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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Jun 24. 2019

꼰대 꿈나무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기분

입사 10주년을 앞두고 찾아온 5춘기



얼마 전 회사에서 교육을 받는데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께서, 백세 시대 대한민국의 비극은 대부분의 대기업 시니어 매니저들의 주 업무가 '부하직원들이 한 일을 취합하여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인데, 이 업무는 '대기업'이라는 테두리 밖에서는 전혀 쓸 데가 없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이 시니어 매니저들이 60살이 되기 전에 퇴직을 하여 여든 살쯤 죽었던 시절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이제 퇴직 후 인생의 절반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비극이라고 말씀하셨다.


잔인한 듯 들렸지만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였다. 실제로 그 교수님은 이 시니어 매니저들을 어떻게 다시 경제 활동이 가능한 생산 인구로 편입시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하고 계셨다.


실제로 요즘 회사에서 나 역시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예전엔 퇴직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여행도 다니시며 좀 쉬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었는데. 요즘 임금 피크제를 앞두고 퇴직하시는 부장님, 팀장님, 차장님들을 보면 오늘까지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내일부터 자연인(?)이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직 너무 젊고 지금 다시 무언가를 새롭게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나이였다.


주 5일 근무 안해도 되는 삶을 갑작스럽게 맞이한다면.



퇴직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노후 준비를 잘해두었다 해도, 노'후'라고 하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나 길다. 전반전만큼 더 뛰어야 할 후반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런 작전도 전략도 없이 후반전의 필드에 올라야 하다니, 정말 암담한 일이다.





직장 생활 10주년을 앞두고 자꾸만 초조해지는 것은 그 교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이 회사의 테두리 밖에서도 의미 있는 일인가, 하는 고민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연차나 직급의 상승이 실력의 상승은 아니다. 그 실력이라는 것도 이 조직에서만 유효한 능력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주에도 회사에서 매우 분노(? 하아... 분노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할 일이 있었는데, 전사 워크숍을 앞두고 밀려오는 문서 작업 때문이었다. 우선 하고 있는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해서 후배에게 초안을 만들어 보라고 설명하는데, 내가 말하면서도 뭔 소리지? 싶어 영혼이 털리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없어 일단 "우선 써봐" 라고 하는데 아, 이런 말을 하다니 꼰대 꿈나무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기분이었다.


어찌어찌하여 금요일 오후 5시가 다 되어 후배가 써놓은 PPT를 열고 수정해 보려는데 내 뒤통수로, 바쁜 걸 아니까 재촉은 못하는 팀장님의 얼굴과, 괜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죄 없는 후배의 얼굴이 안 봐도 보이면서 갑자기 유독 정신없었던 일주일의 누적된 울분이 폭발하며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울 시간은 없었다.


눈물을 참고 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1. 지금 이 PPT를 작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없다.

2. 그럼 왜 하는가? 팀장님이 본인의 발표 자료를 파트별로 작성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3. 팀장님은 왜 이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가? 본부장님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4. 본부장님은 왜 발표를 시켰는가? 본인이 사장님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5. 그럼 최종적으로 사장님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6.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기보다는, 사장님이 임원들이 업무 파악을 잘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그냥 사장님과 본부장님 둘이 해결하면 될 일 아닌가?



먹이 사슬도 아니고 질문의 사슬?

그 끝에서 결국 나는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졌고, 갑자기 분노에 차서 팀장님에게 이 자료를 대체 왜 만들어야 되느냐고 질문하고야 말았다.


금요일 오후 5시.


그냥 빨리, 조용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충 만들어 던지고 컴퓨터를 끄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모름지기 '안 해도 될 일'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팀장님은 한 숨을 쉬며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나는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게, '필요 없는 일'을 하는 게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근 10년 간 '안 해도 될 일'을 해 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답을 내놓았다.


필요 없는 게 아니야.
소모되는 일일 뿐이야.



이 말을 하는 팀장님의 얼굴이 정말 소모되어 없어질 것 같은 표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고 PPT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PPT 만들기, 마음만 먹으면, 내가 발표할 것도 아닌데 대충 만들지 뭐, 영혼 없이 하면 30분이면 만들 수 있었다.


팀장님은 사원도 아닌 과장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당황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


너 갑자기 왜 이래? 밀레니얼 세대처럼?

'일의 의미'가 중요하고, '왜 하는지'를 알아야 동기 부여가 된다는 90년대 생이면 모를까, 넌 80년대 생이자나?


영문을 모르겠는 건 내가 아니라 팀장님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갑자기 뭐가 그렇게 억울했을까.

밀레니얼 세대만 일의 의미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밀레니얼 세대도 언젠가 과장이 되는 게 아닌가요?


외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렇게 꼰대 꿈나무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는 걸까?


소모되는 일을 소모적으로 수행하며,

영혼은 내려놓고 참고 견디며.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니까 월급을 받는 것이 직장 생활이라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입사 10주년을 앞두고 이렇게 인생의 5춘기처럼 방황하는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또 괴롭게 돌이켜 보기도 하며 깨달은 것은,


나는 유행처럼 '퇴사'하고 일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퇴사의 순간을 꿈꾸며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진짜 원하는 것은 '퇴사'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는 무엇일까? 더 가슴이 뛰는 일,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의 힘듦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혼 없이 일하고 싶었는데 사실은 영혼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근력 운동은 질색이지만, 마음의 근육은 어떻게 해서든 키우고 싶었다. 근성과 의지를 가지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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