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혁이 툇마루 아래로 내려가 반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밀었다. 서아는 기꺼이 반지를 끼고 우혁의 목을 끌어안았다. 박수 소리가 들리고 색색의 꽃잎이 찻집 마당에 흩어져 내렸다. 목걸이와 같은 디자인의 다이아몬드 링이 서아의 손에서 반짝거렸다.
그렇게 촬영이 끝났다. 서아는 껴안고 있던 우혁의 등을 주먹으로 세계 후려쳤다.
“뭐야? 매번 나만 모르잖아. 이번에 발표 안 한다고 하더니.”
“몰라, 구작이 마음이 변했는지 여기서 프러포즈하자고 하더라고.”
“혹시 이 동네 처음이라고 한 거 말이야…….”
“놉, 절대 아니야. 프러포즈야 서프라이즈로 하자니까 말 안 한 거지 내가 설마 그런 거까지 거짓말하겠니. 몽땅 진짜야. 나 연기한 거 하나도 없어.”
서아는 그럼에도 믿을 수 없어서 심술이 잔뜩 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 촬영을 위해 준비하던 구 작가가 와서 서아의 눈치를 살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서아 씨, 오해하지 말아요. 우혁 오빠 정말 여기 처음이라고 그랬어요. 누구보다 시청자가 가짜 반응은 더 잘 알아요. 우리 그런 가짜 반응 절대 원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서프라이즈 청혼을 부탁한 거예요.”
서아는 구 작가에게 별 유감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구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이 가짜가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뒤늦게 와서 인터뷰 장면을 보던 민석이 흐뭇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터뷰가 끝나자 민석이 재빨리 구 작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누가 봐도 오해가 풀릴 만하겠는데요.”
구 작가는 오랜만에 나타난 민석을 보고 반가운 듯 손에 힘을 주었다.
“장 대표님은 요즘 소속사 배우보다 영화에 더 관심이 많은가 봐요. 통 얼굴 뵙기가 어려워요.”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식사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안 되는 거 알면서 말씀하시는 듯. 촬영 끝나고 할 일이 태산이에요. 아마도 들어가서 햄버거 세트로 때워할 것 같습니다.”
“그럼 배달 음식이라도 제대로 된 거 보내드리겠습니다. 우리 은강 커플 하차시켜야 한다고 말이 많던데 끝까지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 작가가 고개를 돌려 서아와 우혁을 바라보았다. 서아의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우혁이 서아의 눈에 대고 바람을 후후 불어주고 있었다. 서아는 자꾸 눈을 비비고 우혁은 그런 서아의 손을 잡고 비비지 못하게 했다.
“저런 모습을 본 제가 우혁 오빠를 어떻게 안 믿어요. 믿고 안 믿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자들 마음 때문에 플랜 비를 생각했었던 건데 결혼을 말씀하시니 저도 또 밀어붙여보고 싶더라고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민석이 고개를 숙이자 구 작가가 그만하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이번에 수입한 영화 너무 좋더라고요. 다들 예술 영화는 무조건 JK401이라고 하네요.”
“직원들이 열심히 해주니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피디가 구 작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구 작가는 서둘러 자리를 뜨면서 민석을 향해 외쳤다.
“장 대표님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이 바닥에 대표님 안목 좋기로 소문이 파다한걸요.”
손을 놓으면 또 눈을 비빌지도 모른다며 서아의 양손을 꽉 움켜쥔 우혁이 민석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거 곤란한데. 이러다 너 다른 곳으로 스카우트되는 거 아니냐?”
우혁의 말에 민석이 고개를 흔들며 못 들은 척 자리를 떴다. 우혁은 ‘어쭈 저게 이제 내 말을 무시하네.’라며 투덜대다 서아의 손을 놓고 말았다. 서아는 재빨리 풀린 손으로 눈을 비비다 우혁에게 들켰다.
“도대체 눈에 뭐가 들어간 거야?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우혁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아의 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서아는 눈을 보여주느라 한참을 뜨고 있는 바람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혁이 손등으로 서아의 뺨을 닦아주며 다시 후후 바람을 불었다.
“두 사람은 사무실에 같이 가서 회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찍은 광고주들이 이번 사태 때문에 클레임을 걸고 있거든요. 곧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알려주려면 미팅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민석의 말에 우혁과 서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촬영 끝난 거 아니야?”
“야, 솔직히 카메라 줄줄이 달고 다니는 촬영이 가벼운 데이트는 아니잖아. 여기까지 와서 촬영만 하고 가기 좀 아깝다고 서아가 자꾸 조르네.”
우혁이 서아 핑계를 대자 서아는 슬쩍 우혁을 팔을 꼬집었다.
“대표님이 알아서 미팅 날짜 잡아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솔직히 요즘 우혁 오빠가 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대표님이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잖아요.”
“그럼 내가 알아서 미팅 날짜 잡아도 된다 이거지요?”
우혁과 서아가 세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스텝들 사이를 비집고 나간 두 사람은 별궁길로 접어들었다.
“이 집은 방송에 나가면 안 되는 집이라 내가 특별히 빼놨잖아. 바지락에 호박, 당근, 감자, 부추가 들어간 국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 거기다 열무김치랑 배추김치 맛은 또 …….”
서아가 찬사를 늘어놓자 우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서둘렀다.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낯익은 인물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손에 들고 다니는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와 스텝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차현준이 씩씩한 말투로 허리를 굽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당황한 서아가 인사도 하지 못하자 차현준이 한층 더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달콤한 너의 맛 촬영이 있다고 하더니 여기서 찍은 모양이네요?”
우혁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카메라를 피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차현준은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내지 않겠다는 듯 큰 소리로 불렀다.
“두 분 데이트하시는 모양이네요. 하기야 소문이 심하게 났으니 이런 모습이라도 보여드려야겠지요?”
서아의 손목을 잡고 수제비 식당으로 향하던 우혁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휙 돌렸다.
“차현준.”
우혁이 고압적인 목소리로 차현준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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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수로 78회와 79회의 순서를 잘못 올렸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어쩐지 지난번에 뭐가 잘못된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순서를 뒤집은 거였군요. 이제야 그걸 알다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