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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pr 11. 2021

안부

매일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공항이 텅텅 빈지도 일 년이 넘었다. 공항철도로 출퇴근을 하는 나는 해외에서 오는 사람도,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언제나 앉아서 갈 수 있는 한적한 출퇴근길, 늘 수화물 스티커가 붙은 캐리어로 발 디딜 틈 없었던 지하철 안에서 여행의 설렘은 사라졌지만 통근길 피로도가 현격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마치 코로나로 지구가 쉬니 미세먼지 없는 하늘만큼은 좋은 것처럼.


국내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한 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는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공항철도로 출퇴근을 하는 딸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만 해도 공항철도는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했고, 마스크를 쓴 사람이 드문 드문 보이는 정도였다.


"마스크 잘 쓰고 다녀, 손 잘 씻고. 지하철 손잡이 같은 거 잡지 말고."

"어, 알았어."


매일매일 오는 엄마의 안부 전화에 건성으로 대답한 지 2주쯤 지났을 때, 31번 환자를 기점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공항철도에는 여행객들이 많을 때였는데, 관광객이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외국인들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출퇴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이었다.


공항철도 출퇴근을 하는 직원들로 회사는 더 큰 문제였다. 비상대책반이 꾸려지고 평생 없을 줄 알았던 재택근무와 분산근무 제도를 급하게 시행했다. 매일 발열 체크를 하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 팀이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전담 부서가 되면서 불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여기저기 확진자가 한 명씩 나와서 폐쇄되는 사업장이나 기업이 늘어가면서, 혹시라도 사내 확진자가 나올까 봐 노심초사하며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너 공항철도 매일 타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불안하다, 손 꼭 깨끗이 씻고 마스크 잘 써, 돌아다니지 말고."


늘 똑같았던 엄마의 안부 전화였는데. 그날따라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엄마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는다고, 나도 불안해 죽겠다고, 회사도 뉴스도 다 코로나 얘기밖에 안 하는데 이제 그만 얘기하라고.



다음 주면 괜찮겠지, 그다음 주면 괜찮겠지, 하는 사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것 같다. 버럭 화를 내고 나서도 며칠 동안 별 생각이 없었다. 온통 코로나 이야기뿐인 세상 속에서 홀로 무기력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도 무기력한 퇴근길, 외국인이나 여행객은 찾아볼 수 없는 한산한 공항철도에 앉아 아이폰 메모장을 열었다. 글감을 정리해둔 메모들을 읽다가 '희망을 갖는 이유'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일 년 전쯤 황정은 작가의 북 토크 때 인상 깊어 메모해 둔 글이었다.





북 토크 진행자였던 평론가가 물었다. 소설 속 무수한 비관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이 희망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황정은 작가는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출퇴근 길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요.





스마트폰 화면이 흐려지며 왈칵 눈물이 났다. 매일매일 내 출퇴근 길이 신경이 쓰이는 한 사람. 그 사람에게 버럭 화를 내고 며칠쯤 전화가 없었다. 분명 내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 말에 더 스트레스 받는다는 모진 소리에 하고 싶은 전화를 참고 있을 사람.


공항철도에서 내려 긴 출구를 걸어가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만이었다.


"어디야?"

"지하철 내렸어."

"공항철도 운행 중단한다는데 출퇴근 어떻게 해?"

"운행 중단?"


처음 듣는 소리였다. 엄마와 통화 중인 상태로 포탈 검색창에 공항철도 운행 중단을 검색하니,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던 직통 열차가 해외 여행객 급감으로 잠정 운행 중단한다는 기사가 떴다. 내가 타는 열차는 직통 열차가 아니라 일반 열차다.


직통 열차와 일반 열차의 차이를 잘 모르는 엄마는 기사를 보자마자 공항철도로 출근하는 딸이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전화를 걸며 잠시, 엄마 말에 더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이 떠올라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걸고 안부를 묻는다.


나는 눈물을 꾹 참고 담담한 목소리로 직통 열차와 일반 열차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엄마는 안심하며, 힘들어도 당분간 조심히 다녀,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매일매일 딸의 안부를 묻는 것은 엄마에게 어떤 의미일까. 매일매일의 출퇴근 길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것은 책임감일까, 사랑일까, 걱정일까, 기쁨일까. 알 수 없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엄마의 희망이라면, 매일매일 안부를 묻는 전화에 좀 더 다정한 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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