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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알 수 없는 마음

by 은예진

밤을 하얗게 새우고 날이 밝자 민석은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아는 경찰을 동원해 신고 없이 우혁을 찾아보겠다며 나갔다. 서아는 식탁 위에 차려놓은 저녁 밥상을 바라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무력감이 솟구쳤다. 지금 우혁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아침이 되자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고 강한 햇살이 내리비췄다. 서아는 비척거리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집안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우혁이 들어오는 것을 빨리 알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마당에서 왔다 갔다 거리다 대문을 열고 타운 하우스 입구로 나가려는 찰나 우혁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서아는 너무 반가워 눈물이 그렁그렁 한 얼굴로 차를 향해 달렸다. 평소의 우혁이라면 강박적으로 줄을 맞추어 차를 대는데 오늘은 그답지 않게 비뚤게 차를 세웠다.


서아가 다가가 운전석 쪽 차 문을 두드렸다. 검게 선팅 된 차 안이 보이지 않았다. 우혁의 얼굴을 빨리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우혁의 다리가 먼저 나왔다. 밖으로 나온 우혁의 얼굴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밤새 얼마나…….”


서아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오빠, 우혁 오빠.”


우혁이 차에서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몸이 불덩이였다. 놀란 서아는 우혁을 흔들다 허겁지겁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가 와서 우혁을 싣고 달리자 그제야 정신이 들어 민석에게 연락했다.


“우혁 오빠가 들어왔는데 차에서 제대로 내리지도 못하고 쓰러졌어요.”


서아가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민석은 서아를 달래랴 두 사람의 위치를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민석이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그들이 목표로 한 병원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급성 폐렴 진단을 받은 우혁은 곧바로 입원했다. 열이 사십 도를 웃돌면서 의사들의 발걸음이 급하게 움직였다. 기침을 심하게 하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증을 호소했다.


서아와 민석은 도대체 무슨 일인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물을 여유가 없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과로로 급성 폐렴이 걸린 우혁의 기사가 날마다 포털 연예계 란을 장식했다.


입원하고 이틀 만에 열이 떨어졌지만 기침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서아는 우혁을 보살피기 위해 하루 종일 달라붙어 있었다. 우혁은 그런 서아가 부담스러운 듯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짓으로 밀어냈다. 말을 하려다 기

침이 너무 심하게 나서 멈추고 다시 말을 하려다 검진 나온 의사 때문에 또 멈춰야 했다.


그녀를 찾아온 민석과 잠시 커피를 마시던 서아가 종이컵을 이로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차현준을 만나러 나갔다 하룻밤을 보내고 온 우혁 오빠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서아의 목소리는 정말 심각해 보였다.


“다른 사람요?”

“마치, 마치…….”


서아가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더니 힘을 쥐어짜듯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마치 영혼을 뺏기고 돌아온 사람 같아요. 하룻밤 사이에 저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식은 사람 같아요.”

“몸이 아프니까 짜증이 나서 그럴 거예요. 다 나아서 집에 가면 괜찮을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이 사람 도대체 그날 밤에 어딜 갔었던 걸까요?”


민석도 아직 묻지 못했다. 민석이 눈을 마주치면 묻기라도 할까 봐 눈을 감아버리는 우혁에게 할 말이 없었다. 날마다 팬들이 보내는 꽃과 다양한 병문안 선물들이 산더미처럼 들어왔지만 우혁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영혼이 사라져 버린 건지 서아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토해내듯 콜록거리던 기침도 일주일이 지나자 잦아들었다. 열흘째 되는 날 드디어 퇴원이 가능해졌다. 병원 밖에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 리포터와 기자들이 한 무리나 되게 모여서 우혁을 찍기 위해 기다렸다.


우혁은 그런 기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밴에 올라타 눈을 감았다. 서아는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예전 같으면 아무리 몸이 좋지 않아도 멈춰 서서 기자들에게 한 마디쯤 하고 차에 탔을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민석도, 옆자리에 앉은 서아도 우혁의 눈치를 살피느라 전전긍긍이었다.


“출발 안 하고 뭐 하니?”


손등을 이마에 댄 채 눈을 감고 있던 우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응? 응, 그렇지. 출발해야지. 갈게.”


민석이 허둥지둥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집에 도착하자 우혁은 같이 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도 없이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망연자실한 채 우혁이 올라간 계단만 바라보고 있던 서아가 화들짝 놀라 가방을 열었다.


“약 먹을 시간이네요. 저 우혁 오빠한테 약 좀 가져다주고 내려올게요.”


서아가 물과 약을 챙겨 들고 올라갔다. 결혼하면서 방을 합치는 바람에 우혁의 방이자 서아의 방이기도 한 침실 문을 노크했다. 우혁은 대답 대신 헛기침으로 답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우혁이 그녀의 베개를 침대 밑으로 던져둔 채 누워 있었다.


서아는 내동댕이쳐진 베개가 자신이라도 된 것만 같아 울컥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지만 우혁은 그녀와 눈도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서아는 조심스럽게 베개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약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줬다.


우혁은 몸을 일으켜 서아가 주는 약을 받아먹었다. 서아는 재빨리 컵을 들고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우혁이 먼저 나가려는 서아를 불러 세웠다.


“서아야.”


서아는 우혁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게 그날 이후로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응?”

“미안한데 오늘부터 당분간 너 예전대로 아래층에서 잤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너랑 같이 자는 건 너무 불편할 것 같다.”


서아는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떨어트릴 뻔했다. 아직 폐렴이 완치되지 않았으니 침대를 같이 쓰지 않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없이는 잠도 자지 못한다고 떼쓰던 남자가 하루아침이 이렇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환자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내려가 자려고 했어.”

“그래. 그럼 나 방해하지 말고 내려가 줄래?”

“그, 그렇지. 오빠 방해하면 안 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나한테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거냐고, 혹시 오빠 다른 사람이 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차현준이한테 영혼이라도 빼앗긴 거냐고 무슨 일이기에 나를 그토록 아껴주던 오빠가 이렇게 냉담해질 수 있는 거냐고 큰 소리로 묻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이 갑자기 편찮으셔서 본가에 내려가있느라 휴재를 했습니다. 다시 돌아오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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