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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Nov 05. 2019

직장 생활에서 운이 좋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Feat. 사주팔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사장님을 네 분이나 모셨네요."


어느 점심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오전 미팅이 끝나고 한 임원분이 오늘 점심 약속 없으면 같이 식사 할까요? 라는 제안에서 이어진 식사 자리였다. 어느 시골의 가든 같은 샤브샤브집이었고 창밖의 연못에는 잉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전원 스타일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막 끓어오르는 샤브샤브 육수를 바라보느라 그랬는지, 사장님을 '모시다'라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시대 대기업 스타일의 올드한 표현이 어색하지가 않았다. 사장님을 네 분이나 모신 내가 꽤나 대단한 일을 해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임원분은 신나게 지난 추억을 소환하며 예전 사장님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이분은 전형적인 용장(勇將)이었고, 이분은 지장(智將)이라 힘들었지만 많이 배웠고, 지금 사장님은 인장(仁將)이셔서 오래 뵈어왔는데 한결같은 분이라고.


거의 삼국지 수준의 에피소드가 오고 가던 중 임원분이 나에게 물으셨다.


"B과장은 네 분 사장님 중에 누가 가장 좋았어요?"


"음 다 장단점이 있고, 다 배울 점이 있었죠. 어느 한 분을 고를 수가 없는데요?"


"우문현답이네요."


"그럼 제일 힘들게 했던 사장님은 누구예요?"


"하나도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고요. 계속 CEO와 가까이서 일하는 업무를 해왔지만, 제가 업무를 하는 가장 근원적인 본질을 바꿔야 할 만큼 저를 힘들게 하신 분은 없었어요."


"본질?"


"네. 제가 운이 좋았던 건지, 이 업무를 하는 나의 태도를 네 분 모두 존중하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쓰고 보니 이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막상 이 말을 하고 나서도 아 이 무슨 이불킥 발언인가 싶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에서 튀어 나가듯 이런 대답이 나온 것이 낯 간지러우면서도, 두고두고 내가 한 말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영혼 없이 일하지 않을 자유


낯 간지러운 이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직장 생활은 곧 ‘적응’이었고, 오너 회사가 아니기에 그때그때 바뀐 CEO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업무 방식이나 우선순위나 분위기에 내가 맞추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정말 옳지 않은 일을 한다거나, 틀린 방법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바꾸어야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내 생각을 참지 않고 말할 기회가 있었고, 대부분 실무자가 느끼는 것을 수용하고 인정해 주셨다. 물론 그런 설득의 과정에 쏟아부어야 할 에너지나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내려놓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나는 항상 ‘영혼 없이 일하지 말자’라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운 좋은 직장 생활을 한 걸까?


직장 생활 10년 차를 앞두고 나도 모르게 '제가 운이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이라고 한 나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왜 이런 말이 튀어나왔을까? 정말 진심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직장 생활에서 운이 좋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실 운 좋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요즘 그 흔한 이직 한 번 하지 않고 입사 1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운 좋게 만족하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지난 10년이 버라이어티하고 다이내믹하여 질릴 틈이 없었던 것, 그리고 퇴사를 하기엔 나는 위험을 감수하기 전에 기회비용을 열심히 생각하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 한없이 신중해지는 사람(=쫄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10년 동안 힘들 때마다 사주, 신점, 타로 등 온갖 무속신앙에 기대어 '저 지금 괜찮은 건가요?', '앞으로 괜찮을까요?'를 물었었는데, 그마저도 부질없어 한동안 안 보다가 최근에, 친한 친구를 통해 용하다는 분께(항상 용하다는 분께 보긴 했었다) 생년월일시만 보내고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직장 생활 10년, 이제 내가 봐줘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본 사주팔자였는데. 별 기대 없이 카톡으로 전달받은 사주 내용 중에 어느 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30살부터 올해까지 직업 때문에 힘듦. 의지가 강하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에 비해 성과가 많이 안 나고 마음 둘 곳 없음. 올해 말부터 점점 좋아짐.


이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은, 밑줄 긋고 별표를 그려야 할 기쁜 말 '올해 말부터 점점 좋아짐'이 아니라 ‘마음 둘 곳 없음'이었다. 마음 둘 곳이 없다고? 내가? 사주 아저씨 하나도 안 맞네? 이런 생각이 들었담 좋으련만. 나는 갑자기 상처를 들킨 사람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음 둘 곳도 없으면서 10년을 버틴 거야?
새삼스럽게도 나는 내가 불쌍했다.


직장 생활을 기회로 인생에 다시는 없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언제나 사람 때문에 버틴 것도 맞지만, 일을 하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마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정말 애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보면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는 건 사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말이지. 지난 10년 나는 애써 나를 돌보며 위로하며,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견뎌온 게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숨이 가빠져 올 때마다 직장이라는 연못 위로 아가미를 내밀며, 쫄보 주제에 더 버거울지 모를 연못 밖의 세상을 갈망하고 꿈꿨던 걸까.

  




사주팔자에도 지난 10년이 마음 둘 곳 없이 힘들었다는데. 아가미를 수면 위로 내밀며 얕은 연못 속을 헤엄치는 잉어가 보이는 샤브샤브집에서 어느 임원분의 질문에 나는 분명 지난 10년의 시간이 '운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본질'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내가 10년 가까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소통'과 '조직문화' 업무를 담당하며, '본질이 훼손되지 않고 존중받는 상태'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태는 '일하는 태도',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 하는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경영진이 계속 바뀌고, 회사가 언제나 과도기이자 변곡점이었던 시기에 이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웬만한 멘탈로는 정신을 부여잡기 힘든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뿌리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꽃을 피웠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 둘 곳 없는 외로움 가운데서도 줄기와 잎을 틔우며 배우고 성장했다.








한동안은 자주 그 사주 아저씨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울컥했었다. 마음 둘 곳 많은 척했는데 마음 둘 곳 없다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고, 의지가 강하다지만 사실은 힘들면서, 멘탈이 강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칭찬으로 듣고 속으로 앓았던 내가 불쌍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사주팔자 그거 통계학 같은 거라던데, 불행을 다행으로 여기며 산 건 아니겠지. 그래도 올해 말부터 좋아진다니까, 이건 진짜 다행일 거야. 롤러코스터를 타는 하루하루였다.


내리지도 못하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어느 날, 나는 장문의 카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지난해 해외 법인으로 파견 발령을 받아 퇴임하신 전임 사장님의 메시지였다. 거의 일 년 만이었다.


자필 편지가 아님에도 느껴지는, 분명 엄청 쑥쓰러운 마음으로 꾹꾹 눌러쓰신 게 분명한 카톡 메시지 안에는 해외 법인에서 다시 새롭게 CEO로 일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외로움, 힘듦에 대한 짧은 소회가 담겨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현지 직원들과 일하며 사람의 마인드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B과장 같은 직원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불행의 10년이 될까 봐 두려웠는데, 나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 함께 일했던 3년여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한 분이다.


직장 생활 10년. 많은 것들이 뒤늦게 깨달음으로 다가오고,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조금씩 결과로, 결실로 이루어지는 것도 분명 있다.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이만하면 행운이었다.






올해 연말부터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는 사주팔자를 믿어 보기로 했다. 이만큼의 행운 뒤에 더 좋은 날들이 오기를.


엄청난 변화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변함없이 더 사랑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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