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꼭 불행이 잇따르잖아, 어떻게 완전히 행복할 수만 있겠어” 얼마 전 날아온 행복하냐는 메시지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며 추가로 부연 설명을 덧붙였어요. 그러니 잠자코 듣던 당신이 갸우뚱거리며 얘기하더라고요. “행복은 행복이고 행복할 수만도 있는 거지, 왜 꼭 불행이 같이 올 거라고 미리 생각해?”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띵-했는데요.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점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착된 오랜 나의 습관 같은 거였어요. 행복과 동시에 불행을 떠올리느라 한발 앞서 두려워하는 짓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틀림없던 것 같거든요. 한데 또 곰곰이 며칠을 다시 되새겨볼수록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끄덕거려요. 그럼에도 이게 손톱의 거스러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무신경해질 수가 없어요. 나 역시 이런 나를 만족스러워하는 건 절대 아녜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음’이라는 핑계를 대기도 해요. 내가 살아온 시절을 전부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들이 있을 거잖아요. 태생적인 기질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여하튼 간에 나는 매일 밤 무탈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외우고 잠들 만큼 하루하루가 안정적이진 않아요.
남들은 나를 겉만 보고서 ‘아무런 고민 없는 애’ 혹은 ‘밝은 애’로 쉽게 판단하고 치부해버리곤 하지만 나의 내면을 되게 깊게 바라본 사람들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고 그래요. 나는 소수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요. 이것도 까닭이 있고요. 가벼운 척하는 면에도 ‘~이랬기 때문에’가 존재해요. 구태여 진짜 나를 드러내거나 소개하지 않아요. 잘못인 양 해명하지 않고요. 그래도 이전에는 날 잘 알지 못하고 떠벌리는 사람들의 말마디에 상처를 받았으나 이젠 아니에요.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나를 어느 정도 알잖아요. 우리는 무수한 대화를 나눴잖아요. 참 많은 부분을 공유했고요.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종종 당신이 나의 일부가 아닌 전부 같기도 해요.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당신을 마주할 경우, 문득 당신이 내게 최적의 온도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연히 깨닫습니다.
난 정말 다양한 사유들로 인해 말 못 할 지경으로 아팠고요.
당신을 만나 비로소 치유되고 있는 참이에요.
기적이에요.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소중히 아끼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