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래는 동박새가 이끄는 데로 동백나무에 달린 붉은 복주머니를 가져왔다. 손바닥으로 받치고 있는 복주머니 안에서 다르륵 다르륵 작은 알갱이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어서 열어봐."
동박새의 재촉에 봄나래가 복주머니 안에 든 것을 손바닥에 조금 쏟았다.
"팥이잖아."
손바닥에 팥을 들고 있는 봄나래를 보며, 동박새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깔깔 웃었다. 봄나래의 심장에 아주 먼 기억 속의 그리움이 밀려왔다.
"너는 나를 알고 있지?"
봄나래가 물었다.
"그럼. 나는 너를 알지."
동박새가 봄나래의 꿈속을 포롱포롱 날아다니며 말했다. 꿈속 배경의 어두운 부분은 동박새가 지나다니는 곳마다 밝아졌다. 동박새가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곳곳을 밝힐 때마다, 봄나래의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점점 넓어졌다.
"나도 너를 알고 있지?"
봄나래가 물었지만 동박새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꿈속에 색채를 불어 넣는 일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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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있을 거야? 감고 있을 거야?"
우림이 짓궂은 표정으로 해율에게 물었다. 해율은 아랫니에 감긴 실을 혀로 건드리며 어색하고 뻣뻣하게 굴었다.
"가므꺼야."
입을 벌리고 말하느라 발음이 줄줄 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우림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눈 꼭 감아. 이제 이 뺀다. 아빠가 셋에 뺄 거야."
우림이 한 손으로 이에 묶인 실을 잡고 해율의 입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해율이 눈을 잔뜩 찡그리며 꼭 감았다. 강은은 휴대폰으로 영상을 녹화 중이었고, 해나는 우림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숫자 센다. 하나, 둘."
우림이 헤아리던 숫자가 둘에 이르자 해나의 야무진 손길이 해율의 이마에 닿았다. 눈을 번쩍 뜬 해율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이마를 부여잡았다. 찡그린 얼굴로 이가 아픈 건지, 이마가 아픈 건지 고민하는 해율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둘이야, 둘."
해율이 억울한지 울먹이자 우림은 재빨리 실 끝에 매달린 유치를 흔들어 보였다. 실에 묶인 채 달랑달랑 거리는 자그마한 치아가 해율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당겼다.
"이거 봐라. 빠졌네."
우림이 능숙하게 해율을 달랬다. 그 바람에 울 타이밍을 놓친 해율이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젖니를 쳐다보며 혀로 빈 잇몸을 슥 훑었다.
"내 거야?"
"그럼. 해율이 거야. 어때? 신기하지?"
우림은 해율이 내민 손 위에 치아를 올려주고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해율은 통통한 손가락으로 뽑힌 치아를 연신 조몰락거렸다.
"이 빠졌으니까 제비한테 던져줘야겠네."
강은의 말에 해나가 꺄르르 웃었다.
"엄마. 헌 이는 까치가 물어가는 거야. 제비는 박씨를 물어다 줘야지."
"그랬나?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우리 딸내미. 엄마 닮았나."
강은이 해나의 양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에이. 방금 당신이 틀렸으니까 해나는 날 닮았지. 그치, 딸?"
우림의 말에 해나가 쪼르르 달려가서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해율은 심각한 표정으로 강은에게 다가오더니 허전한 잇몸을 들이밀었다.
"엄마, 나 이제 구멍 나서 살아?"
아들의 턱과 아랫입술을 잡아 잇몸을 확인한 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 장난 가득한 웃음이 배어 있었지만 알아차리기에 해율은 너무 어렸다. 해율이 다시 울먹이자 강은은 등을 토닥였다.
"지붕 위에 이를 던지면 까치가 새 이를 가져다 줄 거야."
"정말?"
"그럼. 아빠랑 가서 예쁜 새야, 새 이 주세요, 하고 와. 엄마가 팥시루떡 사다줄게."
강은이 말하고서 우림을 바라보았다. 우림은 다정한 눈빛으로 강은을 보고 해나와 해율에게 겉옷을 입혀서 마당으로 나갔다.
휠체어에 앉아 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강은의 얼굴에 겨울햇살이 비스듬히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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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봄날의 떡집' 1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