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은 서아와 전화를 끊고 옆에 있던 우혁을 바라보며 됐냐고 물었다. 우혁을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잘했어.”
서둘러 신발을 신는 우혁을 보고 깜짝 놀란 민석이 따라나서며 물었다.
“어딜 가는 건데?”
“어디긴 어디야. 서아한테 가는 거지.”
“서아 씨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걸 꼭 물어봐야 아니? 이 시간에 너한테 전화했을 때 이미 게임 끝이야. 걔는 어제 열애설 기사 봤을 때부터 고민하다 지금 전화한 거야.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더 미적거릴 필요가 없어.”
너무 서두르는 우혁이 불안해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우혁은 출발한 뒤였다. 열애설 기사가 포털을 장식하자마자 우혁은 민석의 곁에서 한 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석이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다니며 서아한테서 전화 온 거 아니냐고 다그쳤다.
지난밤 잠을 설친 건 서아뿐만 아니라 우혁도 마찬가지였다. 우혁의 안절부절 덕분에 민석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아의 전화를 기다렸다.
서아의 디저트 카페 앞에 도착한 우혁이 심호흡을 했다. 아직 문을 열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한다. 달려오는 동안에는 서아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었다. 막상 닫힌 문을 보자 어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을 두드리자 속이 보이는 파이프 셔터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아야, 은서아!”
안에서 안 들리는지 대답이 없다. 인적이 뜸한 골목길이라는 데 용기를 얻은 우혁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서아 이름을 불렀다. 파이프 셔터까지 마구 쳐가며 요란하게 문을 두드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서아의 얼굴이 보였다.
“우혁 오빠?”
“빨리 셔터 올려라.”
서아는 파이프 셔터를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우혁을 보고만 있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자신의 얼굴이 어떤 꼴일지 생각하며 하필이면 이런 순간 쳐들어온 우혁을 원망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원망보다 백 배쯤 반가웠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서아를 향해 우혁이 파이프 셔터를 가리키며 채근했다. 화들짝 정신이 든 서아가 올림 버튼을 눌렀다. 우혁은 셔터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기자마자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갔다.
우혁이 들어가자마자 서아의 팔을 낚아챘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우혁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듯 안긴 서아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우혁을 올려다봤다.
“지민이랑 …….”
서아는 거기까지 밖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우혁이 서아의 입술을 거칠게 막아버렸다. 입술이 막히면서 숨까지 막혀버리는 것만 같았다. 우혁은 양손으로 서아의 뺨을 감싸 쥐고 품에 안았다. 서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우혁의 팔을 꽉 움켜쥐고 매달리듯 그에게 의지했다.
“사랑한다. 은서아.”
더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할 말은 많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그 말밖에 없었다. 서아는 우혁의 허리를 잡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 오븐에서 나온 쿠키가 된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게 안쪽 비스듬히 열린 문틈으로 서아가 잠을 자는 방이 보였다. 우혁은 서아를 안아 든 채 방문을 열었다. 행거 하나에 매트리스만 놓인 단출한 방이었다. 머리맡에 노트북이 놓여있고 모니터에는 우혁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서아는 부끄러운지 재빨리 노트북을 닫아 버렸다.
“내가 진작 찾아왔어야 하는 건데 우리 서아 혼자 이렇게 살게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우혁이 서아를 매트리스 위에 앉혀 놓은 채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서아는 그런 우혁의 손을 감싸 쥐며 입술에 댔다.
“오빠 없이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나도 네가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너는 잘할 것 같은데 나는 안 되더라고.”
서아가 주먹으로 우혁을 가슴을 치며 얼굴을 실룩거렸다. 우혁은 그대로 서아를 매트리스 위에 누이고 그녀의 몸에 자신의 몸을 포갰다. 뜨거운 몸과 몸이 만나자 좁은 방안은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서아는 우혁의 품을 파고들며 속삭였다.
“오늘에서야 깨달았어. 이제 오빠를 모르던 예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말 대신 몸짓이 더 많은 말을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상대를 쓰다듬는 손끝으로...... 서아의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누운 우혁이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었다. 서아가 간지러워 몸을 웅크리는 데 갑자기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계세요? 사장님 가게 문 안 여신 거예요?”
화들짝 놀란 서아는 그제야 우혁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가게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이 싱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서아의 입술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숨을 죽인 채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어, 사장님 안 계시나? 아직 문 안 열은 모양이네.”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정적이 찾아오고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던 서아가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우혁도 서아를 따라서 키득거렸다. 키득거림이 조금씩 더 거세지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눈가가 촉촉이 젖도록 웃은 서아가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을 찾아 입으며 문을 닫으러 가야겠다고 했다. 우혁은 서아의 옷을 뺏으며 속삭였다.
“내가 닫고 올게. 오늘은 임시 휴무라고 써 붙이고 올 테니 너는 여기서 꼼짝하지 마.”
“임시 휴무라고?”
“그럼 오늘 일하려고 생각했어?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
우혁이 서아의 허리 위쪽으로 손을 올리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아는 그런 우혁을 밀어젖히며 빨리 가게 문이나 닫고 오라고 성화를 댔다. 우혁이 셔츠를 입고 밖으로 나가자 마침 들어오려는 손님과 마주쳤다.
“어머, 강우혁 씨? 강우혁 씨 맞지요?”
손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거푸 우혁의 이름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오늘 스위트는 임시 휴무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우혁이 한쪽 눈을 찡긋 거리며 문을 닫고 파이프 셔터를 내리자 밖에 서 있던 손님이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히죽 웃었다. 우혁을 다시 문을 열고 그 손님을 향해 소리쳤다.
“가셔서 소문내세요. 강우혁이 은서아네 가게에서 문 닫고 손님 내 보냈다고요.”
“정말요? 정말 소문내도 돼요?”
손님의 질문에 우혁이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대답했다.
“얼마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