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카페 문은 보통 다섯 시 이전에 닫는다. 서아가 만들 수 있는 디저트의 양에는 한계가 있어서 열한 시쯤 문을 열어도 오후면 다 팔린다. 디저트가 모두 팔리면 서아는 다시 내일 팔 것들을 만드느라 제과실에서 준비를 시작한다. 문을 닫고 잠깐 쉬느라 핸드폰을 연 서아의 눈이 깜빡이지도 못한 채 고정됐다.
<강우혁, 드라마 상대역인 지민과 한밤중 데이트>
“에이, 설마! 아니겠지. 무슨…….”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사를 터치하는 손끝이 달달 떨렸다. 너무 많이 떠는 바람에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서아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눈을 부릅떴다.
익숙한 검은 가죽 재킷 차림의 우혁이 지민과 상체를 밀착시킨 채 마주 보고 있었다. 우혁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지민은 아주 잘 보였다. 지민의 얼굴이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빛나고 있었다. 다음 사진에서는 이제 우혁의 얼굴도 보인다. 우혁의 눈빛이 너무 낯익었다. 누구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던 그녀에게만 보여주던 눈빛이다.
서아는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절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우혁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강우혁, 고작 이런 거였니? 이러려고 혼자 파리에서 돌아온 거니? 나만 바보 됐구나.’
이후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손으로는 열심히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자려고 누웠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핸드폰을 열어서 지민과의 사진을 보고 이불을 휙 걷어 젖혔다. 다시 일어나 이번에는 민석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
‘아니야, 이러는 거 아니야. 이제 와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우혁 오빠가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내가 참견할 권리가 없잖아.’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지만 잠이 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계를 확인하자 새벽 두 시였다. 아무리 민석이나 우혁이 잠을 늦게 잔다고 하지만 지금 전화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솔직히 전화 건 사람이 너무 절박해 보일 것이다.
아침 여덟 시까지 참느라 밤새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오랜만에 방 청소도 하고 가게 구석구석을 레몬소주로 광이 나게 닦았다. 청소할 수 있는 곳은 다 하면서 기다렸다. 핸드폰에 숫자가 08:00이 되는 순간 재빨리 민석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들렸지만 민석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아는 민석이 전화를 받았으면 싶다가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아 씨?
“대표님.”
서아는 민석을 불러놓고 말을 하지 못했다. 장 대표는 그녀가 왜 전화를 했는지 잘 알 것이기에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많이 놀랐지요?
“네, 좀 놀랐어요. 놀랄 필요 없는 일인데 놀라는 제가 좀 우습더라고요. 우혁 오빠랑 나 아무 사이도 아닌데 오빠가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내가 왜 이렇게 놀라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게 진심이 아니니까 놀랐겠지요.
“…….”
차마 반박을 하지 못하는 서아의 숨소리가 민석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지민이랑 열애설에 대해 나도 정확히 몰라요. 우혁이가 가타부타 말을 안 해요. 소속사 대표로 입장 표명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냥 놔두래요.”
“그냥 놔두라고요?”
“그 자식 무슨 생각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민석이 뿌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보기에는 어때요? 우혁 오빠가 정말 지민 씨랑 사귀는 거 같아요? 아, 나 왜 이렇게 질척거리냐.”
서아는 지하 백 미터쯤 파고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물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우혁이 쟤 머릿속에 서아 씨 밖에 없어요. 내가 그걸 모르나.”
장 대표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명치끝에 단단히 얹혀있던 돌덩이가 쑥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일까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우혁 오빠가 지민을 보고 있는 사진만 봐도 이렇게 속이 뒤집어지는데 나는…….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말을 집어삼키며 한숨을 쉬었다. 민석은 그 한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는 듯 서아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서아 씨, 우혁이 그냥 잡아주면 안 될까요?”
“네?”
화들짝 놀란 서아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저러다 혹시라도 열애설 난 김에 연애라도 한다고 나서면 그거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나는 내가 싫다고 해도 우혁 오빠는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봐주고 있을 줄 알았어요. 우습지요?”
“우스울 거 없어요. 그만큼 두 사람 마음이 지금 정리되지 않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정 답이 안 나오면 지금부터 우혁이 나오는 드라마 한번 봐요. 앞으로 우혁이랑 완전히 끝내고도 걔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면 진짜 끝내고요 그렇지 않으면 더 늦기 전에 잡아야 해요.”
서아는 민석과 전화를 끊고 그가 시키는 대로 노트북을 켜서 우혁이 주연을 맡고 있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지민과의 케미가 어찌나 좋은지 시청자들이 현실 연애를 바랄 지경이었다. 우혁이 지민의 긴 머리를 묶어
주는 장면에서는 누구라도 지민의 머리카락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현재 8회까지 방영된 드라마지만 1회만 보고도 더는 볼 수 없었다. 우혁과 같이 살던 시절에는 키스신조차 관심 없었는데 지민이랑 손을 잡는 장면만 봐도 피가 솟구쳤다.
“하아, 정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