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밤산책 클럽
어릴 때부터 ‘난 체육 못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체력장이었던가, 100미터를 22초에 들어온 적도 있다. 순발력이 좋지 않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오래 달리기나 오래 매달리기 같은 종목은 기록이 괜찮았는데도, 100미터 달리는 데 20초를 넘긴 경험 하나로 운동에 대한 선입견을 단단히 품게 된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도 체육에는 좀체 흥미가 없었다.
반면, 앉아서 하는 일에는 관심사가 넓고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한 번 하고 말더라도 도전 시점에는 망설임이 없다. 예를 들면, 어쩌다 뜨개질 한 번 하고 신이 나서 털실을 사고, 서랍에 넣은 후 잊기. 안 입는 티셔츠를 몽땅 잘라 핸드위빙을 해 보더니, 나 너무 감각적인 것 같고, 제대로 해야겠다며 위빙 틀을 사기에 이르러, 이사할 때까지 박스도 뜯지 않기 등.
항상 떠돌기만 하는 건 아니다. 글 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처럼 몇 년째 이어 오는 활동들도 있으니까. 꾸준히는 아니어도 늘 곁에 두려고 한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실내에 앉아서 혼자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취미 유랑자인 나 자신에게 큰 불만은 없다. 하다 말았다는 부채감이 엄습할 때도 있지만, 언제든 다시 하면 그만. 살다 보니 한 길에 뼈를 묻을 사람은 아니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게도 됐다. 어느 날은 ‘와, 나 정말 할 게 많네. 노후 준비가 탄탄해.’라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취미 영역만 말이다.
그런데 가만, 체력이 문제구나,라는 경각심이 든 것이다. 취미 유랑을 계속하려면 이제는,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었다. 더욱이 내가 빠져드는 것들은 몇 시간씩 한 자세로 구부리고 하는 일.
선택 아닌 필수처럼 느껴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해 본 운동이 별로 없어 막막하다. 다른 사람과 한 공간을 나누는 건 아직 피하고 싶고. 물도 무서워, 공도 무서워, 암벽은 더 무서워.
이런 장면들도 뇌리를 스친다. 애리조나 살 때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조깅 하루 나갔다가 고열로 몸져누운 기억. 중학교 때 스키 타다가 슬로프 밖으로 굴러서 구급차에 실린 기억. 친구 따라 스윙 배우러 갔다가 쉴 새 없이 상대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에 신경증이 도진 기억.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단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내 몸이 무엇을 좋아할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핑계가 많다.
이런 고민을 하다 짧은 글 하나를 스레드에 올렸는데, 최근 러닝을 시작한 스친의 댓글이 달렸다. 천천히 걷다가 뛰어 보면 어떻겠냐고. 달리기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아, 그래. 걷기라면 나도! 팬데믹 때 열심히 걸은 기억이 났다. 걷기부터 하면 되지, 무슨 욕심을 부린 건가. 웃음이 났다.
그길로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러닝화를 고르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 이건 너무 비싸. 잠깐, 워킹화가 더 낫나…. 끝이 없구나.
그러다 퍼뜩 드는 생각. 지금 운동화가 중요해? 걷지 않은 이유가 정말 신발이 없어서였어?
그 순간 떠오른 단어가 있었으니, 역시 모임.
내친김에 그날 바로 [밤산책 클럽]에 가입했다. 방식은 저녁 식사 후 자유롭게 동네 산책하기. 주 3회를 목표로 하는 클럽이다. 초보라 아직 뛸 수 없지만, 익숙해지면 조금씩 달려 보고 싶다.
늘 신던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여름 풀 냄새가 좋았다. 러닝이 유행이라더니 천변에 걷고 뛰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다름 아닌 천변 산책로였는데. 오랜만이네. 그렇게 첫날 기념으로 1만 보를 채웠다.
물론, 클럽 회원은 나 한 명인 동시에 내가 창시자.
Seine
사진은 밤산책 클럽 첫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