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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재미있자고 사는 인생

MOI, 모노-롸이팅 이니셔티브

by 세상 사람


두 번째 글쓰기 모임. 카페에 도착해 베이글과 두유 라테를 주문했다. 딴짓하던 버릇이 무섭다. 글 쓰겠다고 앉아 괜히 달력 앱을 켠다. 백수가 정리할 스케줄이 뭐 있다고. 물론 클럽 활동을 네 개나 하느라 바쁜 것은 맞지. 그러다 스레드를 기웃거린다. 이 개미지옥 같은 이야기의 늪이여.


아차 싶어 얼른 펜을 잡는다. 모닝 페이지라도 쓰자. 며칠 머릿속을 떠돌던 ‘결혼’ 키워드로 한 토막의 글도 쓴다. 술술 쓰였지만, 끝내고 나니 분풀이 이상은 아니었다. 기분이 금세 시들해진다.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밀리의 서재를 연다. 궁금한 책을 서재에 담고, 그중 하나를 골라 읽다가 반짝 드는 생각.

‘나도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


얼마 전부터 구상하던 테마는 있다. 바로 ‘혼자력’. 언젠가 스레드에 혼자 제주도 여행한 일화를 쓰다가 만들어낸 말이다. 단조로움의 끝을 달리는 내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끼는 분야다. 시리즈 제목 몇 가지도 메모했는데, “잘 키운 나 하나”가 제일 나아 보인다. 뒤에 ‘열 친구 안 부럽다’가 생략된 말. 너무 본격적인 외톨이 같나? 혼자서만 놀겠다는 선언 같은가? 별로인가. 쓰지 말까.


마음을 못 정해서 일단 덮었다. 꾸준히 쓸 자신이 없어 미뤄 왔는데, 이제는 글쓰기 모임이 있으니 연재 욕구도 되살아나나 보다. 반갑다.




일주일이 흘렀다. 움직이기 싫은 마음과 밖으로 나가고픈 마음이 공존하는 오전이었다. 결국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내가 이겨서 카페로 왔다.


다음에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있겠지만, 요즘 시험공부 중이다. 조경기능사 자격증 시험이 그것. 6월에 충동적으로 신청했는데 며칠 후 필기에 붙었고, 9월 초 실기를 앞두고 있다.


그 사이 밤산책 클럽은 주 3일을 성실히 채웠다. 저녁 먹으러 나가며 미리 운동화에 운동복도 챙겨 입고, 많이 발전했다. 빼먹고 싶은 날도 많았다. 일상 루틴보다 시험이 시급하다는 핑계로. 그러나 리듬이 받쳐 줘야 공부도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게다가 산책하는 공원 길이 곧 학습 현장이다. 나무 몇 종 새로 배웠다고 눈에 띄는 나뭇잎 모양을 살펴보며 수목 감별을 시도한다. 잘 맞추지는 못한다. 그래도 ‘아, 얘는 내가 모르는 나무다.’라고 구분할 수 있게 됐으니, 전보다 성장한 건 맞겠지?


지난주에 시리즈 연재에 착수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당분간 글에 부담 두지 않고 습관화하는 게 좋겠다. 펜 가는 대로 쓰는 동안 어지럽던 시야가 한 꺼풀 걷히는 경험을 한다. 이럴 때 묘한 희열을 느낀다. 나에게조차 숨기던 또 다른 나를 직면할 때.


이로써 글쓰기 모임도 세 번째. 일반명사가 아닌 그럴듯한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며칠 전부터 했다.

그래서 붙인 이름, “Mono-writing Initiative”, 약자로는 MOI. 프랑스어로 ‘나’를 뜻하는 인칭대명사이기도 해서 이렇게 정했다. 내 닉네임 Seine도, 세 번째 기타에게 지어 줬던 이름 Trois도 어쩌다 보니 불어라서. 다 재미있자고 사는 인생, 이런 놀이쯤 내 마음대로 하자.


‘모노’는 홀로 쓰는 글이라는 느낌이 바로 들어 선택했고, ‘이니셔티브’는 혼자 해 보는 시도이자 프로젝트라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 넣었다. 그럴싸하다고 해 줘.


MOI 화이팅. 우리 모임 화이팅. 나도 화이팅이다.


Seine



사진은 느릿느릿 걷다가 눈에 들어온, 수면에 비친 간판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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