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알맞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을 사랑했다. 어느 공간에 있든 간에 그곳과 하나가 되어 곧잘 버무려지던 사람. 본래 그곳에 있던 무언가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러우며 아울러 유쾌한 말장난으로 주변을 부드럽게 풀어버렸던 사람. 봄이며 여름이며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완연한 본인 같아서 도무지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도록 즐비했던 사람. 한없이 말랑이던 나와는 다른 단단했던 사람. 강했던 사람. 넘어져도 끄떡없던 사람. 툭툭 털고 일어났던 사람. 그리고 다시 달렸던 사람. 춤을 추듯 유영하던 사람.
그게 부러워 흉내 내려 했으나 매번 나를 실패로 몰고 갔던 사람. 좌절을 가르쳐준 사람. 밤에는 나직하게 나를 재우고 아침엔 쾌활하게 나를 깨웠던 사람. 명랑한 목소리와 그에 반해 무심한 눈동자는 나로 하여금 안달 나게 만들었던 사람. 낡은 공책의 모서리를 찢어 그 사람의 이름 석 자를 적고서 베개 밑에 둔 채로 급히 잠을 청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 사람이 꿈에 나와줄 거라 굳게 믿었다. 유치원생도 하지 않을 듯한 행동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서 함부로 운명을 읊었다. 잠꼬대는 늘 슬픔에 젖어있었다. 그 사람을 하도 불러 깨어나면 목이 아팠다.
하지만 사랑은 항상 내 편이 아녔다. 기대는 언제나 나를 배신했다. 사랑 앞에선 그토록 나약해졌으나 당최 돌봐주는 이가 없어 시름시름 앓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수시로 주저앉았다. 약을 먹어 나을 병이라면 애당초 말을 않았다. 빈번히 입술이 건조해 침을 바르고 부르텄다. 갈증이 심해졌다. 빈혈기도 맴돌아 창가에, 벽에 이마를 가져다 대기 일쑤였다. 환절기엔 사랑도 전염되었다.
붙이지도 못할 편지를 수첩 위로 휘갈겼다. 멋대로 허름해졌고 애정을 사고 싶었다.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부유하지 않아 돈을 벌어야 했다. 주고 싶은 게 많았다. 만일 너에 관한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랬더라면 지금쯤 난 억만장자가 되어 있을 거였는데.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걸 뭐 하러 쓰나. 뭐 하러 적고 또 적나. 관둘 경우 큰일이라도 날 듯이 굴고 있나. 스스로를 향해 잔뜩 신경질을 내고 난 뒤엔 별안간 잠이 들었다. 제풀에 지쳐 새근새근 지친 숨결을 내쉬었다.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속이 상했다. 바싹 메말랐다. 꿈에선 당신 없는 사막이었다.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죽었다.
너무 피로하다.
만사가 귀찮다.
보고 듣고 느끼고 싶지 않다.
당신의 난 여전히 어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