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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나태한 노래

by 은예진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그저 내 키만 한 소파에 서로 기대어 앉아

과자나 까먹으며 tv속 연예인에게 깔깔댈 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치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 하는 것

잠시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지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하는 것

잠시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당신과 남은 생을 사는 것


- 슌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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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이 눈처럼 쏟아지는 날이었다. 차가 밀려 서 있는데 눈앞에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슌의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이라니. 세상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었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손을 뻗었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퇴근길 늦은 오후의 햇살아래 쏟아지는 벚꽃 잎이 손에 닿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태하기로 치면 나의 삶이 최고라는 것. 나는 정말 나태하게 살고 있으니 나태한 삶에 대해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고도 로맨스 공모전 대상을 받고도 이후에 더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공한 사람과 나 같은 사람을 비교해 보면 일상생활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임계점을 넘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나는 제풀에 꺾이는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은 그 임계점을 넘어 올라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으른 것은 아니고 성실하지만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할 때 무너지는 나의 한계는 부족한 체력에서 온다. 나는 내 체력을 인정하고 나태한 삶을 사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태한 삶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출근하면 핸드드립으로 에티오피아 커피를 내린다. 지난번에는 강배전 한 케냐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중배 전한 에티오피아다. 중배 전이라 커피맛이 더 살아있고 산미가 느껴지는 것이 좋다.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시기와 마실 수 있는 시기가 있기에 하루 한잔 핸드드립한 커피를 마실 때면 언제나 감사한 기분이 든다. 이런 나태함이 좋다.


나태한 삶에도 급이 있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어 공부를 하는 시간과 유튜브 쇼츠만 멍청하게 보는 시간이 있다. 일본 여행도 갈 체력이 되지 못하면서 일어 공부를 하는 시간은 기분이 좋지만 쇼츠만 보고 나면 불쾌해진다.


손에 책과 핸드폰을 들고 등을 기대 않아서 핸드폰만 보고 나면 또 불쾌해진다. 결국 아무리 나태한 사람이라도 핸드폰과 함께하는 나태함은 정말 최악이다. 나는 나태하게 공부하고, 나태하게 책을 읽고, 나태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 그 모든 나태함을 모아 기록하면 어떤 모양을 갖게 될까.


그래봤자 별거 없지만 나태한 삶을 돌아볼 시간을 갖기로 했다. 꼭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기 위로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시 태어나면 치열하게 살 수 있는 재능과 체력을 갖고 싶다. 그럴 수 없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슌은 당신과 함께 나태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하는데 늙은 나는 차마 그런 말은 할 수 없고 내가 만드는 나태한 순간을 곱씹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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