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토마스 시,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
노년에는 날이 저물수록 더욱 불태우고 몸부림 쳐야 하니,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분노하십시오.
똑똑한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어둠이 마땅함을 알게 되지만,
자신의 언어로는 어떤 번개도 가르지 못하기 때문에
고이 잠들지 않습니다.
선한 이들은 마지막 물결에 몸을 싣고 자신의 덧없는 행적이나마
푸른 해협에서 찬란히 빛났을 수 있었다며 울음을 토해내고는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합니다.
도망치는 태양을 붙잡아 노래했던 길들여지지 않은 이들은
지는 태양에 자신이 얼마나 애태웠는지를 뒤늦게 깨닫고는
고이 잠들지 않습니다.
근엄한 이들은 죽음을 앞두고 눈 먼 시선을 던져
장님의 눈도 유성처럼 타오르고 기뻐할 수 있음을 알고는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합니다.
그리고 당신, 저 서글픈 고지(高地)에 계신 내 아버지
이제 당신의 성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길, 기도합니다.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하십시오.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전문
딜런 토마스는 39세에 사망했다. 39세란 나이는 모호하다. 청년기는 이미 지났지만 중년의 문턱에서 멈춰 있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길 위에서(On the road)”의 죽음이다.
1950년부터 토마스는 미국투어를 시작했다. 총 네 차례의 투어를 했고 마지막 투어 도중 사망한다. 당시 미국 투어에서 토마스는 지금으로 치면 거의 아이돌 급의 스케줄을 소화해야했다. 매번 4,50회 모임을 소화해야했는데 시 낭독 뿐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파티와 소규모 모임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토마스는 여정 내내 술을 마셨다고 알려져 있고, 투어를 도와주는 비서와 밀회를 나누었다.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간 토마스를 보려고 웨일즈에서 달려온 아내 캐이틀린은 술을 마신 채 남편을 그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투어행사를 기획한 시인 존 브린에게 욕을 퍼부었다가 롱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 실려 갔다고 한다.
토마스의 사인은 천식과 폐렴 등이 복합적으로 발병한 상태에서 당시 뉴욕시의 대기상태가 나빠 이미 웨일즈에서부터 고통 받던 호흡기 질환이 심각해져 죽음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 시를 쓰면서 생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찬양하며 죽음에의 저항을 노래한 시인 치고 거의 객사에 가까운 그의 죽음은 시를 쓰는 행위를 반추하게 한다.
시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는 딜런 토마스의 시 중 가장 유명한 시인데, 지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외치는 아들의 절규에 가까운 기원이다. 1951년에 시를 썼고, 토마스의 아버지는 1952년 10월 16일에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말년을 병자로, 거의 장님 상태로 보냈다고 한다.
이 시에 담긴 죽음을 향한 격렬한 저항은 아버지가 ‘어둠’ 즉 죽음에 굴복하려는 순간 아들이 내뱉는 처절한 외침이며, 인간으로서 극복 불가능한 운명을 마주한 절망감을 표현한다. 이 시에서 ‘안녕히 주무세요’(Good night)라는 평범한 문구는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로 바뀐다. ‘안녕히 잠들지 말라’는 요구, 혹은 죽음이 임박한 병상의 아버지에게 ‘고이 잠들지 말라’고 요구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죽음을 향한 열정적인 저항의 몸짓이다.
그리고 이 저항은 다름 아닌 생의 에너지와 목숨의 의미를 통찰한 시인의 것으로서 그의 시 쓰기는, 결국 목숨이 붙어있는 매 순간을 종이위에 기록하는 행위인 셈이다. 자신의 생명, 실존적 존재로서의 생생한 순간을 언어화하는 과정이 시가 된다.
그렇기에 딜런 토마스의 시는 읽기보다는 육성으로 읽고, 듣는 소리의 체험이 중요하다. 종이위의 시는 시의 사체에 불과하다. 육성으로 낭송되는 시야말로 생생한 존재의 증거이고, 그렇게 낭송했을 때 경험하는 언어의 리듬, 음절과 음절 사이의 틈,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음악성이야말로 시의 본령이다.
특히 딜런 토마스의 목소리가 시 낭송에 적합했고, 그의 아이돌 급 인기는 시를 읽는 그의 육성 덕분이기도 했으니, 우리는 독자로서가 아니라, 청자이자 관객으로서 그의 시를 경험해야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Rec3VbH3w (딜런 토마스 낭송 -링크수정: 토마스의 육성을 들으면서 위의 한국어 번역본을 읽어보세요.)
이 시에서 딜런의 애도하는 목소리는 생경하고 절망적이며, 애절하고 심오하다. 시에서 딜런은 아버지를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과 대립시킨다.
지혜로운 일에 평생을 바쳤지만 죽음의 공포에서 그들을 이끌어줄 빛을 만들지 못한 현명한 이들은 고이 잠들려 하지 않는다.
평생 선행을 했지만 임박한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헛되어버린 선한 사람들은 꺼져가는 빛에 분노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 즉 시인들은 위대한 애도의 시를 썼으면서도 고이 잠들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근엄하고 진지한 이들은 도덕성에 담긴 비극적 쾌활함을 본다.
시인 딜런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분노하며,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그러니 시인의 아버지는 이 생의 도덕성이라는 “서글픈 고지(高地)”에 서서 제발 분노하고 분노해야한다.
딜런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아들 딜런은 간청한다. “당신의 성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시길, 나는 기도합니다.” 시인은 이 수사적이며 진정성이 담긴 시에서 기도를 올린다. 시는 용기와 위엄을 간청하는 기도문이 된다.
이 시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인용이 되면서 더 유명해진 바 있다. 영화에서는 배우 마이클 케인이 낭송하는데, 케인 외에도 안소니 홉킨스, 톰 히들턴, 리처드 버튼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낭송을 유튜브 등에서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_nprPycZow (영화 <인터스텔라>중 마이클 케인의 낭송)
* 딜런 시의 번역은 인터넷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번역본 몇 편과 이상섭 교수의 번역을 참고한 뒤 필자가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영어제목에서 ‘굿 나잇’은 ‘좋은 밤’. ‘어두운 밤’, ’편안한 밤‘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상섭 교수는 영어 표현 그대로 ‘굿 나잇’으로 번역했다. ‘좋은 밤’은 지나친 직역이고, ‘어두운 밤’과 ‘편안한 밤’은 시의 내용에 맞게 의역한 것이나, ‘어두운’은 지나친 의역인 듯하고, ‘편안한 밤’이 가장 의미에 어울린다. 필자는 죽음과 잠의 관례적 비유를 받아들여 ‘잠’으로 번역하되 저항 없이 죽음을 맞는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안타까운 기도문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익히 알려진 기도문 ‘고이 잠들게 하소서’를 변형해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