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by Rooney Kim


“자, 여기요.”


이번에는 내가 자주가던 식당에 그를 초대했다. 도무지 잠들기 어려웠던 지난 밤이 떠올랐다. 과연 승희는 그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었을까. 어떤 메시지를 주었길래 이제 서너번 만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이렇게나 강력한 유대감이 생겼을까.


공통점을 가지고 있거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서로의 취향을 확인했으니 그 취향을 선택한 상황과 관심사가 단번에 이해된다.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앞으로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많아진다. 이제는 그 사람이 소개팅을 통해 만난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게된 사람처럼 느껴질정도다. 승희와 그 사람의 대학 시절은 어땠을까. 둘은 얼마나 친했으며 승희는 그때도 번뜩이는 사고와 세상을 뚫어보는 초월적인 시선으로 일반 상식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했을까.


‘괌에서 돌아온 그와 깊은 기쁨의 이야기를 나누어 봐. 좋을 거고 더 좋아질거야.’


“이 카드가 승희가 보낸 첫 메시지였어요?”


“네, 뜬금없이 우편함에 편지가 와 있길래. 다른 사람 편지가 잘못 배달된 건 줄 알았어요. 저도 학창시절 이후 이런 편지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느닷없이 괌이라뇨? 하하, 저도 승희 이름만 없었다면 장난 편지일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주변에 괌을 다녀온 사람이 없었거든요. 최근에 해외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도 뉴욕이나 유럽을 다녀왔지. 괌을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괌을 다녀온 것에 대해 언급했었던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제가 혹시 괌에 간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나요..?"


“아녜요. 급하게 어디 다녀와야한다고만 했지 위치는 알려주지않았어요. 그땐 저희가 지금처럼 조금 더 친해진.. 상황도 아니었구요. 하하.


“그럼 어떻게..?”


“지난 번에 회사 빌딩 1층에서 만난 날 기억하시죠? 저랑 먹으려고 초콜릿이랑 들고오셨잖아요? 그때 봉투가 면세점 봉투라서 ‘아, 해외에 다녀오셨구나. 그렇다면 혹시 저 분이 괌에..?’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추측한 거예요.”


순간 그 날 우리가 만난 장면이 번쩍하고 스쳐지나갔다. 가뜩이나 이야기 코드가 잘 맞았는데 승희라는 강력한 공통 주제까지 공유하게된 그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알고있는 승희에 대해 이야기하며 굉장히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승희는 우리가 그런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있기라도 한 듯 우리가 만나기 몇주 전에 이미 그 사람에게 우리가 나눌 기쁨의 이야기에 대한 메시지를 편지로 보냈던 것이다.


정말 승희가 바라던대로 그녀는 지금 시공을 초월한 곳에 가 있는 걸까. 지금 나와 그 사람이 만나서 나누는 이 대화도 보고있는걸까. 그 어떤 물리적인 방법으로도 그녀에게 닿을 길이 없는 상황임에도 그녀는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을 넘나들며 그녀가 원하는 때에 우리에게 닿았다. 우연의 일치든 놀랍도록 정교한 그녀의 설계든 방법은 중요치않았다. 난 그저 그녀가 나와 그 사람을 한 지점으로 불러들여 만나 관계를 이루며 친해지도록 만든 그녀의 생각과 의도가 궁금했다. 사실 그것보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괜찮은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대학교 다닐 때, 승희와 특별한 에피소드같은 게 있나요? 저도 고등학교 이후로는 못본지 너무 오래라 어디서부터 다시 승희에 대한 업데이트를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사실..”


난 이후 그가 이야기한 승희에 대한 사실들에 대해 들으며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승희는 그저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없이 컸을 것이라고 믿었던 내게, 승희의 가정사는 상상도 못한 반전의 반전의 연속이었다.


“음, 이걸 승희가 직접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저도 다른 친구를 통해 들은거라 딱히 승희에게 내색을 한 적은 없었거든요. 승희 성격 털털한 거, 아시잖아요?”


난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눈을 하기위해 꿀꺽 침을 삼킨 뒤 그저 가만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승희가 대학 입학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나봐요. 아버지는 일 년이 채 안되어 다른 분과 재혼을 하셨는데 계모에게 딸 둘이 있었나 보더라구요. 사실, 이건 과사무실에서 알바하던 동기가 학생 기록부를 보고 알게되었는지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안주거리처럼 얘기하다 퍼졌었어요. 저도 여기까진 별 생각없이 들었어요. 물론, 개인 정보를 그렇게 사석에서 퍼트리고 다니면 안되죠. 그런데 승희는 학교 내 거의 모든 남학생들이 알아볼 정도로 유명했어요. 타 단대 남학생들이 일부러 우리 단대로 찾아와서 그녀를 찾아 볼만큼 얼굴이 예쁜걸로 소문이 났었죠. 그렇다보니 과사무실에서 알바하던 친구도 승희의 기록을 몰래 훔쳐본고 자기들끼리 얘기한게 아닌가 싶네요.”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넋두리는 커녕, 집안 얘기를 하지 않았던 승희에게 그런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학창 시절에도 아주 가끔 고급 외제차에서 내려 등교하던 그녀의 모습을 두세 번 정도 본적이 있던 터라 그저 막연히 유복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루머가 진짜임을 확인시켜주는 일이 일어났었어요. 유난히 술도 싫어하고 술자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가 하루는 개강 파티에 참석을 한 거예요. 전 그날 야간 수업을 듣느라 뒤늦게 술자리에 참석했었고 그래서 제가 ‘너 왠일이야? 술 못마시잖아?’ 했더니 대뜸 자기 테이블에 앉으라는 거예요. 당시 테이블에는 승희와 저 그리고 동기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승희가 그 친구에게 뜬금없이 햄버거를 하나만 사다달라고 부탁을했고 그 친구는 승희의 부탁이라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죠.”


난 단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가만히 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며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승희의 넋두리라니.. 그저 행복한 아이, 뛰어난 아이, 세상의 이치를 꿰뚫은 선지자같은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승희에게도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갑자기 사무치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왜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까하는 자책마저 들었다.


“곧 승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놀라지마.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새엄마와 새언니들과는 도저히 못살겠어. 네게 이말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거야. 들어줘서 고마워.’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vio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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