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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내 돈 써야 할 일

by 은예진

서아는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스마트폰의 포털 기사도 잘 보지 않는다. 우혁이 저렇게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게 되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게 겁이 났다. 우혁이 두문불출하면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는데 그게 너무 터무니없는 것들뿐이라 인터넷 기사를 보는 게 두려웠다. 소문에는 벌써 그들이 이혼했고 우혁은 알코올 중독부터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있었다.


데크에 앉아 칠월이랑 놀고 있는데 대문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담장 너머로 서아를 발견한 민석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서아가 서둘러 대문을 열자 민석이 집안으로 들어오며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민석의 모습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서아가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요즘 전화받을 일이 없어서 잘 안 가지고 다녀요. 죄송해요. 장 대표님 전화는 받아야 하는데.”


민석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서아에게 내밀었다. 서아는 화면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 이게…….”

“오늘 공항에서 도망가다 잡혔답니다. 이제 채권자들이 우혁이랑 서아 씨한테 벌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강우혁 장모라 믿고 돈을 빌려줬다고 말합니다.”


기사는 배우 강우혁의 장모 고윤희가 스타인 사위의 이미지를 이용해 사기를 치고 돈을 챙겨 해외 도피를 시도하다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강우혁의 아내 은서아는 가로수길 천사로 유명하며 리얼리티 예능 프로인 달콤한 너의 맛에 출연했다는 친절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서아가 핸드폰을 찾아들자 민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핸드폰 이제 저한테 맡기고 열어보지 마세요. 고윤희에 관한 일은 서아 씨가 처리 못합니다.”


민석은 작정하고 준비해 온 듯 주머니에서 새로운 핸드폰을 꺼내 서아에게 내밀었다.


“앞으로 이거 쓰세요. 당분간 다른 사람들하고는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처럼 인터넷도 하지 말고 연락도 받지 말고 그냥 지내세요.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합니다.”

“결국 저는 우혁 오빠한테 엄청난 폐만 끼치고 말겠군요.”


서아가 소파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민석은 서아의 옆에 앉아 차마 그녀를 안아주지 못한 채 어깨만 다독였다.


“고윤희가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거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서아 씨 학자금 조로 보낸 돈이 몽땅 고윤희의 내연남한테 넘어갔는데 그 자식이 사기꾼이더라고요. 저는 결혼식에 고윤희가 설치고 다닐 때 과시용이구나 싶었어요.”

“그럼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서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우혁이가 그냥 놔두라고 했어요. 한 번쯤은 사고 쳐도 갚아주고 그때 확실하게 끝내는 게 더 나을 거라고요.”


우혁은 이런 결과를 각오하고 있었다는 말에 서아가 고개를 들어 이층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알고 있었다고요?”

“네.”


그때 이층 방문이 열리면서 우혁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두문불출하고 있는 사이 말라서 날카로운 턱 선이 살아났다. 지금은 엉망으로 하고 있어서 그렇지 씻고 나서면 이십 대 외모로 돌아갔다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해 보였다.


“그건 옛날 마음이었고.”


우혁의 목소리는 턱 선만큼이나 날카롭고 차가웠다.


“네 말이 맞다 은서아. 이거 아주 큰 빚투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 대한 비난이 더 많을 거야.”


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 바지를 움켜쥐었다.


“죄송해요. 우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해결을 볼 수 있게 대표님께 드리겠어요.”

“민석아, 고윤희 빚이 얼마인지 알아봤냐?”


우혁의 단호한 태도에 서아는 입을 반쯤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고윤희가 사고를 치자 우혁이 갑자기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적극적이다. 우혁은 마치 서아를 몰아붙일 기회를 기다고 있던 사람 같았다.


“대략 십억 쯤 되는 것 같은데.”


우혁이 다리를 꼬고 무릎을 손으로 감싸며 서아를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거만한 강우혁의 예전 모습이었다.


“너 그동안 십억이나 모았니?”


서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십억은커녕 일억도 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실검 일 위 네가 이 위인 거 모르지? 이거 방치하면 내가 고스란히 비난받을 거야. 알지?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야, 강우혁, 너 뭐 하는 짓이야?”


민석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지만 우혁은 손을 들어 민석을 제지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가만히 있어. 결국 내 돈 써야 할 일이잖아.”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아는데 그건 아니다.”


민석이 화를 내자 서아가 옆에 앉은 그의 팔을 잡았다. 맞은편에 앉은 우혁은 서아가 민석의 팔을 잡는 것을 보고 눈빛이 달라졌다. 당장에라도 민석에게 떨어지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얼굴이었다.


“오빠 뜻 알았어요. 빚을 갚지 않으면 오빠가 비난받을 테니 갚기는 갚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 빚 해결해 주세요. 제가 평생이라도 벌어서 갚을게요. 그리고…….”

“그리고?”

“더는 오빠한테 폐 끼치지 않도록 제가 떠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민석은 놀라서 서아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휙 돌렸지만 우혁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갚지 마라. 십억은 위자료다.”

“이러려고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서아가 눈을 치켜뜨고 우혁을 노려보았다. 우혁은 그런 서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십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 그만하면 너한테 최대한 예우해 준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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