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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맘 먹고 집밥 살롱

말차 소바는 찍먹으로

by 세상 사람


나를 위한다는 것은 뭘까. 진짜 내 마음에 집중한다는 건. 순수한 내 욕구와 의지만으로,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 허락된다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을까. 직장을 안 다니고 결혼도 하지 않아서, 겉보기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상은, 뭘 먹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모르겠다.


밥을 또 먹어야 해? 배가 고파지는 게 한없이 성가시다. 한 달에 하루이틀, 구체적인 메뉴가 당기고 식탐이 올라오는 때를 제외하면 늘 그렇다(그 ‘때’라는 것은 호르몬 주기로 정해진다).


이런 지 오래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이제 끼니를 거르면 힘이 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작동을 멈추는 수준이기 때문에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걷기 운동 시작한 김에 식습관도 함께 챙겨 보자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입맛 없어, 귀찮아’를 달고 살 텐가.


배달 플랫폼에서 ’한 그릇‘ 혹은 ’1인분‘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고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먹기 귀찮다며 미루고 미루다가, 거를 수 없는 마지노선에 이르면 가장 쉬운 선택이 배달이었다. 코로나19 때도 잘 쓰지 않던 배달 앱 사용이,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


로직은 이렇다.

1. 밥때를 놓친다.

2. 굶주림의 정도가 심해져 있다.

3. 그제야 뭔가 차려 먹기는 귀찮고,

4. 스트레스받아. 해소해야겠어.


이 단계로 가면 꼭 튀긴 음식, 탄수화물 위주, 매운 음식을 택하게 된다. 가끔 한 번이야 새로운 맛집도 찾고 특식을 즐기는 재미가 있지만, 무얼 향하는지 모를 나의 보복(?) 취식 행태가 내게 이로울 것 같지 않았다. 한쪽으로는 먹기 싫다면서, 반대쪽에서는 최대한 자극적인 것을 취하려는 이 모순은 또 무엇인가.


한때는 집밥 해 먹는 데 재미를 붙인 적도 있다. 집밥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하루치의 용기”​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집밥 에세이를 연재했을 때. 본투비 말라깽이인 내가 먹는 일 자체에 빠지거나 산해진미를 차려 내는 데 욕심이 생긴 건 아니었다. ‘집밥 해 먹기 챌린지’에 도전해서 인증 쌓는 재미를 느낀 쪽에 가깝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 사이클에 들어가 있으면 다음 인증 소재를 구상하게 된다. 운영 십 년 차. 이왕 만든 계정으로 나도 ‘협찬’이나 ‘제품제공’을 노려 볼까 하는 궁리도 했다. 그러면 식비도 줄이고 몇 끼는 메뉴 고민 없이 해결할 테니. 그래서 추첨 형태의 체험단 이벤트에 부지런히 신청하고 선정도 됐다. 일단 당첨 DM이 오면 기쁘다. 기쁜데. 의외의 난감함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내가 원한 적 없는 식품이 냉장고에 쌓여 있다는 부담감.

‘이제 별 게 다 부담이다’ 싶지만, 마음이 그런 걸 어떡해. 신청 시점에는 당연히 관심이 가고 내가 먹을만한 제품을 골라 하는 건데도 그랬다. 실온 보관이나 간식류는 그나마 괜찮은데, 실제 끼니가 될 만한 식품은 이상하게 끌리지가 않았다.


먹고 싶은 건 없다면서 또 주는 대로 먹기는 싫다는 까탈쟁이가 된 기분. 어쨌거나 체험단은 그렇게 접어 둔 상태였고, 마지막으로 받은 말차 소바가 뜯지도 않은 채 찬장에 있었다. 인증이 필수인 이벤트가 아니라서 시식을 미룬 것이다. 대체로 식욕은 없지만 개중 즐기는 게 ‘면식’인데도. 막상 체험 제품을 받고서 ‘내가 말차를 좋아한 적은 없지’ 하면서 발뺌한 내가 우습다.


언젠가 먹어 보긴 해야지, 그래도. 혼자서는 손이 안 가니 손님이라도 초대해야겠다. 별 건 없지만, 대접하는 건데 최대한 보기 좋게 차리자. 조금 구색을 갖춰 사진도 찍어서 집밥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도 하면 좋고.


이런 프로세스였다.

큰맘 먹고 개최한 제1회 [집밥 살롱]은.


말차 소바는 다진 쪽파, 김 가루를 뿌려 찍먹 스타일로 냈다. 장국에 와사비 조금 추가하고, 손님 시원하게 드시라고 얼음도 세 개 띄워 드렸다. 면을 삶아 둥그렇게 말아 담으니 녹색 빛깔이 도는 게 예뻤다. 삶을 때부터 풍기는 말차 향도 기대보다 향긋했다.


이제 부연 설명을 그만할까 싶지만, 그래도 덧붙이자면 손님은 한 명이었고 그게 바로 나.


글쓰기 모임 하랴, 밤산책 클럽 나가랴, 이제 집밥 살롱 개최(및 참석)까지. 요 며칠 스케줄이 정말 바빠졌다.


Seine



사진은 바로 그 말차 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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