지만 가까운 곳이 편할 테니까요.”


제가요? 제가 운이 좋았다고요?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호텔인데 비누 정도는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셔틀버스를 타고 딱 하나 남아 있다는 방을 찾아 호텔로 향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어쩐다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 빈방은 없습니다.”


호텔 카운터의 매니저 명찰을 붙인 독일 여성이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 뭐라고요? 이 정도 되니 나를 데리고 온 공항 직원도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비행기를 못 고, 가방잃어버렸고, 방도 없어졌다. 이 정도면 삼진 아웃이다.


“잠은 제가 어디 가서 든 잘 테니 혹시 편의점을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간단한 세면도구라도 좀 사야 할 것 같은데......”


이 말에 직원은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됐다. 세면도구를 파는 편의점은 일찍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밤 아홉 시가 이미 넘은 시간이다.


“여기서 한국의 편의점을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정도면  삼진 아웃을 넘어 삼중살을 당한 기분이다. 그렇군요. 오늘 저의 불운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군요. 좋습니다. 다만 내일은 꼭 제 짐을 찾아주시겠습니까? 직원과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졌다.




다음 날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몇 년 전 남미 여행을 50일 정도 하면서 꽤 열악한 상태도 잘 견딘다고 자부했는데, 갈아입을 옷 없이 하루 밤을 보내고 나니 그때 기분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무엇보다 기분이 최악이다. 가방을 찾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도 같은데……. 하지만 내 불운은 아직 진행형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주인 잃은 가방들. 이런 가방 보관소가 여러개 있다.


“청사를 다 뒤졌는데 가방을 못 찾았어요. 찾으면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시기로 결정하셨어요?”


어제 얼굴을 익혀 이제는 오랜 지인처럼 느껴지는 공항 직원이 내게 말했다.


“파리로 가서 거기서 인천가는 항공편을 이용하려고요. 파리에서는 오늘 저녁 인천행 비행기가 있더라고요. 오늘 길에 버스에서 파리까지 가는 항공편 결제했어요. 죄송한데 컴퓨터 한 번만 사용해도 될까요? 확약 메일이 올 때가 지났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여 파리까지 가는 항공편의 확약 메일은 사무실 컴퓨터를 통해 확인해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 카운터에 도착하자 위층 서비스 사무실에 문의하라고 독일인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곳은 ‘원스톱 서비스’의 개념  같은 것을 찾으면 안되는 독일인 것이다.




그가 알려준 곳으로 가보니 유리문이 달린 사무실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겨우 며칠 머물렀을 뿐이지만, 독일에서 줄을 서는 일은 평온하고 일상적인 일과에 속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파리까지 가는 항공기의 시간은 아직 4시간 정도 남아있었고 기다리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건을 물었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리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내 용건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멀어져 갔다.




한 시간 후 드디어 유리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 아마 그 전 편이 결항되어서 예약이 안 됐을 거야. 확약 메일을 받지 못했다면 예약이 안 됐다는 것이지. 우리는 예약에 대해서는 알아봐 줄 수 없어. 저쪽 카운터로 가봐.”


네? 뭐라고요? 어디로 가라고요?




결국 파리행 항공기는 탑승하지 못했다. 여행하며 느껴야 했던 작은 불운들이 모두 모여 있다가 한 방에 공격하는 느낌도 들었다. 짜증이 나는 한편 걱정스럽기도 다. 오늘 귀국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COVID 19 검사도 다시 해야 한다.


공항 청사 바닥에 앉아 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는 표를 검색했다. 대만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항공기가 내일 오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오후에 인천으로 가는 직항 편은 만석이라 표를 살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혹시 남는 표가 있다고 해도 빨리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고 싶었다. 어쩐지 이 도시가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다. 표를 예약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로나 검사소를 찾아 지하를 헤맨 후 20유로를 지불하고 검사지를 받았다. 베를린 검사비보다 5유로가 싸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냥 울고 싶었다.




그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하루 더 갈아입을 옷도 없이 잠을 자야겠지만 곧 내 불운은 끝날 것이라고 위로하며 청사를 빠져나왔다. 배는 고프지도 않았다.


잠잘 곳을 찾을 겸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나가 보기로 했다. 다행인 점은 내게 무적의 ‘9유로 티켓’이 있다는 것이다. 전철을 타고 괴테 광장이 있다는 뢰머 역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냥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오페라 극장 앞에는 노천 식당이 열리고  있었다. 사과주가 명물이라는데, 그런 것이 들어갈 기분이 아니다. 공항 사무실에 연락해 가방을 찾았는지 확인했지만 이제는 범위를 더 넓혀서 찾겠다는 ‘긍정적이지만 절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오페라 극장 앞에는 노천 식당이 섰다.


핸드폰 지도 앱을 보며 길을 걷고 있을 때………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빌딩 사이 노천카페 앞에서 비를 피해 잠시 서 있었다. 곧 그칠 거야. 이렇게까지 운이 나쁠 수는 없어.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비까지 맞아야 한다고?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던 독일인이 우산을 폈다. 여기, 이런 곳이야? 우산 쓰고 맥주 마셔야 하는 곳? 정말이야?


정말요? 이 빗속에서 우산쓰고 맥주 드시는 겁니까?


20분쯤 그곳에 서 있다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인강을 따라 걸었다. 비가 내리겠다면 내려야지. 운이 없어야 한다면 그래야지, 방법이 있나. 다시는 ‘프랑크푸르트’ 쪽은 쳐다도 보지 않을 거야. ‘프랑크 소시지’도 먹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밤을 보냈다.


프랑크푸르트,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마인강을 걸고 약속해요!




이야기를 건너뛰어 말하자면, 나는 다음 날 오후 늦게 인천으로 오는 직항 편을 타고 귀국했다. 출발 1시간 , 예약해 두었던 ‘대만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편에  심각한 기체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는 시간도 미정이고  아마 대만에서 하루를 묵어야 인천에 갈 수 있을 것이라 말에 표를 취소했다. 이 정도면 하늘이 나를 버리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뭐 작정을 할 만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알이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공항 사무실에 전화하자 가방을 찾았다고 말해주었다. 예약 취소된 표가 두 장 생겼는데 구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심스러운 제안과 함께.

"이 표도 곧 팔릴 지 몰라요."


결국 인천행 티켓을 제 값으로 구입한 후 귀국했다. 항공기 표값은 출발 시간에 임박할 수로 비싸진다. 그래도, 뭐, 어쩔 수없지. 일이 그 지경쯤 됐을 때  내 최고의 염원은 '프랑크푸르트를 빠져나가는 것'이 되어 있었다. 복리 이자를 내더라도 표를 사자! 한 점의 주저함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3박 4일이 걸린 셈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베를린 박물관이나 더 보고 올걸......




여행은 뭘까?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 시간에 ‘하늘이 이렇게까지 나를 버리다니,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라는 반성 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이란 순서를 정해 놓고 오지 않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내 입장에서나 그런 것이지 벌어지는 일에는 호, 불호가 없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그저 일어난 것이다.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자연재해와 천재지변은 그냥 벌어진다. 고대의 찬란한 문명들 중 화산 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사라진 것이 한 둘일까. 어쩌면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지구라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들은 이웃의 것을 탐한다. 그리스와 같은 도시국가들은 단합하여 페르시아처럼 거대한 제국을 멈추게 했고, 독일의 제후국들은 30년 전쟁에 휘말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냥 벌어지는 것을 수습하는 것 정도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여행이란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에 잠시 몸을 담그는 일이다.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그들의 문화, 에티켓 같은 것들에 올라타는 일이다. 내 것이 아닌 질서가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것이 내게 좋고 나쁜지는 빨리 배울 수 있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과거의 고난을 극복했는지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값진 교훈이다.


그리스와 독일이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만들고 있듯이 우리도 현재를 만들어 가야 한다. 페르시아와 맞붙은 그리스처럼 치열할 수도 있고, 어느 날 독일처럼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질서를 만드는 것도, 지키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귀찮고, 겁나고, 무섭고, 재미있는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우리의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다. 지금은 지쳐서 다음 여행 같은 것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 떠나지 못해 몸이 근질거릴지도 모른다.


돌아왔으니...... 이제 돈 벌러 가야한다. 오늘 밤에도 월급이 통장을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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