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가 언론에 노출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면서 민석이 제일 먼저 당부한 것이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서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달콤한 너의 맛’ 출연을 계기로 관리가 필요하다며 JK401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민석은 소속사 사장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며 어지간한 전화는 자신이 받도록 하고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말 것을 당부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부쩍 모르는 전화가 많아졌다. 엉겁결에 받으면 고윤희를 찾는 전화였다.
‘왜 내 전화로 새어머니를 찾지?’
당황한 서아는 이제 결혼해서 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상대방은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알았다며 끊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흘려 넘겼다. 우혁은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빴고 서아는 결혼식 이후에 신경 써야 할 집안일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우혁은 새 드라마 ‘집행자’를 부산에서 찍느라 삼 일째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틈만 나면 전화를 해서 하루에 열 번 이상 통화를 했지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서아는 결혼을 축하해 주러 왔던 하객들에게 답례 선물로 마카롱을 만들어 보내느라 매일 주방에서 살았다. 주방에는 알라메종의 제과실 못지않게 많은 양의 설탕이 쌓여 있었다.
구워놓은 꼬끄 위에 크림을 짜느라 어깨가 아팠다. 처음에는 그다지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았는데 막상 하려고 마음먹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라메종의 제과실 설비와 개인 주방의 설비는 같지 않은데 욕심을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마카롱을 만들고 있으니 우혁이 그만 좀 하라고 투덜댔지만 막상 지금까지 먹어본 마카롱 중에 제일 맛있다는 문자를 받자 중단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순서대로 만들어 보내는 바람에 아직 받지 못한 사람이 왜 나한테는 마카롱을 보내주지 않는 거냐고 민석을 통해 연락이 오기까지 했다. 지금 만들고 있다고 하자 자기는 늦었으니 특별히 두 배로 보내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어깨를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거친 손길이 그녀를 확 껴안았다. 화들짝 놀란 서아의 코에 향긋한 블랙베리 향기가 났다. 이 향기를 맡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서아는 짤주머니를 내려놓고 자신의 허리를 감싼 손을 지그시 힘주어 잡았다.
“소리로는 들키지 않았는데 향기로 들키네요. 이렇게 놀라게 하면 곤란합니다.”
우혁이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서아가 몸을 휙 돌려 우혁의 입술을 덮어버렸다.
우혁의 백허그에 비해 만 배쯤 더 폭발력 있는 서아의 키스였다. 우혁은 움찔하며 무방비로 서아에게 리드당했다. 서아의 두 손이 우혁의 까슬까슬한 턱을 감싸 쥐며 입술을 탐했다. 신혼의 부부에게 삼일은 삼 주를 넘어 삼십 일을 넘어 삼 개월쯤 되는 것 같았다. 삼일 동안 집을 비우기 전에도 새벽 다섯 시에 나가 한 시가 넘어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서아의 움직임이 더뎌질 때쯤 우혁이 나서서 속도를 높였다. 서아의 앞치마가 풀어지고 셔츠 앞 섶 단추가 벌어졌다. 거친 우혁의 숨소리가 서아의 귀를 뜨겁게 달구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었어."
우혁이 뜨거운 욕망 때문에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혁이 서아의 셔츠 깃 안쪽 쇄골 사이로 입술을 대려는 순간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서아야, 마카롱 다 만들었니? 아무리 타운 하우스라고 하지만 위험하게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어떻게 해?”
주방으로 들어온 채영은 두 사람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더니 멈칫했다. 서아의 셔츠 단추가 세 개나 풀어져 있었고 얼굴은 홍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진정되지 않는 욕망 때문에 눈빛이 흐릿해진 우혁의 얼굴은 서아의 흐트러진 모습이 아니더라도 지금 상황을 파악 가능하게 만들었다.
“어휴, 깜짝이야. 문이나 닫고 해. 문도 안 닫고 이게 무슨 짓이야?”
“문 닫을 정신도 없었다.”
우혁이 서아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답했다.
“하아, 참 뻔뻔하다. 내가 문 닫고 갈 테니 하던 거 계속하세요.”
채영이 돌아서자 우혁이 생큐를 외쳤다. 현관까지 나갔던 채영은 그냥은 못나겠는지 고개를 돌려 우혁을 향해 입술을 삐죽거렸다. 우혁은 그런 채영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한쪽 눈을 감았다.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것을 확인한 우혁이 바로 서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냥 올라가. 뭐 하러 이렇게 힘을 써?”
서아가 버둥거리며 내려놓으라고 했지만 우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이렇게 너를 안고 올라가서 침대에 집어던지는 맛을 포기할 수 없어.”
“뭐야?”
서아가 앙탈을 부렸지만 우혁은 고집스럽게 그녀를 안고 올라가 침대에 내려놓았다. 말로는 집어던진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얌전히 침대에 내려놓고 그녀의 옆에 걸터앉았다.
“많이 보고 싶어서 밤새도록 촬영하고 곧바로 달려왔어.”
“케이티엑스 타고 왔어?”
“응, 오는 동안 좀 자려고 했는데 너를 볼 생각을 하자 흥분돼서 잠이 안 오더라.”
“부산 촬영 끝난 거야?”
서아의 말을 들은 우혁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서아는 무슨 일인가 싶어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우혁이 손으로 눌러 막았다.
“다섯 시간밖에 없어. 다섯 시간 지나면 다시 케이티엑스 타고 내려가야 해.”
“뭐야? 그럼 내려오지 말았어야지!”
서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우혁이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어버렸다. 잠시 그렇게 입술을 대고만 있던 우혁이 몸을 뒤로 물렸다.
“너무 보고 싶어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 오늘은 이번 드라마 괜히 시작했다고 후회가 많이 됐어. 조금 더 너랑 놀았어야 하는 건데.”
서아가 손을 뻗어 우혁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보세요. 강우혁 씨, 당신이 모르는 게 있는데요. 여자들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모습은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에요. 지금 일하고 오느라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한 오빠 얼굴이 얼마나 섹시한 줄 알아요?”
“정말?”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우혁의 바지 벨트를 잡았다.
“내 손이 이렇게 저절로 움직일 만큼 오빠가 섹시해.”
“와, 일 열심히 해야겠구나. 이래서 결혼한 남자들이 꼼짝 못 하고 일만 하는 거구나.”
우혁이 빙그레 웃으며 침대 위로 올라갔다. 다섯 시간은 짧았고 달콤했다. 서아는 우혁에게 뭐라도 먹여 보내고 싶었지만 그는 서아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섯 시간을 같이 있던 우혁이 떠났다. 기차역까지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우혁은 절대 안 된다고 손을 내저었다.
떠나는 우혁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아는 내내 손을 흔들며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우혁이 왜 기차역에 못 오게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우혁을 보면 더 외롭고 슬프게 느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