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나 건물로 시야기 막힌 곳에서 생활하는 나는 사방이 너무 트인 곳에 가면 이질적인 풍경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낀다. 집에서 자동차로 이십 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임에도 그곳에 가면 어디서도 느끼지 못하는 낯선 감정에 사로잡힌다.
겨울보다는 여름날, 8시쯤 어스름한 길을 걸어 경안천 물을 막아 놓은 보 앞에 섰다. 보를 건너 곧장 가면 경안천 습지 공원이 나온다. 보에서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사방에는 아무도 없다. 멀리서 동양최대 물류창고라고 하는 곳이 망망대해를 달리는 여객선처럼 불빛을 밝히고 있다.
보의 입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땅거미가 회색빛으로 물들인 풍경 속에서 내가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도드라진 것 같기도 한 감정이 뒤섞인다.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그냥 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점이 점점 존재감을 키운다.
내가 여기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여름밤 혼자 이곳에 서 있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알 필요가 없다. 풍경 속에 스며들어가는 나는 수풀 속 노루 같기도 하고 바닥을 기어가는 두꺼비 같기도 하며 언젠가 물가로 나와 누군가의 손에 잡혔다 방생된 자라 같기도 하다.
어둠이 더 짙어지면 나는 몸을 돌려 되돌아간다. 지금부터는 모기와의 전쟁이다.
겨울이 되었다. 경안천이 흘러 습지 공원까지 닿았다. 고니 떼가 날아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먼산에 쌓여있다. 나는 또 혼자 이곳을 걷는다. 한낮의 습지 공원은 겨울이라도 사람이 제법 있다. 공기가 상쾌하다. 한 바퀴를 돌아도 삼천보를 겨우 넘기는 코스다. 여기는 그냥 공원일뿐이다. 여름날의 감정은 이곳과 전혀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