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한 관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무슨 부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던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차분한 생머리의 그녀에게 나는 분명히 부탁을 했었다. 거기까지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014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시상식에서 만났으니 벌써 10년이 되었다.
2010년 두 군데 신문사에서 신춘문예가 당선되었지만 이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앙지가 아니라 그럴까? 아니면 내 소설이 청탁을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서 그럴까? 수동적이라 그저 청탁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줄 생각해 고민만 더 커진 시기였다.
전북일보와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은 당선 같지만 당선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되다 만 기분. 그러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여성중앙 로맨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거라고 자신하고 시작했었다.
심사 위원이 '유혹'의 권지예 작가와 '로맨스가 필요해' 정현정 작가인 것을 보고 웹소설 스타일이 아닌 단편소설을 써온 내가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되었다. 전년도 1회 대상 상금이 오백만 원이었데 2회는 삼성에서 삥을 뜯어 천만 원으로 올랐다. (시상식에서는 주로 현금을 직접 주는 경우가 많다. 세금 떼고 빳빳한 수표가 봉투에 들어 있는 걸 받았을 때 음.... 기분이 아주 좋다.)
보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써서 투고한 소설은 예상대로 대상을 받았고 나는 이제 공모전이라는 공모전은 죄다 얼쩡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써 놓은 것이 많으니 꺼내서 보내기도 하고 쓰기도 했다. 덕분에 융합스토리 공모전이나 디지털 작가상 등에서 상을 받았다.
장려상은 상금이 적어서 그냥 기분이었지만 디지털 작가상은 상금보다 일박 이일의 시상식을 겸한 세미나가 꽤 흥미로웠다. 파주에서 당선자들을 모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당시 웹소설이 아직 터지기 전이라 앞으로의 전망을 기대하는 내용이었다.
그 기대대로 웹소설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나는 세미나 내용대신 그녀를 얻었다. 당시 협찬사였던 yes24에 당선자들의 소설이 연재되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이 있었는데 그게 옆에 앉았던 그녀의 작품이었다. 나는 다양한 만남이나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는 또 적극적이어서 팬심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쪽지를 보냈다.
내가 먼저 보낸 쪽지의 답을 받으며 우리는 쪽지, 이메일, 전화, 그리고 둘이서만 운영하는 카페 등으로 친분을 쌓아왔다. 그게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녀와 나는 사는 곳이 멀어 3시간 거리이다 보니 만남을 할 수는 없었다. 초반에 기획 소설을 써보자는 취지로 서울에서 몇 번 만났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나는 3시간을 달려 그녀를 만나기에는 너무 저질인 체력을 가졌고 그녀가 이곳에 오기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굳이 만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글로 만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십 년 동안 우리는 몇 권의 책을 냈고 몇 번의 슬럼프를 겪었으며 지금 같이 브런치를 연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단히 나태한 관계지만 서로가 있어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문우가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작업이라 외로울 때가 많다. 유명 작가가 돼서 편집자가 나를 격려해 주고 채찍질 해주면 좋겠지만 (사실 이런 시스템으로 작업을 해봤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전정신경염에 걸린 건 편집자와 같이 작업하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때 중단된 작업은 끝내 계속할 수 없었다.)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이 그런 걸 바라기는 어렵다.
이런 내게 그녀가 있어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추천하고 좋은 책을 권해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지만 얼굴은 보지 않는 관계. 서로의 일상을 침해할 일은 없지만 내가 외로운 순간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그녀.
그녀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러니 팬심은 가지고만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날 내가 보낸 쪽지 하나가 이후 나의 삶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으니 말이다. 나태하지만 그래서 좋은 관계가 이런 거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