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 싶다. 줄곧일 수도 있겠다. 마음 한구석 꾸준히 품고 사는 추억의 인물들.
몰아치는 업무를 겨우 마무리한 뒤 피로해하다가 마침내 바깥으로 나왔을 때. 저만치서 날 보며 빙긋 웃어줄 것 같은 사람.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비록 환영일지라도. 실재하지 않는다 한들 몹시도 선연하여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길 수 있을 듯한 사람. 그 얼굴 보는 찰나 경직되었던 몸이 느슨해지고 숨통이 탁 트여 눈물이 핑 돌도록 하는 사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순간에도 그렇다. 이어폰 너머 들려오는 음악에 집중을 다하고 있노라면 가만히 옆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달걀을 쥐듯 조심스레 나의 손을 움켜쥐며 ‘다 괜찮아’하거나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할 것 같다. 그러할 경우 지그시 눈을 감는다. 조금이라도 오래된 체온을 기억해내려 애써본다.
또한 편의점에 들러 이리저리 코너를 구경하다가 달랑 음료 하나만 사와 테이블 앞에 앉았을 때. 어디선가 툭 튀어나와 ‘왜 혼자 궁상떨고 그래’ 장난스레 물어올 것 같다. 그러고는 그간 있었던 일들에 관해 세심하게 하나하나 질문할 것 같다. 그럼 난 조금은 담담해진 어투로 전부를 쏟아내고는 진실로 웃을 수 있을듯하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어. 그걸 지나오느라 무척 힘들었는데···실은 다 지나갔다고도 못해. 아직 건너는 중이야. 마지막 말을 마치자마자 ‘고생했네’ 다가오는 손길에 마냥 머리를 내밀며 그제야 모든 걸 비워낼 수 있을 듯하다.
이토록 어떠한 사람들은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곁에 남아 여전히 나를 다독이고 일으킨다. 물론 그들로 인해 울게 되는 날들도 허다하다만. 그래도 마음을 나누었음을 후회하지 않으련다. 무심코 입은 재킷 안쪽에 자리 잡고 있던 오래된 쪽지를 발견하듯. 본의 아니게 평생 간직하게 되는 사람과 추억이란 게 존재하는 거다. 좋았다고, 혹은 나빴다고 따지려 들 수 없을 정도로 소중했던 그런.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남 몰래 허공에 불러보는 이름이 늘어가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