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을 지켜주길 바랍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한밤중도, 그렇다고 새벽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다시 잠을 청하자니 늦었고 일어나자니 너무 일렀다. 환장할 노릇인 이 상황은 요즘 나의 삶과 비슷했다. 이러자니 저게 문제고, 저러자니 이게 문제였다. 핑계가 많은 인생인 것 같기도 하고 핑계에 다 이유가 있으니 핑계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한심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의식의 흐름과 생각이 이렇게 맥락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문득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겨를도 없이 찾아온 강렬한 생각이었다. 이대로 잠을 청하기엔 시간이,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하여 다시 나는 무엇이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마음은 처음 먹은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강렬한 마음으로 일 년 가까이 쓴 글을 모아 지난해 첫 책을 출간하고 다섯 달쯤 지났다. 내 인생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 같기도 한 꿈같은 시간이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나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고, 글쓰기만이 나를 지키고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쓰기 시작하고, 쓴 글들을 모았다. 모아 놓고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생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나를 지켜준 이야기, 나를 지켜준 단어들이었다. 이 글들을 모아 학창 시절처럼 항상 들고 다니며 꺼내 보는 단어장을 만들기로 했다. 단어장처럼 마음에 지니고 한밤중도 새벽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에 깨어나도 당황하지 않을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힘들 때마다 꺼내 보며 이대로 잠을 청할지, 벌떡 일어나 조금 이른 하루를 시작할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삶의 주체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단어장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은 이 단어, 내일은 저 단어가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말을 걸고, 지켜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