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Apr 03. 2021

부자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던 주식 계좌를 다시 열었다. 주식 계좌 잔고에는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나는 종목이 수십 퍼센트 마이너스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코스피는 코로나19 이후 최저점인 15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코스피가 최저점을 찍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로나19로 경제 활동이 마비되고 전염병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 집 앞, 회사 앞까지 다가오는 듯했던 무렵이었다. 한 임원분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회사 주식을 사라고 했다. 우리 회사 주식도 당연히 코스피만큼 폭락한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그런 가격은 다시 오지 않을 바겐 세일이었다. 물론 그 무렵 대부분의 주식 가격이 그랬다. 요즘도 그 점심식사 자리에 있었던 직원들과 가끔씩 그때 그 임원분의 말을 들었더라면 큰 돈을 벌었을 거라는 결과론적인 (그러니까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때 샀더라면 조만간 50%의 수익률에 육박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3월 말을 기점으로 다시 주식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는 과정을 보며, '그때 샀더라면'을 하루에 한 번씩 되뇐다. 그러면서 다시 재테크와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급 정보를 너무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무서운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나를 경제 공부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부자 되는 법', '돈의 속성', '이런 주식은 필승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것부터 없애세요', '테슬라 주식 지금 사도 될까요' 같은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매일 아침 경제 뉴스와 주식 시황을 보고,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경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묻지 마 투자보다는 천천히 꾸준히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늘 내가 사면 떨어지고 내가 팔면 오르는 루틴 속 개미였던 나에겐 장족의 발전이었다. 엄청난 수익률은 아니지만 조금씩 공부하며 사모으고 있는 주식 대부분이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없다.


유명 경제 유튜버의 채널에 여성 재테크 전문가가 출연한 영상을 보던 어느 날이었다. 예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이분의 저서를 읽은 적이 있어 영상의 썸네일에 눈이 갔다. 동학개미운동에 참여하며 '돈'이나 '부자' 같은 단어에 심취해 있던 때였는데, 출연자가 이런 말을 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가장 먼저 나는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해야 해요.
 이 결심을 하려면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라니,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나? 당연한 거 아니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분은 본인의 힘겨웠던 유년 시절과 가정 환경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가난에서 벗어나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소박하게만 들리는 유명 재테크 전문가의 이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부자가 되기 위한 첫 단계인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 그 이유는 부자 되기 알고리즘 속 경제 유튜브 영상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속에 있다. '시상식과 상금'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 수상을 하여 백만 원의 상금을 받은 이슬아 작가는 그 돈으로 이 위험천만하고도 황홀한 세상에 나를 낳은 엄마와 아빠에게 커플 속옷 등을 사주고 남은 돈으로 엄마와 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한다. 


엄마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면서 나는 돈이  몹시 좋다고 느꼈다. 엄마에게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니 돈이란 정말이지 근사한 것이었다. 엄마가 나를 돌보아야 할 때는 이미 다 지나가 버렸고, 나는 아직 엄마를 돌볼 필요가 없었다. 엄마는 이제 마흔여덟이었고 나는 스물셋이었고 2014년이 시작되고 있었다.


-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중에서



나 역시도 최근에 돈을 써서 제일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태어난 지 이제 150일이 조금 넘은 조카에게 베이비 체어를 사준 일이다. 가격이 50만 원에 육박하여 무슨 의자가 50만 원이야 할 순 있지만 지금 나이부터 초등학교 가도 쓸 수 있는 궁극의 육아템이다. 어린이처럼 안정감 있는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인생 157일 차 조카를 보니 '돈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좋음이 탐욕이나 욕망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좋은 것,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이 좋았다. 육아를 하는 동생에게는 조카가 의자에 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


요즘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있는 엄마는 곧 함께 배우는 분들과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며 그림의 제목을 지어달라고 했다. 엄마는 보통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데, 전시회에 내려고 하는 작품을 보니 내가 몇 년 전쯤 갔던 프랑스 '몽 생 미셸'을 그린 그림이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몽 생 미셸이네. 나 여기 가봤는데"

"어느 나라야?"

"프랑스"

"그럼 그림 제목 몽 생 미셸로 할까?"

"응. 발음도 예쁘니까."

"그림 어때?"

"잘 그렸네 ㅎㅎ"

"실물을 보고 그려야 되는데."

"어. 여기 사진 찍고 그림 그리러 오는 사람 많데.  

 코로나 끝나면 갈 수 있어."

"언제 갈 수 있겠나."

"내년엔 갈 수 있지."





내년쯤엔 코로나 백신 효과도 나오고 경제도 살아나고 주식도 오르고 그래서 돈도 벌고 해외 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꼭 엄마랑 몽 생 미셸에 다시 가야지. 몽 생 미셸의 실물을 보며 엄마는 다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오래도록 너무 아름다웠던 몽 생 미셸을 바라보고 싶다. 푸른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그 너머의 몽 생 미셸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엄마가 그린 그림 속에, 엄마에게 선물한 시간 속에 있고 싶다.


엄마가 그린 ‘몽 생 미셸’









이전 01화 나를 지키는 단어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