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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더러워, 추잡해

by 은예진

서아가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동영상 속에 우혁이 온갖 추한 짓을 다해대는 여자들 사이에서 개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아니 개만도 못했다. 서아는 동영상을 끝까지 다 보고 눈을 돌렸다. 서아가 보고 있던 동영상을 중단시키려 애를 썼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서아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참을 그렇게 구역질에 시달리던 서아가 고개를 들어 우혁을 노려보았다.


“더러워. 추잡해. 다시는 나를 볼 생각하지 마!”


우혁은 변명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말을 할 수 없을뿐더러 말을 해도 서아가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아야, 아니야. 아니야!”


잠을 자던 우혁이 비명처럼 서아의 이름을 부르다 눈을 떴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옷만 젖은 것이 아니라 침구까지 눅눅하게 젖었다. 우혁은 땀이 식으면서 이가 덜덜 떨리는 한기를 느꼈다.


서아가 보고 싶었다. 그녀의 품에 안겨 동영상을 찍은 우명진이 그에게 무슨 짓을 했었는지 죄다 말하고 싶었다. 차현준 그 사이코가 지금 무얼 손에 들고 있는지 고백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할 수 없었다.


그 동영상의 내용을 서아가 안다면 결코 그를 이해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우혁의 영혼은 그 동영상과 함께 파괴되어 버린 것 같았다. 차현준이 동영상을 공개하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전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우혁이 구구절절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이해는 해줄 수 있겠지. 하지만 이해를 한다고 과연 마음까지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림없지. 어림없는 일이야. 절대 아닐걸. 서아한테 그런 짐을 지워주지 말자.”


우혁이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려갔던 열이 다시 오르고 있었다. 덜덜 떨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서아가 노크를 한다. 식사를 챙겨 왔던 서아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우혁은 자신의 병이 낫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혁은 재 입원 후 폐렴은 모두 나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보다 못한 민석이 작정을 하고 나섰다. 회사로 우혁을 불렀지만 나오지 않자 민석이 직접 우혁의 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폐렴이 완치된 지 한 달이 지난 우혁은 살이 빠지고 눈이 퀭하게 들어가 있었다. 누가 봐도 우울증이 심각한 지경이었다.


“오늘은 너한테 제대로 다 듣지 않고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거다.”


드라마 ‘집행자’가 끝나고 광고 섭외가 들어온 것만 스무 개가 넘었다. 우혁이 갑자기 아파서 할 수 없다고 했지만 기다리겠다고 하는 광고주가 아직 열 군데가 남아있다. 우혁을 이대로 방치하지 말고 광고라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민석은 오늘 끝장을 내겠다는 기세다.


“네 친구가 아니라 JK401 대표 장민석으로 여기 있는 거다. 너 이렇게 끝내고 말거니?”


우혁은 침대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앉아서 자신을 노려보는 민석을 멍한 눈으로 응시했다. 헝클어진 머리, 깎지 않은 수염, 그리고 씻지도 않아서 예전에 나던 블랙베리 향수 냄새의 자취는 흔적도 없는 강우혁이었다.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말을 해야 해결을 하든지 수긍을 하든지 하지!”


우혁은 비척거리고 일어나 서랍장 속에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양주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야, 강우혁!”


민석이 일어나 우혁의 손목을 잡았다.


“너 이런 식이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수밖에 없다.”

“말할게.”


우혁의 말에 민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하려고 술 마시는 거야. 이거라도 마셔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민석은 움켜쥐고 있던 우혁의 손을 놓았다. 우혁은 양주병을 입에 댄 채 가장자리로 노란 술을 흘리며 들이켰다. 방안에는 진한 오크 향이 나는 위스키 냄새가 퍼졌다.


“네가 내 매니저 일을 맡기 전에 고릴라 엔터테인먼트 우명진하고 일한 거 알지?”


민석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명진이 질이 나쁘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 당시 엔터테인먼트 사장 중 많은 사람들이 질이 나쁜 축에 속했다.


“나는 우명진이 협박에 못 이겨서 재벌가 여자들을 상대로 한 호스트 노릇을 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았지.”


놀란 민석은 우혁의 손에 들린 위스키를 뺏어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제정신으로는 듣기 힘든 이야기였다.


“견디다 못한 내가 죽으려고 작정했던 날 나를 구해준 사람이 서아의 아빠였어. 내가 그래서 서아한테 돈을 보낸 거야.”

“그랬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네.”


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일들을 천천히 말했다. 우혁이 호스트 일을 하던 당시의 동영상을 차현준이 가지고 있다. 차현준은 자기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 되지 않으면 그 동영상을 유출시키겠다고 협박했다는 말까지 모두 해버렸다.


“그건 진즉에 말했어야지. 나는 네 소속사 대표야. 소속사 대표가 알아야 하는 일을 네가 이지경이 되도록 감추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민석이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지르며 씩씩댔다. 우혁은 민망한 듯 시선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아무리 네가 친구라지만 그런 동영상의 존재를 말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 너한테 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거지.”


민석은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대며 콧김을 뿜어냈다. 우혁은 남아있는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 병에 입을 대려고 했지만 민석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걸 마셔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고 나다.”


우혁은 민석에게 말을 하자 한결 마음에 짐이 덜어져 피식 웃었다. 우혁이 웃는 것을 두 달 만에 본 민석이 어이가 없는지 주먹을 움켜쥐었다.


“웃지 마라. 그 잘난 얼굴에 상처 난다.”

“상처 나도 괜찮아. 이제 얼굴로 먹고살 일 없을 거야.”


우혁의 말에 민석이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얼굴로 먹고살 일 없을 거라니.”

“많이 생각했다. 차현준이 동영상 배포하고 불명예스럽게 매장되느니 내가 먼저 은퇴할 거다.”

“우혁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밖에 없다.”

“야, 내가 알았으니까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거 아니야.”

“알았어. 고민해 봐. 그런데 답이 나오지 않아. 너 설마 나보고 차현준이 원하는 대로 그 자식이랑 똑같이 미친놈 되라고 하는 거 아니지?”

“당연히 그건 아니지. 그나저나 서아 씨는 어떻게 하냐?”

“서아……. 서아 말이지…….”


우혁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서아의 이름을 말하는 우혁의 어깨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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