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올라타 안경을 꺼내 쓰고서 몇 마디를 끄적인다. 뒷자리에 앉은 여자는 연거푸 하품을 한다. 그리 피곤한가?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음악의 볼륨을 살짝 낮춘다. ‘언젠가는 널 잊을 거야 곧 날이 밝아와 부디 울지 말아 줘‘ 후렴구가 계속된다.
우울하다는 친구의 말에 조언 같은 걸 하고 있는 내가, 과연 그럴 처지인가? 골몰한다. 이젠 마냥 ’힘들다‘거나 ’우울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측은해지긴커녕 더욱 냉정해진다. 더 이상 무조건적인 위로와 공감을 하지 못한다. 세상에 슬픈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각자 저마다의 우울과 슬픔을 깔고서 아닌 척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나 그리고 우리를 더불어, 말 못 할 사연을 앙 다문 입술 너머로 삼키고 삼기며 살 테다. 더한 사람도 있을 테고 덜한 사람도 있을 테고.
한없이 나약해지는 태도에 지난 내 모습이 보여 찡그려지는 것도 같다.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이 어지간히 불편한 모양이다. 현재는,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냉큼 잊으려 한다.
일부러 재미난 영상을 찾아보고 어딘가를, 타지에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본다. 내가 도전하지 못한 자유와 용기, 실행력 등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 같다. 어릴 적 팬심을 품고 있던 인플루언서를 다시금 찾아보니 도쿄에 가서 살고 있더라. 나도 꿈꿔본 적 있는 삶이다. 한데, 못했다.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때려치웠고 내가 무슨 다른 나라냐, 하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온갖 어려운 점들이 여전한데, 무슨 수로.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나서서 먹은 음식물을 처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러니 애들이 왜 이렇게 변했냐며 눈을 휘둥그레 뜨던 거 있지. 나 그래도 집에서 가능한 하고 그래. 남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란 마냥 철없고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다만, 어느 정도 착각이다.
술은 최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마시고 조용한 곳, 한적한 곳, 외엔 가는 걸 끔찍도 싫어하고(그래서 시끄럽고 인파가 몰리는 곳엔 가지도 않았고, 않는다) 대체로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가족에게 충실한 편이다. 대부분의 돈도 가족에게 쓰는 쪽이다. 딱히 내가 갖고 싶거나 필요로 하는 건 없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지원을 내가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의 짐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생에겐 최대한 좋은 것들을 해주고 좋은 기억들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의 슬픔 같은 건, 얘는 몰랐으면 한다.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겐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을 진 거라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들에게 성실히 잘해줄 약속을 본인과 한다.
멘탈은 약한 편이다. 근데 또 이렇다고 단정 짓기 애매해지는 것이, 그간 그런 일들을 겪어오고서도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같다.
선한 사람이 좋다.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 무해한 사람. 그리고 나도 다른 이들에게, 최대한 유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름 잘 차려입던 예전과는 달리 현재는 헐렁한 옷들만 고집한다. 한마디로 대충 입고 나간다. 내 몸집보다 큰 티셔츠와 바지를 걸치고서 머리모양도 엉망, 화장도 어설퍼졌다. 밥도 잘 먹고 약을 먹는 횟수가 줄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애쓴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건강이 중요하단 사실을 깊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이 소중하다. 가끔은, 아니 실은 아직도 자주 왜 그런 과거를 지나와야만 내가 성장할 수 있었는가, 억울해지고 암담해지는 순간이 빈번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땅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화기애애하며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게.
부디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더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잠들기 전 하는 기도는 명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