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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은 Dec 30. 2020

담장을 허무는 무엇

문명의 자연, 그 야만성에 대한 모더니스트의 자각


담장을 싫어하는 무엇이 있다.

담장 아래쪽 땅을 얼어 부풀게 하고

햇볕 아래 담장 위쪽 돌멩이들을 무너뜨려서 

두 사람도 너끈히 지날 수 있는 틈을 만든다.

사냥꾼들이 만든 틈과는 다르다.

사냥꾼들의 자취를 따라 그들이 

돌 위의 돌을 빼낸 곳을 보수한 적이 있다.

그들은 컹컹 짖는 사냥개들을 즐겁게 하려고

토끼를 굴에서 몰아낼 심산이었다.

내가 말하는 틈이란 누가 그렇게 했는지

아무도 보거나 들은 적도 없는 것이다.

봄철 보수 때만 되면 으레 이런 틈들이 생긴다.

언덕 너머 내 이웃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경계선을 따라가며 함께

우리 사이에 다시 한번 담장을 쌓는다.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간에 담장을 유지하니,

각자의 영역에 굴러 떨어진 돌덩이들은 각자 책임진다.

어떤 것은 큰 덩어리이고 어떤 것은 작은 공 크기여서

돌덩이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면 주문을 외어야 한다.

“제발 우리가 돌아설 때까지 그대로 있어다오!”

돌덩이를 다루는 손가락은 점점 거칠어간다.

오, 이것은 한 편에 한 사람씩 겨루는, 

또 다른 종류의 야외 게임이겠다. 그 이상은 아니다.

그의 것은 온통 소나무 숲이고 나의 것은 사과밭이니,

사실 이곳에는 담장이 필요 없다.

내 사과나무가 건너가서

당신의 솔방울을 따먹을 리 없지 않소, 하고 말을 건넨다.

그가 대꾸한다.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 사이가 좋은 겁니다.”

봄이 내 장난기를 발동시켰는지, 이웃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담장이 튼튼하다고 이웃 사이가 좋아진다고요? 소가 있는 곳이라면

또 모르겠소만, 여기 소는 없지 않소.

담장 안에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내몰면서 

누구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인지

담장 쌓기 전에 생각해보고 싶소. 

담장을 싫어하는 무엇이 있어서,

자꾸만 담장을 무너뜨리니 말이요." 이웃에게

“요정들의 짓이죠,”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딱히 요정의 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해주길 바랄 뿐이다.

내 이웃이 돌덩이 위쪽을 양 손에 그러쥐고 온다.

마치 구석기시대의 무장한 야만인 같다. 

그저 어두운 숲과 나무 그늘이 아니라.

진짜 암흑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선조의 말씀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던지,

때마침 그 말씀이 생각난 것이 흐뭇한 듯이

다시 말한다.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사이가 좋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담장 고치기> 전문


  이 시는 매우 현대적인 주제를 다룬 프로이트의 시 중 한 편이다. 담장이라는 비유로 인간의 본질적 소외와 고립감, 의사소통의 부재라는 현대적 주제를 담고 있다. 프로스트의 시는 대부분 숲, 농장, 산속 마을과 강 등 도시에서 떨어진 전원 농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프로스트는 자연시인, 전원시인, 생태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농촌이나 전원은 프로스트의 시에 공간적 배경을 제공할 뿐, 그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는 현대인이 감당해야 할 실존적 문제이다. 우리가 ‘현대인’이라고 할 때 그 말에는 도시인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인간을 가리킨다. 그리고 지구라는 자연 속에 도시인도 농부도 함께 살아가며, 인간 문명이 빚어낸 결과들을 힘겹게 버텨가고 있다.


이 시에서 중요한 문장,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사이가 좋다”라는 현대인의 상식에 가까운 생각은 시에서 그 기반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마치 “담장을 싫어하는 무엇인가”가 봄이 되면 담장을 무너뜨리듯이, 현대인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활원칙은 이 시에서 그 힘을 잃게 된다. 

우리의 상식은 진리가 아니다. ‘상식’은 우리가 편의적으로, 또는 집단의 동의에 따라 그럴법하다고 여기는 것일 뿐, 상식은 진리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상식적 사회에 맞서는 진리의 담지자로서 개인이 처한 갈등은 문학의 주요 관심사가 된다. 


이 시는 평이한 리듬으로 진행된다. 전원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봄철 담장 고치기를 두 이웃이 평화롭게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눈과 감성은 담장을 둘러싼 이 복잡한 인간관계의 역학과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의 힘을 포착한다. 담장이 겨울을 보내면서 봄이 되어 무너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얼었던 땅이 녹아 무너지는 현상은 인간의 힘을 넘어선 것이다. 

인간은 다만 반복해서 담장을 고쳐야 할 뿐이다. 


그런데 왜 굳이 담장을 고쳐야 하는 것일까, 시인의 궁리가 시작된다. 시인과 이웃 사이에는 딱히 담장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웃은 돌덩이를 꽉 움켜쥐고는 담장이 있어야 이웃 간에 불화가 없다는 상식을 되뇌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일곱 행에서 시인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문명 이전의 야만인이다. 야만인의 손에 들려진 돌덩이는 언젠가는 사냥용 무기가 될 수 있다. 문명인으로서 선조의 믿음을 성실하게 따르는 농촌지역의 이 선량한 이웃에게서 시인의 상상력은 문명이면의 야만성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문명 속 야만의 이미지는 단지 시인 프로스트의 착각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20세기의 문명이 초래한 야만적 사건들을 무수히 목도해왔으며, 지금도 야만은 사라지지 않고 문명의 존속을 위협한다. 사상가나 정치가 등과 달리 시인은 이 커다란 주제를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을 구성해냄으로써 독자들의 상식에 깊은 균열을 만들어낸다. 


시인의 언어가 우리 삶의 표면을 그어 낸 틈으로 상식의 자리에 진실이 들어선다. 그러면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담장을 쌓아야 하는 현대인의 상식은 매번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담장을 싫어하는 그 무엇은 그저 물질적 자연만이 아닌, 인간성까지도 아우르는 더 큰 진실로서의 자연이며, 그것을 목격하고 귀 기울이는 일은 시인의 몫이다. 


프로스트의 시는 평범한 일상과 담담한 어조로 현대인의 폐부를 찌르는 가장 첨예한 실존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이 시에는 담장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없다. 다만 수시로 담장을 쌓아야 하는 인간군상이 있을 뿐이다. 


시는 답을 주지 않는다. 이 시가 던지는 질문 속에서 우리는 프로스트의 시에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혹은 현대문명에 ‘자연’이 존재하는가? 


이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인생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념을 담은 시를 쓴 걸로 유명해진 프로스트가 실은 모더니즘의 화두를 아주 집요하게 붙들고 파헤친 시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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