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집행자’에서 강우혁은 흰색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패셔니스타 형사였다. 슈트가 잘 어울리기로 남자 배우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우혁이었었다. 그런 강우혁이 슈트 입는 형사로 나오면서 협찬 회사의 슈트 판매가 백 프로 증가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우혁은 슈트를 입은 채로 이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동차 위로 낙하하거나 다리를 돌려 차서 범인의 턱을 날려버렸다. 오늘은 총을 든 채 악역인 범인과 대치하면서 끝났다. 우혁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시간이 일분을 넘겼다.
차현준은 그걸 보다 열이 뻗쳐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텔레비전 화면에 집어던졌다. 술잔이 맥주잔이 아니고 양주잔이라서 다행히 텔레비전 화면이 깨지지 않고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여자는 양주잔이 텔레비전에 부딪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에도 눈을 뜨지 않는다. 우혁은 여자애의 터진 입술에 굳은 피를 보자 짜증이 훅 밀려왔다.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차현준이 발로 여자의 머리를 툭툭 쳤다. 여자애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 약이 좀 과했다. 갑자기 겁이 난 차현준은 여자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허겁지겁 소리를 지르며 뺨까지 때리자 그제야 부스스 일어난 여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현준을 바라본다.
“아이씨, 놀랬잖아.”
“여기가 어디예요?”
“아, 몰라. 네가 어제 나 좋다고 따라왔잖아. 잘 생각해 봐.”
우혁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방을 나가버렸다. 이불을 젖힌 여자는 자신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틀림없이 클럽에서 차현준을 만나 춤을 추고 룸으로 따라 들어간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이후의 기억이 없었다.
“뭐, 뭐예요? 나 어제 어떻게 된 거예요?”
여자가 울먹거리며 바닥에 늘어져 있는 옷으로 몸을 가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차현준이 씩 웃더니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이거 보고 말해라.”
여자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영상을 재생시키자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자신이 차현준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나랑 한 번만 하자. 응? 오빠, 내가 잘해줄게.’
여자는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차현준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 뭐예요? 빨리 지워주세요. 어서요.”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다시 주워 들고 지우려 했지만 차현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차현준은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이기죽거렸다.
“그거 지우자마자 내가 너 성폭행했다고 신고하려고? 어림없는 짓 하지 마라. 이건 내 보험이야. 요즘은 계집애들이 하도 나대서 보험이 없으면 큰일 나거든.”
여자는 양손을 모으고 제발 지워달라고 사정했다.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잔 여자의 얼굴에 눈물이 번지면서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차현준은 그런 여자의 모습에 정 떨어진다는 듯 화를 버럭 냈다.
“귀찮으니까 당장 꺼져. 너랑 이런 실랑이할 기분 아니란 말이야.”
차현준의 짜증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가 매달리자 견디다 못한 차현준이 문을 열어젖히고 소리 질렀다.
“너, 지금 나가면 그냥 보내주지만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도 못 참는다. 내가 못 참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차현준의 손이 여자가 붙들고 있는 옷을 확 잡아챘다. 옷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여자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랑 한 번 더 아니 여러 번 더 하게 될 거야. 그러고 싶어?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고.”
여자는 결국 미친 듯이 옷을 주워 입고 방을 빠져나갔다. 차현준은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마구 긁적이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아, 지겨워. 지겨워.”
침대를 데굴데굴 구르던 차현준이 벌떡 일어나 컴퓨터 방으로 갔다. 동영상 편집과 게임을 위해 꾸며놓은 방에는 모니터가 나란히 세대가 있었다. 차현준이 올리는 브이로그를 비롯한 동영상은 그가 직접 찍고 편집까지 한다. 그리고 여자들을 폭행하면서 찍은 동영상도 편집한다.
방 안쪽에 있는 금고를 열자 이름표가 붙은 USB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USB 안에서 강우혁의 이름을 찾아내고 씩 웃는다.
“강우혁이 지금 잘 나가봤자 곧 끝이다. 네가 얼마나 가느냐는 내 손에 달려 있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야단이야?”
처음부터 싫었다. 잘난 척하는 것도 싫었고 여자애들한테 냉담한 척 구는 것도 싫었다. 아무리 싫었어도 이가영하고 같이 있던 그날 못 본체만 했으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굴지는 않았을 거다.
강우혁이 이걸 보면 어떤 표정이 될까? 잘난 척 그렇게 하더니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차현준이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해서 혼자 낄낄거렸다. 짜증이 날 때마다 이걸 꺼내보면 속이 시원해졌다. 이런 무기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 아끼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강우혁의 심장을 정확히 겨눌 것이다.
“기다려라. 강우혁! 내가 곧 너를 개 박살 내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