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by Rooney Kim


그 사람과 나는 한동안 그냥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맞았다. 우리 각자가 알고 있는 '정승희'가 정말 우연하게도 바로 그 '정승희'였다. 기뻤다. 놀라움은 둘째치고 마법처럼, 아니 마법보다 놀라운 사건들로 최근 나의 두어 달을 즐겁게 가득 채운 나의 영원한 친구 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누군가와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편안하게 두근대던 심장이 점점 발랄하게 뛰기 시작하며 즐거운 흥분이 내 안에서 차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승희를 어떻게 알아요?”


만나기 전에는 단 하나의 접점도 없을 것 같았던 서로가 어쩌면 각자의 삶에서 큰 영향을 끼친 한 아이를 각자의 시간에서 만난 뒤 오랜 세월이 흘러 이렇게 마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마치 누가 먼저 물을지 서로 고민하던 차에 성격이 급한 내가 먼저 물었다.


“승희와 같은 대학교에 같은 과였어요. 전 한 해를 재수하고 간 터라 몇몇 동기들은 저를 좀 어려워했거든요. 전 그냥 모두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승희는 달랐어요. 승희는 처음 본 날부터 그냥 절 친구처럼 대했어요. 물론, 가끔은 좀 미안했는지 존칭을 쓰기도 하고 호칭을 달리하기도 했는데, 제가 아예 그러지 말라고 했거든요. 전 정말 승희가 좋았고, 친구 사이에 단 하나의 계단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이 사람이 승희와 같은 학교라니..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 이미 과거에 벌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거대한 수수께끼의 중요한 퍼즐 몇 조각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승희는 공부도 잘해서 내가 겨우 서울에 있는 4년제에 추가 합격을 했을 때 그녀는 이미 국내 탑 3의 대학 중 두 곳에 합격을 한 상황이었다. 대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두어 달에 한 번은 봤으니 그때는 지금처럼 그녀가 내 삶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좀 부끄럽지만, 1학년이 지나고부터 승희를 못 봤어요. 서로 바쁜 학교 생활로 다음 달에는 꼭 보자, 그러자 하던 게 반년이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났고, 또 서로 해외 연수나 교환 학생을 가면서 못 보고 그러다가 졸업 시즌엔 취업 준비를 하느라 저도 연락을 못했어요. 그땐.. 뭐랄까, 아시죠? 스펙 쌓고 면접 준비하고 인턴도 하고 또 면접보고. 그러다보니 당시 친하던 친구들이랑도 서로 연락이 잠시 끊겼었어요. 다들 어디라도 합격을 한 뒤에야 단체 채팅방에 합격 메시지와 함께 생존 신고를 했었으니까요.”


“저도 비슷해요. 같은 학교였고 친했지만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주 못 보게 되고 연락도 뜸해졌거든요. 나중에 들어보니 어느 대기업에 입사를 했는데 1년이 안돼서 그만두고 해외로 나갔다는 소식을 듣긴 했어요. 저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서히 승희와 멀어졌던 거죠..”


“대학 시절의 승희는 어땠어요? 제 짧은 인생에 있어 승희는 제게 멘토 같은 사람이었거든요. 뭐랄까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 멘토가 아니라 구루 같은 사람이었어요.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불렀잖아요? 승희는 제게 그런 느낌이에요.”


그냥 꿈만 같았다. 몽중에 있는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토굴 카페의 조명과 분위기도 그랬고 우리가 서로 다른 시기에 승희와 친했었다는 것도 그리고 승희가 각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도 같았다.


“승희는 분명 저보다 한 살 어린 친구였지만 가끔 툭하고 뱉는 말은 저희 부모님 혹은 그 윗 세대의 어른이 할 법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가령, 친구들이 부모세대를 보고 ‘꼰대 세대에게 배울 건 없어. 그때는 맞았던 게 지금은 다른 정도가 아니라 틀리다고! 대학교만 졸업하면 취업이 되던 시대와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면접에서 수십 번을 떨어지는 지금과 같겠어? 그런데 맨날 노력이 부족하니 어쩌니.’하며 욕을 하며 세대 갈등이 최고를 찍을 때 승희가 슬쩍 다가와서는


‘맞아. 세상이 변했어. 당연히 대학을 졸업한다고 자동으로 취업이 되진 않지. 그런데 우리 윗 세대가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우리 나이였을 때 지금의 우리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야. 누구나 자신의 경험이 우선이거든. 그래서 곧이곧대로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비난할 필요도 없어. 어른 세대에겐 나름대로 우리가 배우고 얻어갈 게 있어. 그럼에도 불통하면 우리가 설명을 해주면 되는 거야. 세대 간의 문제는 한 세대가 풀 수 없어. 서로를 이해해야 돼. 서로를 마주 볼게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온 각 시대를 마주 보면 이해가 될 거야.’


이렇게 말이죠. 전 그때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가뜩이나 똑똑하고 영리한 친구라고 느끼고는 있었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마저 저리 넓으니.. 그냥 인생의 선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역시 승희였다. 그 사람의 입을 통해들은 승희의 한마디는 거짓말처럼 또 나의 가슴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문득 회사의 한 상사가 떠올랐고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만을 보며 증오했던 시간 뒤로 ‘그 상사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 상사의 부모는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며 어떤 친구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아마도 그때 만들어진 삶에 대한 신념과 관계에 대한 개념이 현재 그토록 험한 입과 삐뚤어진 사고관을 초래한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그 상사가 이해되었다. 여전히 그 상사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그릇된 행동과 무례한 언사의 원인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가엷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런 모순된 행동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속에 분노와 짜증을 다스릴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이 하나 더 생겼고 그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전 승희와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요. 뭐랄까.. 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아이예요. 물론, 제 다른 친한 친구들과 다 함께 어울리진 못했지만 우리 둘은 또 우리 둘 나름대로 단짝이었죠. 승희는 그냥 특별한 아이였어요. 너무 똑똑한 나머지 일반적인 주제로는 친구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아 친한 친구는 저를 포함해서 몇 없었는데 그럼에도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어요. 아니, 친하지않을 지언정 감히 승희를 따돌릴 순 없었어요. 승희의 두 눈에서 뿜어지는 당차고 밝은 에너지, 스스로 빛나는 화려한 얼굴을 하고도 단 한 번도 예쁜 척을 하지도 않았어요. 수많은 타 학교의 아이들이 그녀를 보려고 교문에서 기다리고 수십 번의 고백 편지를 받아도 그녀의 마음은 항상 제 자리를 유지했어요. 다른 애였다면 붕뜬 마음에 우쭐대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맞아요. 승희는 정말 이뻤어요.”


우리 둘은 또 미리 짜기라도 한 듯이 똑같이 말했고 그런 모습이 서로 너무 우습고 반가워 한바탕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카페가 문을 닫게 되어 한산하고 한적한 도심의 공원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이 밤을 지새워도 모든 이야기를 다하긴 힘들듯했다. 아직 최근의 마법 같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으니 그동안 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꾹꾹 눌러 참아온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 역시 나의 이런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vio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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