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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조용한 사치, 그리고 나를 받아들인 시간

흐린 날, 공간과 공기가 만들어준 깨달음의 순간들

by 포코아

오늘처럼 흐린 날엔 조용하고 사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제주의 어느 작은 카페,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차분한 공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 이곳은 딱 그런 날을 위한 자리 같았어요. 좋은 공간 덕일까요? 편안한 음악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여행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주는 묘한 감정 때문일까요?


그렇게 아무 단어나 문장을 가지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에서 흘러가버릴 뻔한 감정들이 하나씩 기록으로 남기며 제 자리를 찾았어요. 그러다 문득 코끝이 찡해졌어요. “와… 나 뭐야? 왜 이렇게 주책이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이상하게 붙임성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사장님께 말차라떼가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씀드렸죠. 서울에 있을 땐 그렇게까지 친근하게 대화를 걸지 않았을 텐데, 제주에서는 괜히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은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너무 맛있어요.” 짧은 한 마디였지만, 이 공간과 음악, 그리고 공기에 대한 제 모든 감사를 담고 싶었거든요. 말차라떼가 진하고 달지 않은 제 취향이라 더더욱요.




제주 한 달 살기가 익숙해진 4주 차 첫 월요일, 이제 이 시간을 잘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가기 전에 꼭 감사한 마음으로, 내 호흡으로 이 시간을 채우고 싶었어요. 억지로 무언가를 깨닫거나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제주라는 공간과 공기, 그리고 그 순간들이 저를 깨닫는 모먼트로 만들어줬어요.

사실 가끔은 제가 가진 방향성이 진부하고, 뭔가 질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주하기 싫었던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제주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기회였어요.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원하고,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는 시간들이었죠. 그건 여행이 아니었다면 쉽게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오늘도 흘러가지만, 제주의 공기와 공간은 여전히 특별했어요. 사실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계속 오는 것도 아니고, 하루하루 특별할 필요도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제가 느끼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고마웠어요.


흐린 날의 말차라떼 한 잔처럼, 작은 것들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잖아요. 여러분도 가끔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그 답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소박한 순간들 속에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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