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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스 크로싱

가혹하고 가차 없지만 또한 고요한

by 은예진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단연 '핏빛 자오선'을 능가하는 작품이 없다. 읽는 내내 코맥 매카시가 풀어내는 그 끔찍한 이야기들에 몸서리가 쳐진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은 죄다 읽기 힘겹지만 '핏빛 자오선'에서 홀든 판사가 강아지를 물에 던지고 총으로 쏘던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는 잔혹스러움이 있었다.


'부처스 크로싱'에 대해 뉴욕 타임즈는 코맥 매카시에 길을 열어준 최초의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말을 했다. 수정주의 서부극이란 우리가 흔히 아는 나쁜 놈과 좋은 놈의 싸움이 아닌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서부극을 일겉는다. 그러니까 수정주의 서부극은 좋은 놈이 총을 쏴서 나쁜 놈을 모두 죽이고 돌아서는 쾌감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처스 크로싱은 총을 쏘는 서부극이기는 한데 고요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토록 정적이며 이토록 차분한 서부극이라니. 읽으면서 내내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암스 답다고 생각했다.


하버드 대학을 다니던 도시 남자, 서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앤드루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을 모두 가지고 부처스 크로싱을 찾아왔다. 그가 무작정 서부의 작은 마을인 부처스 크로싱에 온 이유는 평소 아버지가 유일하게 아는 서부남자 맥도널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맥도널드는 하버드를 3학년까지 다녔다는 앤드루스에게 자신과 같이 사업을 하자고 권유한다. 들소가죽 거간꾼인 맥도널드는 작년에 10만 장을 거래했다며 앞으로 부처스 크로싱이 얼마나 성장할지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철도가 들어오고 마을이 커지고 있으므로 땅을 사모으면 부자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앤드루스는 맥도널드의 제안을 거절하며 자신은 그저 자연을 알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말한다. 맥도널드는 이해할 수 없는 청년에게 사냥꾼인 밀러를 소개해준다. 밀러는 술집에서 한쪽 팔이 없는 찰리와 창녀 프랜신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서부를 알고 싶다는 동부 청년 앤드루스에게 밀러는 콜로라도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간 골짜기에서 본 수천 마리의 들소 떼에 대해 이야기했다. 밀러는 당시 본 엄청난 들소 떼 이야기를 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떠들고 다녔지만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이 동부 애송이 청년이 가보고 싶다며 선 듯 돈을 내놓았다.


그렇게 들소 사냥대가 꾸려졌다. 들소가죽을 싣고 올 마차와 마차를 끌 황소, 들소 가죽을 벗기는 전문가 슈나이더, 살림을 담당할 찰리까지 네 명이 길을 떠난다. 가는 길은 결코 순조롭지 않다. 해는 뜨겁고 물이 있는 곳은 멀다. 슈나이더는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앤드루스는 일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는 십 년 전에 본 들소 떼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동행들을 몰아친다. 맥도널드가 고용한 사냥꾼들은 한 마리의 들소 가죽당 50센트를 받고 있지만 밀러가 잡아 오면 4달러를 준다고 했다. 이번에 성공하면 밀러의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던 그곳으로 들소를 사냥하러 떠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희열이 더 컸다.


마침내 그들은 밀러가 말한 곳에 도착하고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엄청난 들소 떼를 마주한 밀러는 그날부터 들소와 자신만 있는 듯 그의 세계로 빠져든다. 슈나이더가 아무리 더는 가죽을 벗길 수 없다며 중단하기를 요구해도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총을 쏜다.


앤드루스는 슈나이더를 도와 들소가죽을 벗기며 밀러가 아무도 들여놓지 않는 그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밀러는 점점 광기에 빠져 들소를 한 마리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기세로 사냥을 하고 그 때문에 계절을 넘기고 만다. 골짜기에 겨울이 왔고 그들은 엄청난 가죽으로 둘러싸인 곳에 눈과 함께 갇히고 만다.


장장 8개월여 겨울이 계속됐다. 그동안 눈을 피해 웅크리고 있던 앤드루스 일행이 드디어 밖으로 나온다.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소가죽을 벗겼으니 1,500장만 챙기고 3,000장은 나중에 다시 와서 가져가기로 했다. 그렇게 부처스 크로싱으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순조롭지 않았다.


봄을 맞아 불어난 강물에 마차가 전복되며 가죽 1,500장을 모두 잃었으며 슈나이더마저 목숨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는 아직 남겨두고 온 3,000장의 가죽이 있음에 안도한다. 그렇게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한 그들은 믿을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결말이 전체를 압도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에 충격이 컸다. 밀러는 그토록 꿈꾸던 일을 앤드루스 덕분에 이루었지만 그 꿈은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들소 떼를 향한 그의 열망은 헛된 일이었지만 그는 그 헛됨을 위해 끝까지 달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묻는 안도현의 시처럼 밀러는 자신의 꿈을 뜨겁게 태워버렸다.


존 윌리암스는 대단히 불친절하다. 상황 묘사는 리얼하게 하는데 심리 묘사가 전혀 없다. 앤드루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읽는 내내 답답하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살다 보면 운이 좌우하는 영역이 너무 크다. 그리고 그 운은 착한 사람에게만 오지 않는다. 무작위 한 운의 폭격에 망가진 밀러의 모습과 그걸 바라보는 앤드루스의 시선이 허망하기 그지없다. 나도 그들과 같이 일장춘몽을 꾼 것만 같았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는 서부극이었다. 그 나 저자 앤드루스는 다시 동부로 돌아가려나?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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