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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칠월이

by 은예진

“서아가 그 동영상을 보면 나랑 도저히 같이 살지 못할 거야. 서아는 천사라 하는 수없이 같이 살아도 결코 예전처럼 나를 대할 수가 없을 거야.”

“서아 씨 마음을 네가 제멋대로 판단하지 마.”

“그래 서아 마음 판단 안 하다. 내 마음만 가지고 이야기 하마. 나 더는 서아랑 결혼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애초에 이런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야, 강우혁!”


민석이 다짜고짜 우혁의 멱살을 움켜쥐고 소리 질렀다. 우혁만큼이나 생기를 잃고 말라가는 서아를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


‘그래 너는 예전에 네가 했던 일 때문에 이지경이 났다고 하지만 그런 너를 구해준 은 피디님 딸인 서아는 무슨 죄니?’


우혁은 차라리 한 대 때리라는 듯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의 고개가 공기 빠진 바람인형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민석은 차마 때리지 못하고 주먹만 움켜쥔 채 씩씩거렸다.


“정신 차리면 헤쳐 나갈 방법이 있어. 우린 떳떳하니까 차현준이를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거야.”

“떳떳한 호스트? 아무리 떳떳해도 사람들은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돌려볼 거고 나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날 거야.”


그때 민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석은 발신자가 차현준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얼굴 전체가 실룩거렸다.


“뭡니까?”

-장 대표님, 인사가 너무 과격하십니다.

“방금 우혁이한테 차현준 씨가 무슨 협박을 하는지 들었습니다.

-협박이라니 섭섭합니다. 저는 그냥 제안을 했을 뿐입니다.

“제안 같은 소리를 하고 계십니다.


차현준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우리 장 대표님 은근히 유머 있으시네. 강 선배님 핸드폰이 계속 꺼져있고 답이 없으셔서 하는 수없이 대표님께 전화했습니다. 선배님은 마음에 결정을 하신 건가요?”

“내가 알았으니 이제 결정의 시간이 빨라질 겁니다. 좀 기다려 주세요.”

-시간이 많이 없습니다. 빨리 결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 그렇게 까불다 큰코다친다.”

-헉, 우리 장 대표님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네요. 그 젠틀하기로 소문난 분이 이렇게 막말을 하시니.

“시끄러워. 썩지도 않을 동영상 가지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좀 기다리라면 기다려!”

-제가 요즘 은근히 바빠서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빠른 회신 부탁드립니다. 파티 준비는 다 끝났으니 몸만 오시면 됩니다. 물 좋은 애들 많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민석은 차현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없어도 영화 수입으로 회사는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혁의 말에 민석이 답답한 듯 창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서아가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잡초를 뽑고 있었다. 뽑고 돌아서면 다시 나는 잡초를 서아는 일삼아 열심히도 뽑는다. 더운 여름에 잡초를 뽑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서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집안일이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지 온 집안이 반들반들 해지도록 가사 일에 집착한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날마다 타르트며 케이크를 굽고 있다.


“서아 씨한테 상처를 주지 않을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서아가 지쳤는지 잡초를 뽑다 말고 그늘에 주저앉았다. 뽑은 풀을 한 줌 쥐고 편하게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녀가 멈추는 것을 본 고양이 한 마리가 데크 아래서 뛰어와 그녀와 마주 앉았다.


서아는 손을 뻗어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석이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것을 본 우혁이 슬쩍 그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서아가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쓰다듬고 있었다. 지난봄에 태어난 고양이인데 어미가 젖을 떼고 버려둔 아이였다. 아직 혼자 사냥할 능력이 되지 못하는 걸 내버리는 바람에 다 죽어 가는 것을 서아가 사료를 줘서 살렸다.


우혁의 밥을 챙기며 서아는 곧잘 고양이 이야기를 했었다. 칠월에 만나서 칠월이라고 이름 지어 줬다며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혁은 시선을 회피하며 사진을 보지 않았다.


“쟤가 칠월이구나.”

“응, 어찌나 서아 씨를 좋아하고 잘 따르는지 개냥이도 저런 개냥이가 없어. 요즘 서아 씨는 칠월이 없었으면 어떻게 지냈을까 싶은가 봐.”


우혁은 갑자기 칠월이가 꼴도 보기 싫었다. 서아의 무릎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엉뚱한 고양이가 올라가 있는 것만 같았다.


“못생긴 게 서아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네.”


우혁이 뿌루퉁하게 말하자 민석이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너도 참 양심도 없다.”

“그래, 나 양심 없어서 서아도 너도 다 버릴 거다.”

“닥쳐. 해결책이 있을 거야.”


민석은 강한 어조로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재벌가 여자들을 상대로 호스트 노릇을 하는 우혁의 모습이라니 그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 보듯 훤했다.


우혁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동영상이 돌기 전에 미리 은퇴를 하는 게 차현준을 물 먹이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르겠다.


서아가 칠월이를 내려놓고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서아에게 치근덕거리던 칠월이가 안 되겠는지 서아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양이처럼 앉지 않고 사람처럼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허리를 세운 것이 칠월이가 서아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아는 그런 칠월이를 보고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서아를 웃게 만드는 것은 칠월이 밖에 없는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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