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나와 함께하는 법을 배우다
이 글은 제주 한달살이 하면서 비 오는 날 유독 고립되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던 순간에 쓴 글이다.
제주살이 11일차. 한적한 카페 창가에 앉아, 다 식어가는 아메리카노를 옆에 두고 노트북을 펼쳤다. 쏟아지는 빗소리 속에서 문득 떠오른 감정들과 생각들을 쏟아내듯 기록했던 그 날. 지금 돌이켜보니, 그 순간의 저를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제주에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열흘을 넘겼다.
슬슬 이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기를 달고 다니는 바람에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혼자서 생각의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뭘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오다니. 이곳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는 31살이 되도록 부모님과 함께 살며 독립을 해본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세탁기를 돌릴 줄도 모르고, 밥솥에 밥 얹는 것도 손에 꼽을 만큼 해봤다. 그저 설거지와 청소기 돌리기 정도를 했을 뿐인데, 나름 살림왕이 된 줄 알았던 내 자신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혼자 사는 일이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맞추기 어려운 대상이 나 스스로라니! 메뉴 하나를 정하는 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문득 깨달았다. 평소에 나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는 걸.
내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31년을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해야 할 나 자신인데 말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우산이 필요 없을 만큼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어디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마침 숙소 근처에는 카페와 펍, 요가 스튜디오 같은 곳들이 많아 비 오는 날의 계획을 세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침 오늘은 전날 예약해 둔 1일 요가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었다.
요가복을 바리바리 챙겨왔는데 드디어 11일 만에 드레스 코드가 빛을 발했다. 비 덕분인지 요가실은 더 운치 있었다. 수강생은 나 포함 두 명뿐. 2만 5천 원으로 이런 프라이빗한 수업이라니, 제주살이의 특권 아닌가!
요가 매트에 누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에게 더 친절해지세요.”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닿았는지 모른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덕분에, 나는 내가 얼마나 나에게 엄격했는지 알게 됐다.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하고, 그걸 잘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는 걸.
비가 내렸던 그날은 단순히 바깥세상을 멈춘 게 아니었다.
내 안의 복잡했던 생각들도 차분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멈춰도 괜찮고, 쉬어도 괜찮다는 걸, 이 비가 내게 가르쳐준 것 같았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혹시 오늘도 스스로를 너무 밀어붙이고 있지는 않나요?
저처럼 빗소리 들으며,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한 하루를 보내보세요. 언제나처럼,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