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있었더라면 좀 더 수월한 문제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미운 짓만 쏙쏙 골라 하는 사람을, 암만 좋아해 보려 한다 한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인물을, 마냥 날세우지 않고서 조금은 상냥하게 대하는 법을요.
누군가를 내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버리면 된다는 이옥섭 감독의 말마따나 제 마음가짐 자체를 바꿔보려 하는데, 이게 참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어지간히 불편한 모양이에요.
이전에 친구가 한창 불안에 휩싸인 저를 보며 한 말이 있었죠. 그때 마침 장소가 카페였을 거예요. 친구도 어디선가 본 글이라며 알려주었는데, 갑자기 절반 정도 남은 음료 위로 치즈 케이크 부스러기를 몽땅 넣는 시늉을 하더라고요. 그러고서 덧붙이는 설명이,
“컵 안에 치즈케이크 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그럼 물이랑 같이 가루가 둥둥 뜬다? 그걸 막 숟가락으로 퍼내려고 해. 근데 컵 옆면에 달라붙고 아무리 퍼올려도 조금은 남아. 그래서 어떡하지? 하다가 그냥 물을 냅다 더 들이부어. 그러면 물이 넘치면서 그 가루도 따라 밖으로 흘러내릴 거 아니야?
난 뭔가 그런 거 같아. 고민이랑 걱정이 가루야. 물은 행복이고. 아무리 내가 퍼올리려 고민하고 신경 쓰고 잊으려고 노력하고 암만 그래도 안돼. 그냥 그 시간에 차라리 행복할 궁리만 하고 친구를 만나든 뭘 하든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걸 하고 그래봐.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걱정, 고민도 별거 아닌 게 되고 잊혀 있을걸.”
였습니다. 주저리주저리 길어지는 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서 주워듣기 위해 열심히 귀를 쫑긋 세웠던 기억이 있네요. 근래에는 전에 썼던 글이나 나눴던 대화를 되새겨보는 순간이 많아졌어요. 그중 하나입니다. 기억이란 게, 잊고 말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는 되지 않는듯해요. 내면 깊숙이 숨어있다가 무의식중 떠오르는 얼굴들, 당시 상황, 사건, 말들, 행동, 추가적으로 향기, 날씨.
의외로 저는 좋았던 날들은 잘 기억을 못 해요. 그래서 한때는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본인과 상대에게 다소 기만일 수 있는 문장을 잘도 발음하고 다녔죠. 따지고 볼 경우 그까짓 불행의 사연들은 뒤로 한 채 충분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인데요. 어찌 되었든 간에 주변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먹고 싶은 걸 먹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있으니 말이에요.
최근 나는 나의 나쁜 면을 보았습니다. 대개 관대한 편이고 그러려고 하는 쪽이며 주로 “넌 동그라미 같다”, “순하다”, 식의 표현을 듣거든요. 그런데 요새 특정 인물에게 유독 까칠해지고 못되게 굴고 한껏 퉁명스러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며 엄청 별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이 이런 면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사람을 바꾸려 하고 통제하려는 경향도 있는 사람이구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고 본인에게 실망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겪게 되죠. 본인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픈 이유는 즉, 자신의 상처를 꼬집어 상기시키기에, 자신의 부끄러운 민낯을 봐야 하기에,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가 아닐까 싶어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건 몹시 어렵다만 당장의 나에겐 꼭 필요한 마음인 것도 같아요. 속뜻은 어느 정도 나 편하고자에 가깝겠으나, 그리될 경우 해가 될 것은 아니니까요.
자꾸만 미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 삶도 사랑해 보고 싶고요. 늘 ‘이런 사람은 되지 말자’했음에도 불구하고서 점차 그러한 사람과 닮아가고 있는 자신을. 미운 짓만 골라 해 이마에 꿀밤 한 대를 시원하게 날리고픈 사람들을. 솔직히 미운 면이 없는데 내가 자꾸만 미운 면을 찾게 되는 인물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 모든 걸 주인공으로 그리는 방법을 당신을 알고 있을 테지요.
잘 지내시나요. 실은 매일 안부를 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