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최욱경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마주친 낙엽, 우듬지의 바랜 색. 광활한 시각적 감각을 인지하면서 나는 걸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계절의 공기였다, 냄새였고. “가을, 때로 우리는 환기됩니다.”라는 문장이나, “나는 교회에서 초월을, 미술관에서 고양을 경험한다.” 글에 나 자신을 내어주는 걸 결코 아까워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이 어렴풋하면서 그때의 내 열의가 어땠는지 희미하게 스쳤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몰랐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관람한 건 최욱경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전이었다. 이미 작고한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해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현대미술작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세계의 반경을 넓혔다. 그는 마크 로스코와도 대화했을까, 궁금했는데 어디서도 답의 힌트를 얻지 못했다. 그의 이력 중에 내 감각을 사로잡은 건 그가 시인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몇 차례 문학과 관련된 강의도 했었다 하고. 그래서인지, 작품을 구상하는 아이디어나 모티프처럼 짧은 글을 적어놓은 걸 읽는데 문장이 매끄러웠고, 감각적이었다. 문학과 미술, 시와 그림, 어느 하나만도 수행해내기 어려운 일을 동시에 감당하려는 또 그렇게 성공적으로 해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사랑인가. 문학과 그림에 대한 사랑.
이 전시는 테마가 일대기 순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시와 대체로 비슷했는데, '최욱경 에필로그 테마'로 마무리된다는 점은 달랐다. '최욱경 에필로그'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으로만 구성되었다. 여기서 나는 어딘가 뭉클해졌다. 그가 적은 에세이 어딘가에서 작품이 거울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했는데, 저 모습들은 그가 그린 모든 작품의 얼굴인 건가. 또는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은 결국 그의 자화상인 건가. 최욱경이라는 존재가 여기서는 작은 편린으로 흩어져 있는데, 그 흩어진 조각은 또 하나의 작은 최욱경이어서 실은 하나의 최욱경이 다수의 최욱경으로 전시관에 존재해 있다, 는 생각도 가능한 건가. 그렇게 나는, 낯선 이의 열의, 사랑에 감탄하면서, 당신의 얼굴을 마주 본다. 내가 당신을 읽은 것처럼 당신도 나를 읽어주기를 기다리면서.
2021. 11. 16. T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