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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화 Jul 25. 2022

용미포 옛집

1. 용미포에 여름이 오면

 "폐허다."


 진서가 어깨 부근에서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묶었다. 거칠게 움직이는 손길에 막막함이 배어 났다. 머리카락을 걷어낸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와, 생각보다 심각한데? 고칠 수 있나."


 오랜 시간 방치된 옛집은 지난번에 살펴봤을 때보다 을씨년스러웠다. 주인 잃은 살림살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이름 모를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나 마당과 집을 뒤덮었다. 건축이나 리모델링에 문외한인 진서가 보기에도 손 볼 곳이 여러 군데였다.


 장마가 끝난 용미포에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마당에 선 진서는 손 차양으로 얼굴을 가렸다. 비스듬히 생긴 손 그늘 사이로 시간이 고여 있는 집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귀신의 집으로 만드는 건 어때?"


 연우가 툇마루에 서서 풀풀 날리는 먼지를 손으로 휘저었다. 먼지를 피하며 시선을 돌리자 처마 한 켠에 자리한 거미줄에서 거미가 꿈틀거렸다. 흠칫 놀란 연우가 황급히 마당으로 달아났다.


 "무슨 고생을 하려고 그래. 여름이라고. 용미포 햇볕 만만치 않다."


 연우가 옷에 내려앉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지은 지 60년 됐고, 방치된 지 20년이 넘었다는 거잖아?"


 "응."


 "응? 으응? 참 태평하다."


 연우가 고개를 젓고는 진서와 폐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힘으로 고쳐야 물려받을 수 있는 유산이라는 데 어쩌겠어."


 마치 남의 일인 듯 진서는 태연했다.


 "유산이라고 하지마. 너희 할머니 돌아가신 것 같잖아."


 "알았어, 그래. 우리 할머니 얼마나 정정하신데. 가족들이 말리지만 않았으면 직접 와서 집 고치셨을지도 몰라. 으하하."


 진서가 여름 볕을 잔뜩 머금은 채 웃었다.


 "할머니는 왜 그런 조건을 말씀하셨어?"


 옛집을 고쳐서 살 사람은 진서인데 되레 연우가 심란했다. 연우의 눈에는 옛집이 무너지기 직전의 돌무더기로 보였다. 용미포의 여러 빈 집 가운데서도 진서의 옛집이 심각했다. 집이 지어진 지 60년 정도 됐다는데 가까이서 보니 200년은 묵어 보였다.


 "내가 어릴 때 약속했대. 난 하나도 기억이 안 나거든? 근데 내가 이 집을 보면서 그랬다는 거야.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여기 살겠다고. 내가 직접 고쳐서."


 바람이 불어와 마당에 웃자란 풀들이 제멋대로 흔들렸다. 진서는 다리를 간질이는 풀을 양손으로 그러잡고 쑥 뽑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어린 시절 공진서야. 너, 왜 그랬니?"


 연우가 마당에 쭈그려 앉아 정체모를 긴 풀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몰라. 기억 안 나. 할머니가 손녀를 상대로 뻥치신 거 아닌가 싶어."


 "할머니한테 뻥이 뭐냐. 그래서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다고? 공진서가?"


 "어쩌겠어. 우리 할머니 직접 보면 알거야. 내가 왜 말을 잘 듣는지."


 "어휴. 안 뵐란다. 그래도 공사 기간 한달이면 너무 촉박한 거 아니야? 지금 봐서는 일 년도 부족해보여."


 "벌써 업체랑 미팅도 끝났고, 계약도 마쳤어. 구조 변경이나 전기, 보일러 같은 큰 부분은 전문가 손에 맡기려고. 내가 해보려고 했는데 엄두가 안 나더라. 나머지 인테리어 부분만 직접 손 볼거야."


 "인테리어까지 혼자 하는데 한 달이면 된다고?"


 "인테리어는 더 걸릴 수도 있겠지만 한 달 뒤에 사람 살 정도는 되겠지. 미루려면 끝도 없이 미룰까봐 그래. 혹시 공사 기한이 연장되더라도 가능한 빨리 끝내야지. 치울 건 치우고,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리면서."


 "성격 급한 건 알아줘야 돼."


 연우가 옆에 놓인 보냉가방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꺼내 진서에게 건넸다. 투명한 텀블러 안에서 커피의 출렁임을 따라 얼음들이 조각배처럼 떠다녔다.


 "잘 마실게."


 진서가 텀블러를 위로 살짝 들어 보이고 빨대로 커피를 쭉 빨아들였다. 머리가 찌릿하며 열기가 한 김 식었다.


 "맛있다. 이 커피."


 "규인 형님이 바리스타 자격증 있거든. 직접 사왔지."


 "규인 형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


 "응. 규인이 형이 규진이 형네 맏이야. 큰 형. 그 집이 아들만 셋인데 둘째 형님은 어디 외국 계실 걸."


 "규진이 형이면 선배한테 식당 넘겨주신 분, 맞지? 그분은 30대 후반 아니야?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랑 나이 차가 많이 나 보이는데?"


 "규진이 형이 엄청 늦둥이라서 그래. 그 형 봐라. 얼굴에 사랑 많이 받고 자랐어요, 써 있잖아."


 진서가 오래 전에 만난 적 있는 규진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때 규진에게서 사랑받고 자란 막내 아들같은 인상을 받았었다. 아까 짐을 두고 오다가 잠깐 만난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과는 전혀 닮은 느낌이 없었다.


 "어쨌든 너도 거기 머물면서 커피에 더 빠질걸?"


 "그래? 잘 됐네."


 진서가 얼음을 와그작 씹었다.


 "근데 갑자기 왜 독립이야? 천년만년 부모님이랑 살 것 같더니."


 연우의 물음에 얼음을 삼킨 진서가 얼얼한 입을 움직였다.


 "얼마전에 아파트 반장님이라는 분이 서명 받는다고 집에 오셨단 말이야? 마침 그때 나만 집에 있었고. 반장님이 묻더라. '집에 어른 계세요?' 하면서."


 연우가 계속 얘기해보라는 눈짓을 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내가 뭐랬는지 알아? '어른 안 계세요' 이랬어. 자연스럽게."


 "그게 왜?"


 "이상하지 않아? 서른 셋인데, 내가 어른이지. 어른이 안 계신다는 대답이 웃기잖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계속 생각이 나는 거야. 어이가 없어 가지고. 그래서 독립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입 안에서 얼음을 오물오물 녹이던 연우가 황당하다는 눈길로 진서를 바라보았다.


 "넌 아냐? 네가 한 번씩 뜬금없는 거?"


 연우의 말에 진서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스무 살 언저리에 머무는 느낌인 거야. 열 아홉에서 스무 살 됐을 때, 어른이라고 하니까 어른이구나 한 것처럼. 서른 줄에 들어섰는데도 내가 어른이 맞나 싶다니까. 회사를 몇 년이나 다니면 뭐해. 집에서는 어른 없다는 대답이나 하고 있는데."


 진서가 텀블러를 들어 정수리에 얹었다. 찬 기운이 머리를 타고 내려왔다.


 "선배는 일찍부터 독립해서 잘 모르겠지만 난 지금껏 부모님이랑 살았잖아. 혼자 살림을 꾸려봐야 어른 되는 것 같아. 독립해서 사는 친구들도 어른 같고, 부모된 친구들은 당연히 왕어른 같아. 나만 아직 애 같아. 팔자주름은 날로 깊어 가는데."


 진서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뱉았다. 용미포의 맑은 공기가 콧속에 쌓인 옛집의 먼지를 털어내는 듯했다.


 "독립, 그거 생각보다 별론데."


 연우의 대답이 은근히 쓸쓸했다. 진서는 뜨끔하여 일부러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맞다. 선배는 꿈이 남편이자 아빠 되는 거였지?"


 진서는 연우가 대학생 때부터 습관처럼 내뱉던 장래희망을 떠올렸다. 아직 이루지 못한 연우의 꿈이 진서는 여전히 신기했다. 남편과 아빠라는 꿈은 살면서 처음 듣는 장래 희망이었다. 소박하지만 대단한 꿈처럼 들렸다.


 결혼에 대한 욕심에 비해 아직 짝을 못 만난 선배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거운데 선배는 그런 시간이 싫단다. 혼자 있어도 할 일은 많고, 즐길 거리도 넘치는데. 무엇보다 사람은 누가 곁에 있더라도 외롭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그래도 외롭다는 타령은 사절."


 진서가 양손을 교차시켜 엑스자를 만들었다가 풀었다.


 "타령 아니고 진심.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쓸쓸한 줄 알아? 불 꺼진 집에 들어갔는데 온기라고는 없고 텅 빈 느낌."


 "문명을 활용해. 요즘 스마트폰으로 다 하잖아. 미리 불도 켤 수 있고. 온기가 없기는. 보일러는 뒀다 뭐합니까?"


 "그거랑 다르다고. 공허하달까? 뭔가 쓸쓸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집에 늘 사람이 있나. 누가 매일 집에서 선배를 기다려줄 수는 없잖아."


 "내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포함 해야지. 같이 사는 사람한테 언제 들어오냐고, 내가 물을 수도 있게. 그 사람이 올 동안 내가 집안에 온기를 불어 넣어두면 되니까."


 연우가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몹시 낭만적이십니다."


 진서가 놀리듯 어깨를 으쓱으쓱했다.


 "내 로망이야. 내가 기다리던, 누군가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 같이 사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온기가 있어. 넌 가족들이랑 살아서 그런 온기가 익숙하겠지만 아마 독립해서 혼자 살면 금방 알 걸? 내 말이 무슨 말인지."


 "그러려나? 어쨌든 지금은 그냥 좋아. 독립한다는 사실이."


 "한창 독립의 꿈에 부풀어 좋을 때지. 혹시 아냐. 이번 독립이 너의 연애에 도움이 될지? 용미포가 작아 보여도 은근히 사람 많이 와. 요즘은 우리 또래도 많이 오고."


 "연애 안 해도 잘만 살고 있네요. 게스트 하우스 대충 둘러봤는데 좋더라. 사장님도 좋으시고."


 "오. 말 돌리는데? 누누이 말했지만 결혼은 내가 먼저 할 거다. 축의금 준비해두라고."


 깐족거리는 연우를 진서가 가볍게 흘겼다. 연우는 진서의 눈 흘김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규인 형님이 워낙 성격이 좋으셔. 사장님 좋지, 시설 좋지, 집 가깝지, 이런 게스트 하우스 구하기 쉽지 않아. 게다가 장기숙박한다고 할인도 받았잖아? 맙지? 고마우면 밥 사."


 "셰프님께서 밥 해주는 게 아니라? 파밀리에 안 가?"


 진서가 아쉬운 티를 팍팍냈다.


 "아무리 요리가 즐거워도 네가 사주는 밥 먹어야지. 밥 사. 나도 외식하게."


 연우가 빈 텀블러를 달라며 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케이. 술도 산다."


 진서가 텀블러를 건네고 나른한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너 무르기 없다."


 "알았거든. 영상제작자는 언제 만날 수 있어?"


 "5시까지 오기로 했는데."


 연우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54분에서 55분으로 숫자가 바뀌고 있었다.


 "5분전. 올 때가 됐는데. 스튜디오가 여기서 가깝거든. 파밀리에 옆이야."


 연우의 뒷말과 맞물려 진서의 시야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차분한 걸음걸이가 싱그러운 용미포의 여름에 결코 물들지 않을 것처럼 꽤나 고고했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보다 동안이었으나 분위기는 아름드리 나무 같았다.


 "저 분인가?"


 진서의 말에 시선을 돌린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손을 흔들었다.


 "쭌! 시간 딱 맞춰 왔네."


 연우가 이준을 반겼다. 어째 그 모습이 발랄한 강아지와 차분한 고양이 같아서 진서가 작게 웃었다.


 "여기는 내 대학 후배 공진서, 여기는 용미포에서 알게 된 동생 천이준. 둘이 잘 얘기해봐. 난 먼저 간다."


 연우가 보냉가방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이준에게 쥐어 주었다.


 "오늘 파밀리에 쉬는 날이잖아. 저녁 사라는 거 아니었어?"


 당연히 셋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진서였지만 연우는 보냉가방의 지퍼를 채웠다.


 "다음에. 오늘은 물건 받을 거 있어서. 간다."


 연우가 보냉가방을 챙겨들고 두 사람에게 손을 휘휘 젓더니 서둘러 마당을 벗어났다. 연우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진서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안녕하세요. 공진서예요."


 아직 옛집의 정식 주인은 아니었지만 주인 비슷한 역할이기에 진서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천이준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품고 있는 열매 같은 목소리였다. 지니고 있는 분위기와 목소리가 일부러 끼워 맞춘 것처럼 어울렸다.


 "일단 집 먼저 둘러 보실래요? 안에는 바깥보다 더 엉망이에요. 먼지도 많고."


 "그러죠."


 진서가 연우를 안내하여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옛집이라서 천장이 낮아요. 머리 조심하세요."


 "네."


 이준이 머리를 숙이며 거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적당히 말을 주고받으며 차례차례 집 안을 둘러보았다.


 옛집의 구조는 간단했다. 툇마루에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나란히 붙은 중간방과 작은방이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거실, 주방, 화장실, 큰방이었다. 한옥과 양옥의 건축 양식이 교묘히 섞인 집이었다.


 진서가 좋아하는 곳은 툇마루였다. 툇마루가 집의 앞, 뒤로 두 곳이나 있었다.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이라 어색하면서도 독특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준비하는 공간 같았다.


 툇마루를 내려와 앞마당에 선 이준은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일단 전체적으로 담아볼게요."


 이준이 카메라를 들어 옛집을 담았다. 진서가 흘깃 이준의 옆모습을 살폈다. 카메라를 든 모습이 한껏 진지했다. 바람이 불어와 이준의 검은 머리카락을 장난스레 들썩였고, 기다란 속눈썹을 타고 오뚝한 콧날을 지났다. 이준의 매끄러운 입술과 부드러운 턱선을 훑은 바람은 질끈 동여맨 진서의 머리칼도 흔들었다.


 찰나의 시선을 거둔 진서가 옛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마을의 당산나무와 멀리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 풍경의 끝에 담긴 용미산까지. 이제야 온전한 용미포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그런 풍경 안에 이준이 있었다. 이준은 의외로 오래전부터 옛집에 안긴 사람인 듯 어우러졌다. 진서보다 더 집주인 같았다.


 짧은 촬영을 끝낸 이준이 진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서가 이준에게 다가가며 카메라를 가리켰다.


 "보여줄 수 있어요?"


 "네."


 이준이 간단히 답하고 카메라를 조작해서 영상을 틀어주었다. 영상에서는 방금 전 진서가 봤던 모습과 비슷하지만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오후의 햇살과 어우러진 영상 속 옛집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사라지고 그리움이 묻어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청춘을 담아 지은 옛집에서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이모, 삼촌들이 뛰어놀았을 시간들. 얼굴도 모르는 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어딘가에 남겼을 손길들. 그때는 현재였을 시간이 지금은 과거의 추억으로 쌓인 장소에서 진서는 경험하지도 않은 지난날이 괜스레 아려 왔다.


 "영상으로 보니까 왜 아름답게 나오는 거죠?"


 진서가 시큰한 코끝을 만지작거렸다.


 "렌즈는 거짓말 안 해요."


 이준이 카메라를 손에 단단히 쥐었다.


 "이러면 좀 억울할 것 같은데. 더 험난하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앞으로 고생할 게 뻔하니까 고생담도 팍팍 담아서. 하, 근데 왜 예쁘지? 분명 심란한 집인데."


 진서의 넋두리 같은 혼잣말에 이준이 피식 웃었다. 집과 주인이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아직은 애매했다. 그 사이에서 나오는 묘한 충돌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간에 살짝 인상을 쓰고 눈에는 황홀함을 담은 진서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머릿속에서 모처럼 생각이 자유롭게 떠올랐다.


 "공사 일정 맞춰서 영상 찍으면 되겠어요. 이미 잡힌 웨딩촬영 외에 다른 예약은 잡지 않을게요."


 "하시는 거예요? 정말?"


 보름달처럼 커졌던 진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이준은 진서의 풍부한 표정이 재미있었다. 연우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생활에 찌든 직장인이라던데. 더위에 다소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이따금씩 드러나는 맑은 표정이 있었다. 형태를 명확히 포착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스치기도 했고. 어떤 이유로 용미포에 온 걸까? 이준은 문득 궁금했다.


 "네. 할게요. 다큐에 리모델링 과정 뿐만 아니라 진서씨도 나와야 할텐데, 괜찮아요?"


 "그럼요. 저도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하겠다고 한거예요. 근데 유튜브도 해보려는데 다큐 촬영에 방해되나요?"


 "괜찮아요. 그것도 다큐에 담아 볼게요. 너무 인위적이지만 않다면."


 진서와 이준은 옛집 리모델링 계획을 살피며 촬영 일정을 조율했다.


 그 사이, 주황빛부터 푸른빛까지 다채롭게 일렁이는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용미포 앞바다의 파도소리도 옛집까지 잔잔히 밀려 들어왔다.


 "아악! 벌레!"


 진서가 와락 소리를 지르며 팔을 털었다. 반팔 소매에 붙은 나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서가 팔을 휘저으며 마당을 방방 뛰었다.


 "날아가! 좀! 으악!"


 놀랐던 이준은 상황을 파악하고 엷게 웃었다. 아무래도 집과 주인이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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