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는 시간을 ’사치‘라고 느끼지 않는 것
제주 한 달 살이를 결심한 것은 나에게 큰 용기였다.
누군가는 여행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틀 전부터 손이 차갑고 심장이 쿵쾅댈 정도로 긴장을 했었다. 맛집을 몇 개 즐겨찾기만 해두고,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던져보고 싶었다. 겁이 난다는 사람 치고는 발칙한 생각이었다.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을 때, 머릿속에서는 "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떨리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긴장되는 그 기분 말이죠. 저는 그랬습니다. 작은 결정이었지만, 그 시작이 삶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죠.
하지만, 내 삶의 굴곡을 제대로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굴곡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달고 쓰고 시고 짜고 싱거운 순간들. 그 모든 것을 다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여행이 아니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외로움과 불안, 반짝이는 포부, 그리고 숨겨두었던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그 안에는 내가 피하고 싶었던 감정도, 내가 스스로 힘이 되어준 기억도 있었다.
"내가 나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누군가에게만 기대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느끼시나요? 저 역시 그렇게 믿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으며 깨달은 건, 내가 나에게 힘이 되어줄 때 삶이 조금 더 견딜 만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배운 건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준비해둔 반찬과 찌개의 소중함, 살림이라는 게 설거지 몇 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주체적으로 시간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 모든 것을 경험하며 알게 된 작은 깨달음들이었습니다.
제주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멍때리는 시간을 사치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여러분도 이런 적이 있나요? 잠시 쉬고 싶은데, 쉬는 시간이 불안하게 느껴졌던 경험. 저는 매 순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내려놓고 쉬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도 괜찮다는 걸, 머릿속과 마음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대를 꽉 채워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다 안다고 말이죠. 이제는 경험을 토대로 빌드업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30대가 된 나는 아직 애송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지 않다.
혹시 이 글을 여러분도 같은 애송이라고 느끼시나요? 어떠신가요?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점을 찍어가며, 선을 만들어가는 중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