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 리드 '흐르는 강물처럼'
방금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은 갓 튀겨낸 따끈따끈한 호떡 같다. 입에 집어넣으면 뜨거운 설탕시럽이 주르륵 흘러 입천장을 데어버릴 것 같은 마음. 이대로 자판을 두드리면 호들갑이 넘쳐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잠시 숨을 돌리고 호떡이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너무 식으면 뻣뻣하고 맛이 없으니 약간의 여유만 있으면 된다.
1948년이라고 쓰인 '흐르는 강물처럼'의 첫 챕터를 펼치자마자 이 책에 매료되었다.
참 볼품없는 남자였다.
적어도 첫눈에는 그랬다.
"저기"
그가 땟국에 전 엄지와 검지로 낡아빠진 빨간 야구 모자의 챙을 잡아당기며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여인숙으로 가는 길이 맞나요?"
이게 다였다.
낯선 남자의 질문에 토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인데"라고 답한다. 동네가 작아서 어떤 길로 가든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을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말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인데'로 흘러가는 강물 같은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선택을 하고 불공평하게도 너무 오랫동안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선택과 결과에 대한 우리의 미련이 평행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다층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하는 그 순간 다른 선택의 우주가 열리고 거기에는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삶 말이다.
이동진이 이 책을 추천하며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인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생은 처음인데 그 처음의 생만을 살고 가기에는 너무 빈약하니 다양한 삶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평행 우주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수가 많아도 여기서 삶을 사는 것은 단 하나의 '나' 일 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토리가 그렇게 볼품없는 남자를 만나는 그 순간,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그 찰나의 순간, 그녀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흘러간다. 강물은 거꾸로 흐를 수 없고 짧은 순간의 선택에 결과는 나머지 인생 모두를 결정한다.
열입곱 살의 빅토리아 내시는 (가족들은 토리라고 부른다.) 복숭아 과수원집 딸이다. 어머니와 이모, 사촌 오빠가 오 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고 지금은 전쟁에서 불구가 된 이모부와 엉망진창인 동생 세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올라 지역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한 복숭아 농사를 성공시켜 기가 맛있게 달콤한 복숭아를 키워내는 내시 집안은 오직 일밖에 모른다. 집안의 기둥이었던 엄마의 죽음 이후 가사노동을 책임져온 토리는 낯선 이방인 남자를 보자마자 어처구니없을 만큼 그에게 끌렸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아직 호떡의 시럽이 식지 않았는지 나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린다. 토리와 이방인 윌슨 문의 만남이 그중에 그대를 만나는 것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인디언인 윌슨 문은 아이올라에 들어선 순간부터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낯선 사람이라면 같은 백인이라도 경계하는 시골 마을에서 인디언 소년이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토리는 윌슨 문이 아이올라에 머무르다가는 신변이 안전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그가 떠나기를 바라면서도 그가 곁에 머물러 주기를 원했다. 열일곱의 사랑은 미친 듯 격정적이었고 위험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파국이 왔다.
갑자기 사라진 윌슨은 온몸의 피부가 벗겨진 채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 죽음은 동생 세스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게 명확했다. 그리고 토리의 뱃속에는 윌슨의 아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윌슨을 처음 만난 순간의 선택이 방향을 틀었고,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 선택이 다시 한번 새로운 물줄기를 만든다.
그녀는 이제 어린 토리가 아닌 빅토리아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처음 도입부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다시 수렴해 결말로 치달을 때는 도입부보다 더 큰 감동을 몰고 온다. 빅토리아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또 다른 여자 잉거의 삶도 그랬다.
나는 가끔 사랑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제대로 된 판단도 어려워서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버리고 목숨에 버금가게 귀한 것도 쉽게 버린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애절했던 사랑이 쉽게 변하기도 해서 나를 당혹시킨다. 어쩌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사랑 아닐까 싶기도 하다.
토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윌슨 문을 만난 거리에서 시작된 그녀의 사랑은 평생을 걸쳐 그녀를 따라 다녀녔고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빅토리아의 사랑도 유장한 자연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건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빅토리아가 댐 건설로 수몰 계획인 아이올라 주민중 가장 먼저 땅을 넘기고 복숭아나무를 이전한 곳에서 그녀가 한 행동이다.
식물학자의 조언에 따라 빅토리아는 복숭아나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이 년동안 나무에 핀 탐스러운 꽃들을 모두 잘라낸다. 뿌리가 새로운 땅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영양이 꽃이나 열매에 가는 것을 막아 준 것이다.
그냥 지나치면 별것도 아닌 이 부분이 이상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 유명한 내시 복숭아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 아프지만 꽃을 잘라내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게 상징하는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읽을 당시에는 모르면서도 생각에 빠졌다. 꽃을 잘라줘야 할 때는 욕심부리지 말고 반드시 잘라줘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