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약한 물건들

만석꾼의 며느리와 아나키스트

by 은예진

“도대체 아씨는 어디다 정신을 두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니까요.”

동이 어멈의 며느리 트집 잡기가 또 시작되었다. 그러잖아도 며느리가 마름과 소작인 주안상에 도미찜을 내간 것 때문에 남편의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나오는 길이었다.


“시월이 고 계집애가 아씨 심부름으로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거 알기는 아세요?”

“이상한 짓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마님은 모르고 계신 모양이었네요. 글쎄 그 계집애가…….”


동이 어멈이 마저 말하려는 순간 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님, 동경에 계신 서방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오 씨는 황급하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지금 동이 어멈의 며느리 험담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었다.


“어서 가져오게.”


편지를 다 읽은 오 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직 동이 어멈은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님, 무슨 내용인데 그리 기뻐하세요?”


“우리 연수가 드디어 돌아온다네. 어서 가서 며늘아기 데려오게”


동이 어멈은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끝마치지 못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방을 나선다. 오 씨는 그런 동이 어멈의 느린 발걸음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누구는 몰라서 내버려 두고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어른 노릇을 하려면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동이 어멈 같은 단순한 여편네가 알 리가 없다.


놀란 며느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네? 이레 뒤예요?”

“왜? 너는 네 서방님이 온다는데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그러게 말이다. 지난번 편지에는 일 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니 갑작스럽게 결정된 모양이다. 네 아버님 하고는 이야기가 있었던 일인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연수 오면 쓸 이부자리며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도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 일본에서 우리 음식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 생각하면 음식이 입에 넘어가지 않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매번 편지에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가 빠지는 적이 없었어요.”


본이는 시어머니의 상기된 표정과 달뜬 목소리 앞에서 고민스럽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하지만 올케와의 관계도 있고 하니 최소한의 보호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 어머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들 생각에 정신이 없던 오 씨가 무슨 말인가 싶어 말을 멈춘다.


“서방님이 떠나기 전에 저한테 한 말이 있는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을?”


본이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오 씨는 며느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은 되었지만 먼저 꺼낼 수는 없는 말이라 잠자코 기다렸다.


“서방님이 일본에서 돌아올 때 제가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만약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면 머리채라도 잡아서 끌어낼 거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네가 아직도 그런 말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연수가 너한테 엽서 한 장을 안 보내는 거 아니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번에 오면 잘 다독여서 눌러 앉힐 생각이나 해라. 남자는 다 여자 하기 나름인데 네가 오죽했으면 연수가 그런 말을 하고 갔겠니. 정신 똑바로 차려서 돌아오거든 좀 잘해봐라.”


오 씨는 며느리가 답답해서 말끝마다 혀를 찬다. 본이는 공연한 말을 꺼냈는가 싶어 고개를 숙였다. 뭉개진 손톱 끝이 눈에 들어온다. 사 년간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손톱이 남아나질 않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물어뜯어 손톱 끝은 해진 넝마 자락처럼 지저분하다. 혹시나 시어머니가 볼까 봐 손가락 마디를 구부렸다.


본이도 시어머니처럼 마냥 반갑고 좋았으면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남편의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고 그의 마음이 변했을 것 같지도 않다. 서방님은 곁에 있어도 없어도 본이에게는 곤란한 존재였다.


“그나저나 이제 네 서방님이 온다니 그 고약한 물건들 내다 버리든지 어떻게 처리해라.”

“네?”


“내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알아도 못 본 척해준 거다. 네가 서방도 없이 혼자 사는데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맘을 잡고 살 것 같아서 내가 눈 감고 있었는데 아랫사람들 말도 많고 연수도 오니 처리를 하도록 해라.”


“어머니!”


본이가 갑자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오 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오 씨는 깜짝 놀라서 멈칫했다. 그동안 며느리 입장에서 부당한 일들도 곧잘 있었지만 이렇게 눈에 힘을 주고 나선 적은 없었다. 오 씨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계산을 했다.


지금 기세로 보아서 이 문제를 더 들추면 일이 커질 공산이 크다. 이 일은 누가 봐도 며느리인 본이 보다 오씨에게 유리한 일이다. 그 고약한 것들은 며느리를 제대로 잡아야 할 일이 있을 때 꺼내 쓸 비장의 무기다.


제대로 쓰면 며느리를 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일인데 섣부르게 꺼내면 공연히 날려 버리고 며느리의 불만만 키울 우려가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오 씨는 재빨리 말을 돌린다.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그 귀한 도미찜을 아랫것들 주안상에 올려서 아버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느냐?”

“죄송합니다. 어머님,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본이가 눈에 힘을 풀고 고개를 조아린다.


“알았으면 빨리 나가서 연수 맞을 준비나 해라. 다음부터 또 그런 실수가 또 있으면 나를 거치지 않고 아버님에게 직접 혼이 날 테니 각오해라.”


오 씨는 아들이 매번 편지를 보낼 때마다 일본에서 사귀는 여자가 있으니 며느리를 내보내 달라고 사정하던 것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아버지에게는 할 수 없으니 오씨에게 졸라대던 것이었는데 이번 편지에는 여자 이야기가 없이 들어온다는 말만 있다. 혹시나 헤어지고 오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대감에 편지를 다시 한번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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