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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당장 나가요

by 은예진

차현준은 벽에 붙여 놓은 강우혁의 포스터를 향해 다트 핀을 던졌다. 처음에는 이마와 코를 맞추더니 마지막 두 개로 양쪽 눈을 하나씩 겨냥해 날렸다. 왼쪽은 엇나가 눈꼬리를 맞췄지만 다른 하나는 정확히 동공의 가운데를 맞췄다.


“오케이.”


경찰에서 모두 압수했지만 그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동영상의 복사본은 따로 보관해 놓은 곳이 있었다. 출옥해서 제일 먼저 찾아온 복사본에서 우혁의 동영상을 찾아 USB에 담았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차현준의 골수팬들은 그를 버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네들을 통해 우혁의 움직임을 체크하던 차현준은 자신이 적기에 출소했음을 알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강우혁, 네가 제일 피하고 싶은 일이 이거였지? 어디 한 번 해보자.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너만 혼자 은서아하고 잘 살아보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눈꼬리를 맞춘 다트 핀을 다시 뽑아 날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동공을 맞췄다. 우혁의 양쪽 눈에 붉은색 날개를 가진 다트 핀 두 개가 나란히 꽂혔다.






영업을 끝낸 서아는 한창 손님이 많을 때 받아 놓은 퀵 상자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상자 안에서는 덜그럭 거리는 소리만 날뿐 무슨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테이프를 뜯어 상자를 열자 안에는 카드 한 장과 USB가 들어 있었다.


<은서아 씨, 강우혁 씨와의 재결합을 축하드립니다.>


“도대체 이거 뭐지?”


서아는 방송국에서 구 작가가 뭘 보낸 건가 싶은 마음에 무심코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흐릿한 화면에는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여자들이 술잔을 든 채 흐느적거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한 남자는 젊다 못해 어린 우혁이었다.


여자들은 넥타이만 맨 우혁의 목을 잡아끌어 자신들의 사이에 앉히고 술을 퍼부었다. 놀란 서아는 재빨리 노트북을 닫았다. 하지만 동영상이 꺼진 것은 아니라 닫힌 노트북에서 여자들의 깔깔거리는 웃음과 음악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아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기만 했다. 우혁이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하던 바로 그 동영상이었다. 말로만 듣던 동영상을 실제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면서 모자를 푹 눌러쓴 차현준이 들어와 그녀 앞에 앉았다. 여전히 해맑은 얼굴의 차현준이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를 향해 웃었다.


“서아 씨, 안녕?”

“차, 차현준?”

“내가 두 사람 재결합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끝까지 다 봐야 하는데. 시작만 보고 벌벌 떨면 어떻게 해요. 뒤로 가면 정말 엄청난 것도 볼 수 있을 텐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왜 나한테 이런 걸 보냈어요?”

“강우혁이 서아 씨한테 어떤 말을 했는지 몰라도 저는 정말 억울해요.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강우혁 보다 더 할까 싶은데. 강우혁은 자기 치부를 감추려고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들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내가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우혁 오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아요.”

“동영상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대단한 사랑이네.”


차현준은 다 팔리고 하나 남은 레몬 타르트를 집어 들고 베어 물으며 말했다.


“우아, 서아 씨 디저트 맛있다고 소문났더니 진짜 맛있네. 이 달콤한 맛 최고네요.”


서아는 노트북에서 USB를 뽑아 차현준을 향해 집어던졌다.


“이거 가지고 당장 나가요.”

“정말? 정말 이거 다 안 볼 거예요? 후회할 텐데.”

“후회를 해도 내가 합니다. 당장 나가요!”


차현준은 피식 웃더니 목걸이를 빼서 USB를 끼워 다시 목에 걸었다.


“강우혁이한테 전해주세요. 이건 내 목에 아주 잘 보관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네가 얼마나 잘 사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겠다고 하세요.”


차현준은 손가락을 구부려 자기 눈을 가리키며 비열하게 웃었다.


차현준 앞에서는 강한 척 큰소리를 치며 나가라고 했지만 막상 그가 떠나자 온몸에 힘이 모두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엉켜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 찬물을 한 컵 마시고 진정해 보려 애썼다. 그럼에도 좀처럼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이 끝난 서아를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 온 우혁이 문을 열고 서아 이름을 불렀다.


“서아야,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게 이러다 눈 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우혁은 넋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서아를 보고 순간적으로 뭔가 일이 있구나 싶었다.


우혁이 놀란 얼굴로 서아의 이름을 재차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오빠, 방금 차현준이 다녀갔어.”


우혁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서아의 팔을 움켜잡았다.


“설마 너 그거 본 거야?”

“동영상 열자마자 닫았어.”


우혁은 서아를 와락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다. 서아는 우혁의 몸이 자신만큼이나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잘했어. 서아야. 정말 잘했어.”


서아는 자신을 안고 있는 우혁의 몸을 밀어내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차현준이 그걸 가지고 오빠를 협박한 거야?”


우혁이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같이……. 나를 그렇게 못 믿냐?”


서아는 우혁의 뺨에 손을 대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하다 서아야. 나한테는 너무 끔찍한 일이라 네가 그걸 알게 되는 게 죽을 만큼 싫었어. 너를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어.”

“나쁘다. 나를 그렇게 아프게 만들어놓고 이제야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하려고. 진짜 나쁘다.”

“어떻게 하면 나를 용서해 줄 거야?”

“오빠가 나한테 감추고 있는 옛날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 할 것 같아.”

“꼭 들어야겠니?”


서아가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야 해. 그래야 오빠가 전처럼 도망갈 생각을 안 할 것 같아. 우리가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야.”


우혁이 서아를 껴안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할게, 몽땅 다 들려줄게. 차현준이 그 자식이 다시 나타나는 덕분에 내가 후련해지도록 너한테 다 말할 수 있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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