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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호기심과 혐오 그 사이 어디쯤

by 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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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아홉 이른 나이에 자다가 돌아가신 시누는 무당이었다. 살아온 삶이 파란만장했던 그녀는 값비싼 보석과 옷을 탐하면서도 항상 외로움에 지쳐있었다. 그랬던 사람이 신을 모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다지 낯설지도 않았다. 결핍이 많았던 그녀의 가슴을 무엇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정말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화려한 굿판을 벌이고 사치를 일삼을 만큼 이름을 날리던 그녀는 오래지 않아 신에게 버림받은 듯 보였다. 그녀가 모신다는 장군님도 아기동자도 할머니도 자주 오지 않는 후미진 주택가 골방에는 알록달록한 물건들만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향내 나는 방과 뜬금없이 아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볼 때마다 호기심과 혐오가 공존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 혐오와 호기심 속에는 칼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 같은 게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검복리 쪽으로 빠지면 골짜기 상류에 큰 굿당이 있다. 어쩌다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남편과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굿을 하고 결혼을 잘한 언니가 동생을 위해 돈을 내놓고 굿을 했다는 문우의 이야기를 했다. 그 문우는 언니가 해준 굿 뒤에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며 굿의 효험을 자랑했었다.


나는 계속해서 이어져있는 굿당과 신물들을 보며 굿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누나가 무당이었던 남편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 않은 어쩌면 그런 곳에 들어온 것 자체가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날밤 나는 누군가 벨을 누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 인터폰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곱게 차려입은 어린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자기를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 몰랐다.


악몽이었다. 이후로 나는 남한산성에 가는 것조차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검복리 당골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무당에 대해 가지는 호기심과 혐오는 이렇게 묘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굿을 하는 장면조차 보기 꺼려진다. 유튜브 쇼츠로 올라오는 김고은의 굿 장면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공포감은 그런 거였다. 무언가 나를 사로잡는 호기심과 혐오의 그 어떤 부분이 건드려질까 봐. 그래서 김고은도 두려워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러다 신들리면 어쩌냐고 말이다.


굿을 하는 김고은의 모습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정말 미친 듯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보는 사람이 탈진할 지경이었다. 휘두르던 칼로 돼지의 등을 가르고 숯검댕을 얼굴에 문지르는 화림은 지금까지 보던 짙은 눈썹과 진한 화장으로만 보여주던 기존의 무당 역할을 하는 배우들과 차원이 달랐다.


이미 볼사람은 다 본 천만 영화지만 그래도 간략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화림과 봉길이 미국의 고객을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청난 부자이지만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는 고객이 무당까지 부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갓 태어난 아기였다.


아기는 잠들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울어댄다고 했다. 겨우 약에 의지해 진정 상태인 아기를 본 화림이 휘파람을 분다. 그녀는 묫바람이라고 했다. 죽은 조상이 불편하다고 지랄을 하는 거라며 파묘를 권했다. 그렇게 지관인 상덕과 장의사인 영근이 소환된다.


상덕과 영근은 돈 냄새를 맡고 들뜬 마음으로 묘를 향하지만 막상 묫자리에 도달하자 당황한다. 그곳은 도저히 묘를 쓸 곳이 아닌 악지임을 알아본 상덕이 발을 뺀다. 직감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 그를 화림이 대살굿으로 회유한다.


굿과 파묘가 같이 진행되고 이름조차 없는 무덤 속에서 나온 관은 왕실에서나 쓴다는 향나무 관이었다. 비 오는 날 화장을 하면 망자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영근은 급하게 관을 장례식장에 맡기는데 고급 관을 본 장례식장 직원이 욕심에 관 뚜껑을 연다. 그리고 관에서 겁나 험한 것이 나온다.


전반부는 이렇게 파묘를 하고 험한 것이 나오는 과정, 미국에 있는 재력가 집안의 몰락이 그려진다면 후반부는 그 집안 관 밑에 있는 것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짜임새와 네 명의 어벤저스가 일본 정령과 싸워 이기는 해피엔딩까지 천만 관객이 들만한 영화였다. 이순신 역할을 했던 최민식이 분한 상덕이 피에 젖은 나무로 쇠말뚝인 일본 정령을 찌르는 장면은 정답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오컬트 영화의 애매한 결론보다 정답을 보여주는 것이 맞는 영화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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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빠르고 예민한 나는 가끔씩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며칠 전에 짐작할 수 있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모두 사라진 예민함이지만 어려서는 그 예민함이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나한테 소설 쓰기는 그 예민함과 불안감을 날리는 굿판이었다.


나는 유독 원색적이고 잔인한 장면에 집착했다. 선생님은 내가 전생에 피를 아주 많이 본 전쟁터의 장수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건 그저 내 집착에 대한 선생님의 농담이었다. 그 굿판 덕분에 나는 무사히 불안을 이기고 여기까지 왔다.


시누에게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로 '액땜'이라는 소설을 써서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금의 십일조는 시누의 신당에 올려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살아 있을 때 나는 그녀를 피하고만 싶어 했으면서 괜한 소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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