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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시험 뒤 찾아온 무기력, 그리고 집밥 살롱의 위안

by 세상 사람


습한 여름밤, 천변을 걸으며 아가미가 생기는 줄 알았다. 조경기능사 공부를 하면서도 밤 산책을 이어 갔다. 공부도, 이 1인 클럽 활동도 어쩌면 도피 수단이었다.


한 번은 음악을 귀에 꽂고 산책했다. 그전까지 오디오북만 들었는데, 처음으로 노래를 들으며 걸은 날이었다.

‘좀 위험한데’ 싶었다. 같은 장소가 다른 공간이 되는, 아니, 장소 따위 없어지는 시간. 너무 좋아서 걸음을 멈추기 싫었다. 몇 킬로 걸었는지는 상관없었다. 아주 오래전에도, 이랬나 보다. 그래서 음악이 하고 싶었다. 도망칠 수 있으니까.


사는 법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도, 맞게 가고 있는지 때때로 두렵다. 내 선택이 잘못됐을 때. 익숙한 삶이 나를 뱉어낼 때. 헤엄을 멈추지 않았는데 죽은 바다생물의 사체처럼 자꾸 뭍으로 밀려 나올 때.


이번에도 그랬다.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도피처가 필요해졌다.


자꾸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이럴 때. 그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떠나야 끝날지, 아니면 벌어진 거리를 다시 좁혀야 끝날지 아직은 모른다.


9월 둘째 주. 그 일주일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시간이었다. 그 기록을 모아 봤다.




9월 7일 일요일.

며칠째 하는 새로운 공상, 제주도에서 살까.


’새 일을 서울 아닌 곳에서 해 봐?‘ 하는 상상. 일을 못 구하면 못 떠날 테니 ‘공상’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미국(애리조나와 노스 캘리포니아)에서 10년을 살았다. 붐비는 도시보다는 한적한 곳들. 서울은 내 고향이고 편리하고 매력적이지만,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9월 8일 월요일.

밤새 제주도의 집과 일자리를 찾았다.


외지고, 숲에 둘러싸여 도보로는 식료품도 살 수 없는 곳을 발견해, 거길 보려고 비행기표까지 끊을 뻔했다. 그러나 곧, 차가운 내가 말한다.


단기로 살면서 차근차근 일 구하고, 직장 근처에 적당한 주거를 구해. 아니면 재택근무를 세팅하든지. 제주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낯선 곳에 혼자 사는 건 괜찮고? 두루두루 여행해 보고, 서울로 돌아와서 일하는 게 맞잖아? 충동적으로 생각하지 마. 합리적으로. 합리.


정말 시끄러웠다.

‘나는 여행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야. 어디든 좋으니 나 좀 살게 내버려둬’라고, 서울이 아닌 거대한 괴물 같은 관념에 대고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요즘 좋게 말하면 자유로이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있지만, 그렇게만 포장하기에는 너무 충동적이다. 열두 번씩 감정이 바뀌고, 순간순간은 위태롭다고도 느낀다.

불편한 시기다.


밤 산책을 나갔다.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내내 느끼며 걸었다. 더 많이 내리면 흠뻑 맞아 볼까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9월 13일 토요일.

조경 시험 끝나고 첫 글쓰기 모임이다.


집을 나설 때마다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 시간을 향한 미련. 거기 붙잡히면 안 되는데, 강제력 없이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 게 매번 어렵다.


다행히 도서관 책을 반납해야 했고, 무릎 치료 받는 병원이 오후 2시까지만 진료라 오전 중에 몸을 움직였다.


무인반납기에 싸 들고 온 책을 넣고 병원으로 갔다. 지난 산책의 무리 탓인지 무릎이 찌릿했다. 다행히 가벼운 염증이었다. 물리치료실 안마베드 위에서 스르륵 빠져드는 낮잠의 맛이란.


그러고 나와 집으로 갈 뻔하다 겨우 카페로 들어왔다. 사람들 사이에 놓인 긴장감. 그게 지금 필요한 처방일지 모른다. 아이패드며 노트, 펜 하나조차 안 가져온 것을 깨달았지만, 글은 머릿속으로라도 쓸 수 있으니까, 하고 커피를 시켰다.


한참 글을 썼다. 쓰고 보니, 집에 가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서기 힘들 때는 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집을 만드는 게 내 다음 할 일인가 보다.




9월 14일 일요일.

어제 카페에서 먹은 샌드위치 이후로 밥을 먹지 않았다.


어지럽다. 안 먹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걸으러 나갈 수가 없고, 나가서 걷지 않으니 입맛이 없고. 악순환. 아침에는 항공권을 예약했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를 뒤늦게 확인하고 취소했다.


다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짐을 꾸렸다. 그대로 소파에 올려 둔 채 서울 근교 호텔을 뒤졌다. 그러다 모든 게 버거워져서 누웠고, 가위눌리며 깼다. 다섯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실기 시험 직후 안 하던 삽질 덕에 온몸이 근육통으로 뻐근했다. 무릎도 안 좋겠다, 밤산책 클럽이며 집밥 살롱도 스킵했다. 붙잡고 집중할 일이 사라져서인지, 멈춰 놨던 감정 침체가 다시 왔다. 하루쯤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겠지. 다음 주부터 걷자. 힘도 없는데 오늘은 계속 자도 되겠지.


그러다가 이렇게 됐다.

그것들이 다 생존 전략이었던 걸 깜빡했다.




이렇게 일주일이 갔다. 시험만 끝나면 여행 가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의욕이 한풀 꺾이고 나니 관광이 내키지 않았다. 여행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필요한가. 글 쓸 장소 탐방이나 누군가를 만난다든가 하는. 목적이 있어야 집을 떠나려나.


명상하던 중에 갑자기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과거의 나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에게 실익이 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나와 보내는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무감. 그런 보상을 줘야 한다는 착각. 나 자체가 보상이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누군가의 존재. 그걸로 되는데. 그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여행도 ‘그냥’은 못 떠나는 건가. 실익과 목적이 보이지 않아서. 책임감을 잊고 싶다. 나도, 그 무엇도, 그저 있고, 펼쳐지고, 오고가게 내버려둘 줄 알고 싶다.


저녁 외출 때 자리 옮기는 길,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을 산책으로 채웠다. 5~6킬로미터씩 걷는 습관이 뱄는지, 지하철 한두 정거장쯤은 조금 걸으면 도착하는 느낌이다. 따로 풍경을 안 찍어서, 전날 옥상에서 본 달 사진으로 대신해 스레드에 인증을 올렸다. 오렌지빛으로 붉게 빛나며 떠오르는 커다란 달이었다.


이 집에 살면서는 늘 이렇게 하늘을 본다. 비 핑계로 여행을 미룬 마음을 그대로 봐주기로 했다. 그래. 뭐든, 내킬 때 하라고.


사진에는 크기가 담기지 않은, 오렌지빛 하현달




이틀을 더 보내고, 네 번째 집밥 살롱을 열었다.

메뉴는 깻잎을 얹은 들기름 명란 파스타.


단골이 반쪽이 된 얼굴로 나타나 한다는 얘기가, 지난주부터 가려던 여행을 계속 실패한다고, 왠지 발이 안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단다.


그래서 이왕 지박령이 된 거면 좋아하는 면이나 한 접시 볶아 드릴 테니 나가서 맥주 한 캔 사 오라고 했다.

“여행은 못 가도 마트는 갈 수 있죠?”

하니까 갈 수 있대서.


헤페바이젠을 사 왔는데 음식과 잘 어울린다. 손님도 유난히 맛있다 하고. 물론 그 손님은 나. 오늘도 나 한 명을 위한 저녁 식사.


다 먹고 나서, 늦은 감이 있었지만, 걸으러 나왔다. 시원해지니 정말 걸을 만하다.


얼마 전 새벽, 벤치에 악기를 들고 나와 앉은 사람을 봤다. 나도 기타 가지고 나올까. 이걸 쓰는 지금 천을 바라보며 앉아 있자니, 아직은 모기가 문다. 아차. 다 늦게 여기서 기타 치며 노래하면 신고당하겠구나. 내가 아무리 모깃소리로 부른다고는 해도.


오늘은 4킬로 산책. 잠깐 벤치에 앉아 쉬는 동안 내일이 됐다.


그래. 분명히 불편한 시기다.

하지만 스스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Seine



첫머리 사진은 그날의 헤페바이젠과 들기름 명란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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