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내 이상형과는 정반대인 사람이었기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그가 처음 내 앞에 와서 인사를 했을 때도 난 쓰고 있던 안경을 치켜올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했을 뿐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서 밥을 먹게 되었을 때에도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아, 당시 그가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인지. 어떤 목소리를 내는 인간인지. 전혀 알지를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다 잊힐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무관심의 끝판왕이었다. 첫인상이라 말할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이에 비해 어리게 생긴 사람. 동안이다. 그리고 마침표.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그를 마음에 들이게 된 것이었다.
나조차도 혼란스러웠다. 그가 단지 웃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순식간에 사방이 새까맣게 뒤덮였다. 오직 그만 빛났다. 그만 새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가까이하지 않으며 웃음이라고는 아주 잠깐도 지어주지 않았던 인간이었다. 난 어떻게 저런 인간이 다 있지, 혀를 찼다. 분명히 싹수없을 거야. 엮여봐야 좋을 일 없을 테지. 그렇지만 그는 내가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로 우울감을 품고 있을 때 왔다. 느닷없이 나타나 나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고 그 예쁘게 휘던 눈매가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눈을 감아도 떠올랐고 눈을 떠도 그려졌다. 선명했다. 당신이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굴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원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아니지 않나.
그 후로 난 조금 더 잘 살아보자고,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아주 약간이라도 비슷한 선상에 서고 싶었다. 그리하여 노력하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열심하고자 했다. 멈추었던 그림도 다시 그리고 접어두었던 글도 다시 쓰며 먼지 쌓인 책들을 하나둘 다시 펼쳤다. 이런다고 해서 그와 좁혀질 수 있는 거리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헤매었다. 그는 매일 7:3 정도의 가르마를 타서 깔끔하게 올린 헤어스타일을 고집한다. 눈은 동그랗고 강렬하다.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진한 편이었다. 여러 번 요모조모 따져보아도 결코 내 이상형에 적합하지 않았다. 슬림한 체구로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주머니에 손을 자주 넣었다. 어쩌다 듣게 된 웃음소리가 특이했다. 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고 싶었다. 끼니는 제때 챙겨 먹는지도 궁금했다. 매일 입고 다니는 얇은 재킷이 춥지는 않은지도 묻고 싶었다. 알고 싶은 것 투성이었다. 절대 알고 싶지 않을 거라 안일했던 이가 알고 싶어 안달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온갖 궁금증이 부풀어 무거웠다. 여태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란 몹시 얄팍하다. 이 점은 노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녔다.
*
어떤 날은 그가 나 같기도 했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 무심코 창가에 비친 내가 그 같기도 했다. 만일 그가 듣는다면 소름이 돋는다며 식겁할지도 모르겠다.
*
그와의 단편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본다.
하루는 그가 왜 자꾸 본인을 쳐다보냐며 물었고 난 이에 얼굴이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 대답했던 기억. 그는 본인의 얼굴에 뭐가 묻었냐는 듯 귀엽게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기까지 했다. 난 그 모양을 보며 속수무책으로 웃었다. 그의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나를 어쩔 수 없었다. 아닌 척해야 하는 게 난제였다. 마음은 재채기처럼 감출 수 없어 터져 나오기 마련인데 그러면 안 되니 말이다. 줄기차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를 본 듯한 건 착각이었을 테지. 더불어 그날 내가 그의 옆에 서게 되었다. 아니, 그 일이 있기 바로 직전에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떴다. 나도 따라서 그렇게 했다. 그러자 그가 곧 생글생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술이 조금 들어간 상태여서 기분이 좋아 그랬을까. 귀여워 당장이라도 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하튼 그러고 나서 그의 옆에 서게 되었다. 무어라 중얼중얼했으나 내가 그걸 알아듣지 못해 어눌한 발음으로 그의 말을 짐작하며 따라 했다. 그냥 그가 좋아서 그 순간마저도 좋았다. 그랬던 기억.
또 하루는 담배를 피우러 나온 그를 본 사건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를 향해 머리 위로 손을 흔들자 이내 그도 똑같이 머리 위로 냉큼 손을 흔들어주었다. 몇 분 뒤에는 또다시 대면했는데 내가 그에게 몰래 다가가 불렀고 그가 담배를 손에 든 채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온몸에서 맥박이 뛰는 듯했다. 바보같이 인사만 하고서 냅다 뒤돌아 뛰었다. 토할 듯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나머지 하루는 아침부터 내가 그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칭찬을 했고 용케 알아들은 그가 박장대소를 하여 내가 더 민망해졌던 기억. 그 후로는 멈춰버린 트랙 위로 무언가 더 추가되지 않는다.
“요즘 좋은 일 있죠? 뭔데요. 말해줘요!”
주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던 초반에 자주 묻곤 했던 질문. 그때마다 나는 좋은 일 말고 좋아하는 건 생겼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참았다. 웃음거리만 될 듯하단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며칠 뒤 들통났다.
“글을 보면 달라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 전과 후가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니까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제 글에서 그만큼 진정성이 느껴지나요?”
의구심이 생겼다. 골백번 그런 글을 쓰기 위해 거짓 한 점 없는 문장을 적어내려 기를 쓰고 노력하는데 그게 전해지고 있는 걸까. 별안간 들려오는 음성에 안심할 수 있었다.
“네. 좋아하는 사람에 관해서 쓴 글에는 뭐랄까. 소중함이 잔뜩 묻어있어요. 아 진심을 다해 쓰고 있구나. 티가 나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쓰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졌다.
*
이전에 좋아했던 사람과 최근에 나눴던 메시지를 재차 정독했다.
[좋아하는 사람 만나기도 힘든데 만났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거야. 두근두근 얼~마나 좋니.]
[그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잘 안되어서 짝사랑만 하다 슬퍼지면 어떡해요?]
[못 만나서 심심하게 있던 거보다 좋았다~라고 생각해.]
이 사람과는 인제 어느 정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본다. 물론 고민의 내용을 상세히 얘기하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천천히 곱씹었다. 정말로 만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못 만나서 무료했던 일상보다 좋은 걸까? 이 사람도 내게 그랬나. 당신도 그런가. 마음은 그런 건가.
*
초반엔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만개할 만큼 기뻤는데.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차츰 욕심이 커져갔다. 무조건적으로 존경만 하자던 그의 모든 면모와 응원하고자 했던 그의 행복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고 그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이유에 내가 포함되고 싶어졌다. 불순해졌다. 존경보다 미워졌다. 내가 그렇게나 줄기차게 본인의 동선을 쫓는 걸 알고 있음에도 돌아보지 않는 그가 미웠다. 어쩌다 한번쯤은 실수로라도 돌아볼 법하나 결코 그러지 않는 당신이 미워서 심술이 났다. 당장 가서 따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 들통난 마당에 몇몇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를 좋아한다고. 발설하는 순간 마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제 몸집을 더 키웠다. 내 안 가득 들어차 버거워졌다. 차라리 혼자 삭히고 말 걸 그랬나. 후회가 막심했다. 원래 마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얘기할 경우 더더욱 심각해지는 걸 알지 않았는가. 파쇄기에 작업했던 인쇄물을 한장씩 넣으며 골몰했다. 감정도 파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결 편안해질 텐데. 왜 그런 건 발명하지 않았나. 그나마 행운인건 주변엔 상냥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괴로워 하는 나를 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로해준다.
“애쓰지 않아도 돼.”
따뜻한 음성.
“진짜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난 울지 않으려 눈을 부릅뜬다. 붉어진 눈시울을 허둥거리며 감추기 일쑤이다. 일부러 하품을 한다. 누군가 눈이 빨갛다는 말을 할 때 둘러대기 위함이다. 여러 사람들의 걱정을 산다. 어리광을 부린다. 어쩌면 이런 걸 즐겨 하는지도 모르겠다. 걱정 받는 게 마냥 좋아서, 다정함이 고파서, 자꾸만 티를 내고 응석 부리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소리가 늘었다. 서운한 게 많아졌고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본인 감정에 스스로를 질책한다.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은 나아져야지. 발전 없는 삶을 이어간다. 이게 나쁜 건가. 나를 에워싼 공기가 상당히 차갑다.
그에게 주려 했던 초콜릿을 다른 이에게 주었다.
마음은 어떤 식으로 접어야 아름다울까.
덧없다.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