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도미찜

만석꾼의 며느리와 아나키스트

by 은예진


“아버님, 주안상 내왔습니다.”

“오냐, 어서 들여라.”


문을 열자 최 집사가 재빨리 일어나 상을 받는다. 방 안에서는 담뱃진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담배 장사로 돈을 벌었던 집안이어서 그런지 시아버지는 담뱃대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그다지 크지 않은 방에 남자 넷이 앉자 꽉 찬 느낌이다.


곽 서방은 기골이 장대한 것이 농사를 괜히 잘 짓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으로 치면 소 한 마리 노릇은 할 것만 같은 사내다. 시아버지는 상을 보더니 얼굴색이 달라졌다. 순간 본이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동이 어멈이 시월이가 대든 것을 이런 식으로 갚았구나 싶었다.


시아버지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면 나머지 세 사람의 얼굴색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방안 가득 고소하기도 하고 비릿하기도 한 음식 냄새가 퍼진다.


“아이고 어르신 보잘것없는 쇤네를 이렇게 대접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곽 서방이 갑자기 땅에 얼굴을 대며 감격스러워한다. 상이 잘못 나온 것에 대해 화가 난 장덕순은 곽 서방의 태도에 체념한 듯 이게 다 자네의 성의에 대한 나의 보답이라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본이는 부디 곽 서방이 도미찜이 아까워 하얗게 질린 시아버지의 마음을 모두 풀어주기 바라면서 방을 나왔다.


부엌으로 향하던 본이는 안채 뒤 소나무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장을 둘러싼 국화 향기가 코끝을 알싸하게 만들었다. 어쩌다 반빗아치마저도 자신을 골탕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서방님이 같이 있었으면 최소한 아랫것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일주일 만에 일본으로 유학 간 남편은 사 년 동안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쯤 부모님 앞으로 편지를 보내기는 하지만 본이에게는 엽서 한 장 쓰지 않았다.


그러니 동이 어멈은 물론이고 어쩌다 집안에 큰일을 치를 때마다 오는 여편네들조차 본이 앞에서 여기 서방님은 일본에서 신여성하고 살림을 차린 것이 틀림없다는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가.






본이가 초경을 치르자마자 혼삿날이 정해졌다. 이미 열두 살 때 결정된 혼사였다. 본이의 시어머니 오씨와 사돈 간인 올케가 주선한 일이었다. 족보를 사서 중인 집안의 설움을 돈으로 씻어낸 시아버지 장덕순의 증조부는 그 후로 며느리들을 명문가 일가붙이들로만 들였다.


이제 반상의 구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장덕순은 개의치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핏속에 흐르는 양반의 기질은 결국 후대의 길을 밝혀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배필로 몰락했지만 기개 있던 양반집 딸을 골랐다.


삼 대에 걸쳐 판서를 지낸 충청도 사대부였던 본이의 집안은 조선 왕실의 몰락과 함께 쇠락했지만 자존심 하나만은 대쪽 같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본이를 중인 출신의 산족보 양반집에 시집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홍색 바탕에 모란꽃이며 연꽃을 화려하게 수놓은 활옷을 입은 본이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족두리가 자주 흘러내려 끌어 올려야 했다. 한삼 때문에 손도 쉽게 나오지 않는 걸 겨우 빼내서 족두리를 올렸다.


혼인하느라 점심도 굶고 저녁도 굶었더니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먹음직스러운 적이며 떡이 한가득한 상을 놔두고도 이렇게 눈 내리깔고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서방님은 어째서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슬그머니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얇은 창호문 밖에서 색시가 서방님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모양이라며 키득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이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눈을 내리깔았다. 그저 발가락만 꼼지락 거리며 서방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당장들 꺼지지 못해 하며 호통 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본이는 그제야 나타난 서방님의 목소리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굵고 호방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본이는 경성에서 신교육을 받고 있는 서방님이니 배운 사람 목소리는 좀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야단치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섞여서 들리고 다시 잠잠해졌다.


기침 소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본이는 올라가려는 고개에 힘을 빳빳하게 주며 눈을 내리깔았다. 본이의 눈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버선발과 옥색 바지 그리고 청색 단령자락만 보일 뿐이었다.


서방님이 주안상 앞에 마지못해 앉는다는 듯 털썩 소리가 나게 주저앉았다. 그제야 본이도 남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관이 좁게 빠지고 눈매가 가늘고 길쭉한 쥐 상이다.


결혼식을 하는 동안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던 본이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너무 강퍅하고 메마르다는 것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호감 가는 구석이 없었다. 그제야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모와 관대를 벗어 던지고 단령 자락을 풀어 헤쳤다. 가랑이를 벌리고 다리를 들더니 버선을 벗느라 쩔쩔맸다. 본이는 다가가서 도와주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그렇게 허리를 움찔거리며 주저하는 사이 서방님은 버선을 윗목에 집어 던지고 본이를 흘겨보았다.


“야! 너 열여섯 살이라며? 나 참 기가 막혀서. 나보고 저런 촌뜨기 열여섯 살짜리랑 결혼을 하라니 그게 말이나 되냐고. 에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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