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눈을 뜬 서아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창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여명에 방의 풍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서울에서 제일 크다는 호텔의 스위트룸은 상상을 뛰어넘는 화려함이 있었다. 어제는 호텔 객실에서 끊임없이 인터뷰를 했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나서 인터뷰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다하지 못한 매체가 있었다. 결국 어제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우혁이 결혼식을 하자마자 드라마 촬영을 시작해야해서 신혼여행은 잠시 미뤄졌다. 우혁은 파리로 가서 르 꼬르동 블루에 대해 알아보자고 했지만 서아는 강하게 반대했다. 가지 못할 곳을 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 짜증을 냈다.
서아가 화를 내면 낼수록 우혁은 부담스러운지 공부할 방법을 찾아보자며 신경을 썼다. 상관없다고 이제 강우혁의 아내가 된 이 마당에 강도 높은 육체노동인 파티시에가 웬 말이냐고 했지만 사실 진심이 아니었다.
강우혁의 부인이 되어도 은서아는 은서아다. 은서아는 케이크와 마카롱, 구움 과자를 만들며 버터와 설탕, 밀가루에 둘러싸여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당장은 사랑에 빠져 강우혁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그게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결혼하자마자 우혁을 놔두고 혼자 공부를 하러 갈 수도 없으니 지금은 우선 르 꼬르동 블루에 대해서는 마음을 접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달콤한 너의 맛이 인기를 얻으며 우혁에게 드라마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가장 핫한 ott에서 투자한 드라마의 주연이었다. 스릴러물의 형사 역인데 상대역인 변호사와 러브라인도 있었다. 서아가 대본 연습을 도와주다 키스신을 보고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우혁이 화를 내며 너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야단이었다.
‘뭐가 문제야? 드라마 연기인데?’
‘아무리 연기라도 나는 네가 다른 남자랑 키스신을 찍는 거 보면 아우…….’
우혁이 진저리를 치며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아는 그런 우혁을 껴안고 소파에 누운 채 속삭였다.
‘나는 상관없어. 오빠가 내 남자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정말?’
그 순간 우혁의 얼굴에 핀 홍조와 눈빛을 서아는 잊고 싶지 않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쩐지 새겨 넣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았다.
눈을 떴지만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고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혼식 아침은 원래 이렇게 혼란스럽게 생각이 많은 것일까? 서아는 몸을 돌려 우혁을 바라보았다.
인터뷰와 이런저런 일들로 지친 하루였지만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그냥 잘 수 없다며 와인을 따랐다. 우혁은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고 그녀를 안았다. 아무리 안아도 더 안고 싶다며 졸랐다.
서아는 이불을 살짝 내려 우혁의 가슴이 드러나게 했다.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었지만 서아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워 그녀와 잠을 자면 더 숙면을 취하게 된다고 했다. 같이 자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며 투덜댔다.
서아의 손이 우혁의 쇄골과 쇄골 사이 깊숙하게 파인 곳에 머물렀다. 서아가 좋아하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알마시의 계곡이라고 불렀다. 알마시는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붙여준 그곳의 진짜 이름을 궁금해했을까? 이름을 붙여준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남자는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결혼식 날 아침에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하다니 서아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 바람에 우혁이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듯 눈만 깜빡이며 그녀를 보고 있더니 갑자기 와락 껴안았다.
“드디어 오늘 우리 결혼한다.”
서아가 그의 품에 안겨 꼼지락거렸다.
“괜찮겠어?”
“뭐가?”
“이렇게 결혼하는 거?”
우혁은 어이가 없는지 서아의 코를 쥐고 살짝 비틀었다.
“그걸 이제야 물으면 어떻게 해? 물으려면 진작 물었어야지?”
“뭔가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 아닌가 싶어서.”
“절대 되돌릴 수 없어. 나는 묻지 않을 거야. 네 의견 따위 묵살하고 그냥 결혼할 거야.”
서아가 상체를 일으키자 이불 밖으로 속옷을 입지 않은 몸이 드러났다. 놀란 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끌어다 가렸다.
“의견을 묵살당한다는 말이 이렇게 섹시한 말인 줄 미처 몰랐는데.”
우혁이 웃으며 이불을 잡아당겨 서아의 상체가 드러나게 만들었다. 서아는 빼앗기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우혁의 힘에 밀리고 말았다.
“드레스가 노출이 없는 거라 다행이다.”
“왜?”
서아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아침 여기다 키스할 수 있으니까.”
“뭐야!”
서아가 소리를 지르며 우혁의 등을 때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혁은 다급하게 이불을 걷어치우고 서아의 쇄골과 쇄골 사이에 입술을 댔다.
“내가 거기 만지고 있었던 거 알았구나?”
서아의 말에 우혁이 고개를 들고 싱긋 웃었다. 침대 밖으로 머리가 밀려난 서아는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일으킬 수 없었다.
우혁의 손길은 매번 새롭고 갈수록 더 뜨거워진다. 서아의 허리 아래를 가리고 있던 이불이 옆으로 밀려나갔다. 오늘 결혼식으로 바쁜 두 사람은 이미 이곳에서 결혼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쇄골 아래에서 가슴골 사이로 우혁의 입술이 지나가고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어제 네일 케어를 받은 연한 살구색 손톱이 우혁의 등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