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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슬픔을, 죽음에서 빛을

마거릿 렌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by 은예진

1961년 생인 마거릿 렌클은 미국 앨라베마주 안달루시아 출신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1년 생이니까 생일이 지났으면 63세. 책의 맨 마지막장에 그녀의 사진이 나온다. 평범하게 생긴 미국 아줌마다. 단발머리에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너무 뚱뚱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그 나잇대로 보이는 중년 여자.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발행된 것은 2019년이니까 그때는 오십 대였다.


내가 작가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녀의 삶이 지금 여기서 내가 고민하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서이다. 연로하신 부모님 때문에 걱정인 동양의 중년 여성과 미국의 마거릿 렌클이 겪은 이야기가 별 차이가 없어서 약간 놀랐다.


미국에서 가족의 가치가 중요시 여겨지는 것을 알았지만 그만큼 독립도 중요하게 여겨 성인이 된 이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우리의 착각을 여지없이 깨는 마거릿의 이야기에 당황스러웠다.


이 책의 저자인 마거릿은 어머니가 병들고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가 되자 자기가 사는 곳에서 오분 거리에 집을 구해 어머니를 모신다. 매일 어머니의 상태를 체크하며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폈다. 그녀가 어머니를 모셔온다고 하자 남편의 주변 사람들은 장모님을 모셔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마거릿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곧 심부전증과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시부모님을 가까이서 모셔야 했다. 마거릿의 여동생은 그녀가 시부모님을 모셔올 거라고 하자 상황이 어떻게 될지 뻔하다며 경고했다. 이사하자마자 두 분이 번갈아 온갖 사건사고를 겪고 그럴 때면 남편 형제들이 그녀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마거릿의 남편은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고 싶어 했고 그녀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작업을 위해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녀가 집을 나가겠다는 소리로 알아듣고 당황해서 쩔쩔맨다.


1961년생 미국 아줌마나 대한민국 중년이나 고민이 이렇게 똑같다니. 너무 의외라 깜짝 놀랐다. 이 책은 대단히 서정적이고 자연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책인데 나는 여기에 꽂혀 다른 것은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사람 사는 곳의 고민은 미국 땅이건 한국 땅이건 다 똑같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천륜이고 그 천륜의 문제에 는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 크게 존재하지 않았다.




책은 마거릿의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 한 챕터를 쓰고 다음 챕터에서는 그녀의 증조부모대부터 시작되는 가족의 연대기를 그린다.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나오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애벌레가 약간 움직이고, 마침내 나는 깨닫는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웃자란 피부를 찢고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으로부터 기어서 달아나는,

삶의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전의 휴지 상태일 뿐임을.

그것은 새로운 생물이다.

심지어 그것은 다시 시작하기 전에 다시 시작한다.

마거릿은 외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부터 어머니의 죽음까지 죽음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새롭게 시작되는 또 다른 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죽음은 안타까운 이별이지만 자연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마거릿의 마당에는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인다. 거기서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새로운 생명은 죽음 위에서, 죽음을 토대로 이어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는데 차츰 맥락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대단히 섬세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과 자연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짧지만 시처럼 응축된 한 편의 에세이가 머리를 맑게 해 준다.




친정어머니가 인지 장애를 겪는다는 것은 느낀 것은 벌써 오래전부터였다. 엄마는 마트 입구에서 당신이 왜 여길 온 건지 몰라 당황했었다. 칠십 대에 갓 들어선 엄마는 남들보다 빠르게 노화를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두려워했다.


몸은 아프고 우울했으며 무언가 항상 불안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당신이 평생 해왔던 은행 업무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금을 낼 수 없어지고 다음에는 음식을 할 수 없어졌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이 자신의 인지장애를 느낄 수 있었던 초반에는 그런 상황이 우울해서 내내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지 장애가 치매로 더 진전되면서 엄마는 드라마틱하게 다른 세계로 접어들었다. 평생 그녀를 억압하던 해야 할 일들 그 의무에서 벗어나자 남은 것은 진짜 사랑뿐이었다.


사랑만 남은 엄마는 이제 행복하다고 한다. 자식을 보면 너무 예쁘고, 평생 이기적으로 굴던 남편이 곁에 없으면 보고 싶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나는 행복하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복지관에 다니고 요양보호사와 산책을 한다.


그런 엄마가 아버지와 교외에 쌀을 사러 갔던 날. 차에서 내린 엄마는 정미소 근처에서 노는 참새를 보고 갑자기 양손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불렀다.


"이리온, 이리온."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참새가 부른다고 오나?


그런데 엄마의 부름에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손아귀에 앉았다고 한다. 엄마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참새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버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엄마의 손에서 잠시 놀던 참새는 그렇게 다시 포르르 하늘로 날아올랐다.


참새도 알았을까? 사랑만 남은 엄마가 얼마나 무해한 할머니인 줄.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장모님은 천사가 되신 모양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수긍하며 엄마가 행복한 것에 감사했다. 평생 양보만 하던 엄마는 이제 자신이 먹고 싶은 걸 먹고 싶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지 못했던 삶의 굴레를 엄마는 그렇게 치매의 힘을 빌려 벗어났다. 그 해방감에 엄마는 항상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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