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따라서 건조해진 탓인가. 그냥 내가 덜렁거리는 까닭일까. 요새는 손을 베이는 일이 잦아. 근데 그걸 꼭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서 한참 후에야 바짝 굳어버린 핏자국을 보며 ‘아’한다. 그런 뒤 잇따라오는 동료의 ‘어이구’소리를 듣곤 상비약통에서 밴드를 꺼내 붙여. 제법 담담한 표정으로.
나 원래 몸에 생긴 상처엔 무심하거나 무딘 거 알잖아. 저번엔 다른 이와 대화를 하며 가위를 닦다가 손가락을 꽤나 깊게 베었는데 아무렇잖게 있었더니 다들 어떻게 그러냐 하더라고. 멍청하게 “그러게요” 대답했어.
그리고 이 일을 제일 친한 친구에게 말했더니만 너는 특이하게 본인 일 중 그런 거엔 별 반응이 없대. 아마 다른 곳에 더 예민하고 신경이 쏠려있어서 그런듯하대. 일리 있는 것 같아 고개를 수없이 끄덕였어. 그래도 상처란 게 있지, 왜 그렇잖아. 모르고 있음 통증 같은 건 없는데 알게 된 순간부터 스멀스멀 밀려오는 거.
따끔거리는 손가락을 슬쩍 슬쩍 바라봐. 문득 마음도 매한가지겠단 생각을 해.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나 결핍, 콤플렉스 그러한 게 내가 모른 채 있었을 땐 이따금 드러나거나, 혹 특정 사건이 있어야만 불쑥 치고 올라와 ‘뭐지’싶잖아.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직시하고 ‘아 이런 면에서…’ 분명하게 짚게 되는 순간. 이상하리만치 그것들이 매일 따라붙고 머릿속을 괴롭혀, 매사 지우려 들고 민감하게 구는 바람에 어지간히 힘들어지잖아.
물론 본인의 상처, 결핍, 콤플렉스, 이러한 걸 받아들이며 잘 가꿔나가고 치유한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지. 다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노릇이니까. 그렇다고 뭐… 못하겠다는 식의 투정은 아니야. 잘 고쳐나가야지.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또 누가 나를 돌봐주겠어. 온전히 채워지는 것. 그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고.
솔직히 매일이 외로워. 매일이 공허해. 과거로부터 벗어나려 달리느라 매일이 지치고. 전과 달리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매일 심적으로 분주하고 부담이 커. 그러나 괜찮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여겨. 그동안엔 지인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어. 더불어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렸어. 그때마다 만남에 집중하며 일시적으로 잡생각이 떨쳐지고 왠지 모르게 충족되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야(가끔 기억 속 트리거로 작동할 만한 단어나 주제로 이어질 땐 넋 놓곤 했지만).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내가 나를 채우는 데에 몰두하려 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한동안 멀리했던 서점에 가 책을 사서 읽고, 맛있는 걸 더 맛있게 먹고. 취미활동을 재개하며 한적한 카페에서 음악을 듣다 오거나 사람을 구경하는, 그런 것. 한주를 돌아보는 일기도 열심히 적어보려고. 꾸준히 이러다 보면 반드시 무언가 달라지는 점이 있을 테지.
최근 목표가 생겼어. 구태여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 구구절절 행복을 설명하지 않는다 한들 행복이 선명히 보이는 존재로 거듭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