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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e 세인 May 14. 2024

잠들지 못할 때

옥상시선 20


잠들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어? 아니 잠들지 못할 때. 나는 있어.


지형은 사막과 같고 색깔은 우주와 같은 끝없이 너른 곳 가운데. 정확히는 가운데서 약간 오른편에 높지 않게 솟은 언덕이 있어. 그 등성이에는 정각이 하나 있는데, 사각의 기다란 나무 기둥 네 개와 그 네 꼭짓점을 이어 얹은 지붕으로 이루어졌어. 실은 아무것도 덮지 않아 하늘로 뚫린 지붕틀이야. 벽도 없고 천장도 없는 직육면체.


지붕틀의 네 변에는 커튼이 걸려 있어. 맨 위부터 맨 밑까지 덮는 길이에 속이 비치는 하얀 시폰 커튼이 주름 없이 걸렸는데, 그곳에는 늘 미풍이 불어오니까 그 시폰 커튼은 하늘-하늘- 춤을 춰. 천천히. 아무 소리 없이.


그 장면에서 내가 그 정각이 되어 보는 거야. 언덕에 선 채 바람이 나를 그대로 통과하도록. 춤추는 커튼 사이로 안에 머문 모든 게 날아가도록. 내 안에는 그래서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그러다 보면, 나는 잠이 들어.



Seine



『옥상시선』 마지막화입니다.

처음에는 연재 브런치북 포맷을 시험해 보려고 쓰기 시작했어요. 매주 글을 올릴 수 있을까, 어떤 분들이 읽어 주실까 하는 호기심이 컸고, 긴 글을 쓰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으면서도 일주일에 한 편씩 꼭 약속을 지켜보자는 다짐으로 스무 주 동안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막상 완결하려니 아쉬움이 남지만 새로운 글로 나아가기 위해 마침표를 찍을게요. 자유롭게, 하지만 무엇인가 계속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 놓지 않고 다음 글로 돌아올게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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